• [프랑스 칸=이연수 기자] 칸 라이언즈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구 칸 국제광고제, 이하 칸 라이언즈)이 클라이막스를 향해 치닫는 23일 오후(현지 시간), 칸의 팔레 데 페스티발에서 이노션의 원혜진 국장을 찾았다. 원혜진 국장은 2011년 칸 라이언즈에서 사이버 부문 심사위원을 했다.

  • ▲ 박찬욱 감독의 '파란만장' 상영회장 앞에  선 올해 칸 라이언즈 사이버 심사위원 원혜진 CDⓒ
    ▲ 박찬욱 감독의 '파란만장' 상영회장 앞에 선 올해 칸 라이언즈 사이버 심사위원 원혜진 CDⓒ

    사이버 부문 심사결과가 발표되었다. 한국에는 해마다 사이버 부문 심사위원이 한 명씩 배정되지만 정작 사이버 부문의 수상실적은 전무하다. 올해 역시 쇼트리스트에조차 한 작품도 올리지 못했는데….

    한국은 일단 출품작 수부터 너무 적다. 올해 사이버 부문에 출품된 작품 수는 21편에 불과하다. (사이버 부문 총 출품작 수는 2,835) 우리나라가 인터넷 보급률이나 IT 기술에 있어 세계적인 위치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출품 수가 너무 저조하다.

    사이버 부문 출품이 그렇게 저조한 까닭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우리나라는 인터넷 사용자도 많고 인프라도 훌륭하지만, 콘텐츠 개발 노력 자체가 미흡하다. 기업에서도 인터넷으로 무엇을 한다고 하면 콘텐츠보다는 미디어 플랫폼(media platform) 개발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다. 심사를 하는 내내 한국이 과연 사이버 심사위원을 내보내기에 적합한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낼 수 없었다.

    칸 라이언즈 조직위원회에서 철저히 수상실적에 따라 심사위원을 배정하다보니 수상실적이 저조한 우리나라에는 상대적으로 '비전통적'인 부문에 배정된다.

    물론 우리나라 광고가 발전해서 여러 부문에 골고루 심사위원이 배정되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사이버에 '비전통적' 부문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인터넷이나 모바일과 같은 매체는 이미 주류 매체가 되어가고 있다. 얼마 있지 않아 인쇄나 필름 부문보다 사이버 부문이 더 주류 매체 대접을 받을 때가 온다.

    그렇다면 다양한 매체 플랫폼 개발부터 해야 사이버 크리에이티비티가 발전한다는 의미인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여기 칸에서는 새로운 매체 플랫폼 자체가 크리에이티비티로 인식되고 있다.
    이를 테면 이번 금상 수상작 중 'Pay tweet'라는 출품작이 있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자신의 의견을 올림으로써 상품 값을 대신해준다는 방식의 캠페인이었다. 사이버 부문 수상작 발표 기자회견에서 가장 많은 의문이 제기된 작품이다. 과연 이것이 크리에이티브 콘텐츠인가, 혹 미디어 플랫폼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닌가? 사실 심사 과정에서도 그런 의문이 많이 제기되었다.
    다른 부문에서도 그런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지만, 특히 사이버 부문에서는 반드시 브랜드 측에서 어떤 영상이나 이미지 같은 콘텐츠를 제작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사위원장은 최종적으로 'Pay with a tweet'에 금상을 주기로 하면서 '소비자들을 참여(engage)시키고 콘텐츠를 전파(spread)시키는 도구가 얼마나 크리에이티브한가, 그 점이 중요하다'고 했다.
    소비자를 참여시키는 도구로서의 크리에이티비티가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소비자는 이미 콘텐츠의 소비자인 동시에 제작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참여시키는 도구로서의 크리에이티비티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이버 캠페인을 집행할 때도 크리에이티브한 측면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매우 크리에이티브한데도 스스로 그 점을 깨닫지 못 하기도 한다.

    페이스북보다 십 년 가까이 앞서 개발되었던 아이러브스쿨(iloveschool)도 그런 예가 아닐까.

    그렇다. 오래 전에 개발한 것이지만 만일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좀 더 세련되게 다듬고 국제적인 기능을 추가했더라면 페이스북 못지 않은 미디어 플랫폼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있었는데, 아쉽다.
    아이러브스쿨 같은 미디어 플랫폼을 일찍이 개발할 수 있었던 한국의 사이버 부문 성적이 이렇게 저조한 원인으로는 우선 '자기 검열'을 주요 원인으로 들 수 있다. 매우 크리에이티브한 것을 만들어놓고도 그것이 크리에이티브하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이버 부문에서는 과연 무엇이 크리에이티비티인가부터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한다.
    앞서 말했지만 특히 사이버 부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시키느냐다.
    피아트(FIAT)의 캠페인 'Time for your own car'처럼 당장 눈에 띄는 매출 신장이 없다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어 참여를 유도하는 캠페인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또 단순히 어느 한 두 매체만을 통한 캠페인으로는 통하지 않는다. 다양한 매체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하나의 통합적 캠페인으로 가공하는 노력이 수상을 위해서나 광고 효율을 위해서나 꼭 필요하다.
    사실 스캠(Schematic campaign, 광고제 수상을 위해 따로 만든, 올바로 집행되지 않은 광고)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상을 내다보고 캠페인을 기획 제작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덧붙이자면 이런 세계적 추세와 경향을 파악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칸 라이언즈와 같은 국제광고제에 많이 참관해봐야 한다.

    오늘날과 같이 인터넷이 발달하고 원하는 매체는 언제 어디서나 확인해볼 수 있는 환경에서 굳이 비용과 시간을 들여 국제광고제에 참관할 필요가 있나?

    칸 참관은 단순히 작품만 보러 오는 것이 아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클릭 몇 번 한다고 전세계 광고산업의 흐름을 읽고 변화를 감지할 수는 없다. 칸 라이언즈에서는 수많은 세미나와 세션, 워크샵 등이 그런 흐름과 변화를 생생히 보여준다.
    칸에 와보면 전세계 거대한 광고산업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는 느낌이 절로 들 것이다. 칸 라이언즈는 광고인에게 필요한 시야를 제공해준다. 광고인으로서 반드시 참관해야 할 행사다.
    덧붙여 말하자면 광고는 산업이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광고산업 역시 좁은 한국 시장 안에서만 경쟁해서는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 이제 광고산업은 다른 산업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게 되었으며, 광고와 타 산업 간의 밀착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다.

    고전적인 질문이지만 소비자들은 광고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에 늘 불만을 느낀다.

    사이버 부문이 그래서 중요하다. 텔레비전이나 신문 등 전통 매체에는 매체 비용이 많이 든다. 하지만 사이버 부문은 아이디어만 뛰어나다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도 높은 효율을 올릴 수 있다.
    우리나라의 사이버 광고는 크리에이티브한 콘텐츠를 만들어내려는 노력보다는 일단 트래픽부터 늘리고 보자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 텔레비전이나 인쇄 광고에서 대중문화를 유도해온 것처럼 앞으로는 사이버 광고가 새로운 문화를 창출할 것이며, 그 문화는 소비자들이 향유하게 된다.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이 있다면?

    참관단 책자에 실린 심사인단 명단에 내 국적이 '일본'으로 잘못 나와 아연실색했다. 일본 문화의 힘이 커지면서 서구인들의 경우 동아시아인이라면 일단 일본인일 거라고 생각해버린다. 이렇게 되기까지 일본은 고급문화든, 대중문화든 세계에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우리 문화, 특히 우리 대중문화를 저평가하고 널리 알리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을 때가 많다.  
    한 가지 예를 들겠다. 쇼트리스트에 오른 일본의 청소년 금연 캠페인이 있었는데, 일본 만화를 많이 접한 우리에게는 사실 유치하고 조악해보일 수도 있는 비주얼 디자인의 인터액티브 캠페인이었다. 하지만 다른 심사위원들 대부분이 그 작품을 신선하다고 여겼다.
    사포로 맥주의 전설적 '비루(맥주) 캠페인'(일본인들은beer 를 비루라고 발음한다)은 또 다른 예로, 일본 전통문화를 서구식으로 가공하지 않은 대표적 작품이다. 서구인들도 매우 좋아한다. 사실 이런 고유한 색채는 우리에게도 많이 남아 있다. 서구인 등 세계 광고인들이 알아주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묻어둔 보물이 분명 많이 있다. '비루 맥주' 광고나 '헤이세이 너구리 전쟁 아니메'(일본인들은 animation을 줄여 '아니메'라고 한다)처럼 한국적인 동시에 세계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문화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해야 한다.
    물론 우리 전통 요소를 어느날 갑자기 불쑥 내민다고 인정받기는 힘들다. 일본의 '망가(만화)'나 '아니메(애니메이션)'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게 되기까지는 꾸준한 노력이 있었다. 칸 라이언즈에 한 번 내봤는데 안 되더라, 하는 소극적인 태도로는 세계 광고문화를 절대 주도할 수 없다.
    우리나라 광고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신 있게 세계에 우리 문화를 소개하는 동시에 '크리에이티비티란 무엇인가'하는 근본 문제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