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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강한 ‘놈’이 온다. ‘놈’이라는 표현은 비속어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이 차에는 ‘놈(Guy)’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기 때문이다. 바로 포드 포커스다.
외관: 포르테 또는 i30같은, 하지만 그보단 강인한 느낌
처음 포커스를 만난 건 포드의 행사 때가 아니라 한 외국인 무역상이 타고 다니던 차량이었다. ‘어, 저건 무슨 차지?’라는 궁금증으로 다가가보니 ‘포커스’라고 적혀 있었다. 물론 300마력의 출력을 자랑한다는 ‘포커스 RS’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디자인이나 크기, 최저 지상고 등은 골목길이 많고 도로가 울퉁불퉁한 우리나라에서는 꽤나 어울릴 듯 했다. 차 주인인 러시아 무역상도 차 자랑을 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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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 포드의 얼티매이트 드라이빙 행사에서는 전시된 신형 포커스를 만났고 지난 9월 6일 신형 포커스를 직접 타보게 됐다. 실제 크기는 기아 포르테 해치백만 하다. 구동형식도 전륜구동이다. 실루엣도 흡사하다. 하지만 실제 느껴지는 이미지는 크게 다르다. 길이는 4,359mm(세단은 4,534mm)로 아담했지만 폭은 1,824mm, 높이 1,468mm로 짧으면서도 넓적한, 안정감 있는 자세를 갖췄다. 무게도 1,415kg(세단은 1,420kg)로 ‘날리지’는 않는 편이다.
포드 포커스는 폭스바겐 골프의 대항마로 개발된 차라고 한다. 그러나 비슷한 배기량(1,968cc)의 골프보다 가격과 유지비가 저렴한 게 장점이다. 프레임 강성 또한 골프에 뒤지지 않는다. 다만 아쉬운 점은 타이어 크기. 휠은 17인치로 크기에 비하면 만족할만한 수준이지만 타이어 폭이 215mm에다 두께가 50mm라 고속주행 때는 약간 불안함을 느낄 수도 있다. 아무렴 어떠랴. 경주용도 아닌데.
실내: ‘소형 수입차’라지만 있을 건 다 있다
차 문은 묵직한 중량감이 느껴지는, 기존의 포드 차량과 사뭇 다르다. 마치 일본차나 국산차 같다. 포드 측은 ‘신소재를 대폭 사용해 무게는 줄이는 대신 강도는 높였다’고 설명했다. 운전석 시트는 6방향 전동 시트다. 시트를 조절하기에 따라 키 190cm까지는 별 문제가 없을 듯 했다. 특히 사이드 미러는 1톤 화물차의 그것만큼 큰데다 사각방지용 미러가 함께 달려 있어 편했다. 하지만 포드의 작은 룸미러는 언제나처럼 불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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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기판은 포드 퓨전 등과 마찬가지로 아이스블루 빛 LED계기판이 깔끔하게 자리 잡았다. 오디오는 소니 제품을 채용했다. 센터페시아 상단에는 포드가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잡고 만든 ‘싱크(Sync)’ 시스템이 있었다. 시승한 차량에는 네비게이션이 장착되지 않아 그 정확도를 알 수 없었지만 포커스에 탑재된 ‘싱크’가 제공하는 와이파이와 블루투스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노트북, 휴대전화와 연동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 이 ‘싱크’ 시스템은 운전자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단순한 차에서 움직이는 개인 사무실로 변신할 수 있다.
‘싱크’ 시스템을 사용하기 위한 8인치 디스플레이 밑에는 풀오토 에어컨이 달려 있다. 기어 노브는 바닥이 아닌 에어컨 밑에 달려 있다. 포커스에 장착된 6단 자동변속기는 차량의 체급을 생각하면 준수한 편이다. 스포츠 모드는 엔진 회전수를 빠르게 높여 즐거운 드라이빙을 체험할 수 있게 해 준다.
실내 내장은 포커스의 가격대가 3,000만 원 내외라는 점과 수입차라는 점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편이다(이 정도 가격에 ‘천연 송아지 가죽’을 바란다면 중고차를 사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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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좌석 크기는 준중형차 수준이었다. 그래도 웬만한 성인남성은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수준이다. 길이가 ‘짧은 차’임에도 휠베이스가 2,649mm로 골프(2,578mm)보다 더 길어 공간은 물론 승차감도 괜찮은 편이다.
시승: 삼청각에서 을왕 해수욕장까지
차량 구경과 포드 측의 설명에 이어 서울 종로구 삼청각에서 영종도 국제공항 가는 길에 위치한 을왕 해수욕장 주변까지 달리는 시승행사가 있었다. 우선 ‘싱크’ 시스템과 아이폰을 연결한 뒤 선도 차량을 따라 정릉 IC까지 간 다음 인천국제공항 고속도로를 달렸다.
일본 T사나 국산 H사의 차들과 달리 액셀러레이터는 묵직한 편이었다. 이 묵직한 느낌 때문에 ‘차가 잘 안 나간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확실히 브레이크를 자주 밟지 않고 운전하는 사람에게는 포드 스타일이 더 나은 편이다.
아이들링 때의 엔진회전수는 분당 1,000 내외를 가리켰지만 액셀러레이터를 밟자 금새 2,500까지 치솟았다. 실제 0-100km/h까지의 가속에는 8초가량 걸리지만 체감 속도는 그보다 더 빨랐다.
차량이 거의 없는 구간에서 기어를 스포츠 모드로 바꾸자 180km/h까지도 별 다른 무리 없이 쭉쭉 뻗어나갔다. 대신 엔진회전수는 분당 4,000~4,500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이어 급제동을 하자 좁은 타이어 폭 때문인지 흔들림이 느껴졌다. 동승한 사람도 급제동의 충격을 꽤 느끼는 편이었다. 다시 속도를 평균 100~115km/h로 낮춘 뒤 일반주행 모드로 바꾸자 엔진회전수가 낮아지면서 조용한 모습을 되찾았다.
을왕 해수욕장으로 가는 동안 차선변경과 추월을 여러 차례 시도할 때도 스트레스는 거의 없었다. 전륜구동의 작은 차임에도 엔진회전수가 올라갈 때마다 들리는 엔진 소리는 ‘진짜 차’를 타는 기분이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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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두 번째 미션을 위해 80km/h가 넘는 속도로 영종도 박물관으로 진입하는 램프로 들어설 때도 흔들림 없이 자세를 유지했다. 미션 수행 후 을왕 해수욕장까지 가는 길도 물론 편안했다.
총평: 럭셔리카는 절대 아니다.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
포드코리아 전재희 대표가 “유럽,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글로벌 플랫폼’ ‘원-포드 전략’에 맞춰 만든 차”라고 포커스를 설명했다.
포커스는 폭스바겐의 베스트셀링카 골프의 대항마에 가깝다. 이를 위해 소형차임에도 상위모델인 퓨전 수준의 편의장치를 대폭 채용했다. 탑승자의 체중이나 신장 등에 맞춰 펼쳐지는 스마트 에어백을 채용했고 고강성 프레임을 50% 이상 채용해 안전성을 대폭 높였다. 연비도 13.5km/l 수준으로 일본의 경쟁차종보다 더 우수하다. 그 덕분에 미국에서는 월 1만 대 이상 판매돼 골프를 제친 바 있으며, 2012년형 포커스 또한 골프를 따라잡아가고 있다.
물론 실제 탑승했을 때 느낀 단점도 있다. 고속주행 중 급제동 시에는 차체가 흔들리는 점이나 ‘싱크’ 시스템이 음성인식을 잘 못하는 점 등은 분명 개선여지가 있어 보인다. 2.0리터급 엔진임에도 출력은 162마력/6,500rpm, 토크는 20.2kg.m/4,450rpm 밖에 되지 않는 점, 그러면서도 3,000만 원대 전후 가격은 대부분의 소비자들에게는 ‘비싼 거 아니냐’는 느낌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단점을 상쇄하는 건 바로 ‘포커스’라는 점이다. 포커스를 베이스로 튜닝한 차량으로 WRC랠리에서 수 년 째 우수한 성적을 보여줄 만큼 완성도와 안전성이 높다는 점, 유사한 ‘엔트리급 수입차’에 비해 1,000만 원 이상 저렴하다는 점, 독일차나 일본차와는 달리 각종 오일류나 소모품을 ‘이베이’에서 구입해 동네 정비소에서 교환하고 정비할 수 있다는 점 등은 분명 메리트다. 포드 측이 마음먹고 가격을 미쓰비시 랜서 수준(2,700만 원~2,990만 원)까지 낮춰 출시할 경우 그 메리트는 더욱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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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지난 4월 서울모터쇼 당시 한 국산차 업체 임원이 직원들까지 대동하고 나타나선 ‘차 가격이 얼마냐, 출력은 어느 정도냐, 안전장치는 어떻게 되느냐’고 이것저것 따지듯 묻고선 “이런 차까지 수입하면 국산차는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당신네는 애국심도 없냐”며 크게 화를 내고 자기네 부스로 돌아갔다는 일화는 포드 코리아 직원들이 자주 인용하는 에피소드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지난 10년 동안 국산차 브랜드가 연 평균 7% 이상 가격을 올리면서 이제는 웬만한 2,000cc급 국산차 가격이 3,000만 원에 육박한다. 한편 폭스바겐 골프 블루모션, 닛산 큐브는 출시와 함께 폭발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이 차종의 옵션이 그다지 풍부하지 않은데도 잘 팔리는 이유는 수입차는 '돈자랑용'이 아니며 '기본에 충실한 차가 좋은 차'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증거다.
이런 상황에서 포드 포커스는 튜닝을 좋아하고, 차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싶은, 그러면서도 실용성을 따지는 사람들에게는 꽤 괜찮은 선택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