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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업계가 금융당국의 각종 정책성 보험상품 출시 독려에 난감해 하고 있다. 보험사 입장에선 실효성이 없는 상품을 등떠밀려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달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후속 조치로 4대악 보험 등 정책성 보험이 출시된다.
박 대통령의 공약인 학교폭력, 성폭력, 가정폭력, 불량식품 등 이른바 4대악(惡) 척결을 뒷받침 하기 위한 정책성 보험이다.
금융사기보험, 장애인 연금보험, 고령층 특화보험, 해외 장기체류보험, 여행취소비용 보상보험 등 다른 정책성 보험들도 나올 예정이다.
보험업계에서는 사회 안전망을 지향하는 정책성 보험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이 같은 보험들이 시장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실패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정책성 보험 과거에도 실패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 나온 정책성 보험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이명박 정부의 녹색자동차보험, 자전거보험 등은 실패한 상품으로 꼽힌다. 당국의 권고로 출시했지만 시장의 외면으로 판매가 중단되거나 가입률이 미미해 유명무실한 상태다.
지난 2011년 출시된 녹색자동차보험은 지난해 2년 만에 판매가 중지됐다.
자전거보험 역시 소비자들에게 사랑받지 못했다. 민주당 강기정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2009~2013 자전거보험 현황'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9년 1만6128건에 달했던 계약건수는 지난해 3분의1(5469건) 수준으로 급감했다.
금융당국의 대대적인 홍보에 힘입어 상품 출시 초기에는 가입자를 유치했지만 정권 말로 갈수록 시장에서 점차 외면을 받게 된 것이다.
◇ 등떠밀기식 상품..보험사 손실 어쩌나
정책성 보험이 시장에서 외면받는 동안 피해는 보험을 출시한 보험사들이 뒤집어 썼다. 금융당국의 요청에 의해 서둘러 상품을 내놓다보니 꼼꼼한 상품 설계를 할 수 없었던 것.
자전거보험을 출시한 LIG손해보험·동부화재·메리츠화재·삼성화재·현대해상 등 5개 보험사가 지난 5년 동안 보험사가 가입자들로부터 받은 보험금은 135억여원이었지만 같은 기간 동안 153억여원의 보험금을 지급했다. 20억 원 가까이 손해를 본 셈이다.
한 업계관계자는 "손해율 등에 대한 분석을 할 틈도 없이 금융당국에 의해 반강제식으로 정책성 보험이 출시됐기 때문에 손실이 늘어나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손해율을 계산하려면 상품 판매 이후 2년 이상이 걸리는데 정책성 보험들은 기존 통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손해율 예측이 어렵기 때문에 수익률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일반보험에 비해 높은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4대악 보험의 핵심인 정신적 피해 보상에 대해서도 논란이 예상된다. 정신적 피해는 주관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보험료 산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4대악에 포함되는 학교폭력, 성폭력 등은 대부분 면식범의 소행인 만큼 보험금 수령을 위해 악용될 가능성이 높아 보험사들에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정부, 보험사에 책임 떠넘기나?
정부의 역할과 책임을 민간 보험사에 전가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4월 20일 장애인에 날에 맞춰 출시될 예정인 장애인 연금보험이나 고령층 특화보험 등의 수요층은 정부 예산으로 공적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대상이다. 엄밀히 따지면 보험사가 이 책임을 떠안은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남은경 사회정책팀장은 "정책성 보험은 정부가 해결해야 하는 공공서비스의 문제를 개인이 보험료를 내고 나중에 보장받으라는 취지"라며 "공적체제가 잘 구축되고 추가로 필요한 경우 개인이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로 가야지 이를 민간 보험사들로 떠넘길 경우 공적 영역이 축소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우려스럽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