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적인 성과 있을때까지 어떠한 것도 믿지 않는다""재개발은 찬성, '강제수용방식'은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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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서울 서부이촌동 대림아파트 외부에 재개발 반대 문구가 붙어있다.ⓒ뉴데일리
    ▲ 서울 서부이촌동 대림아파트 외부에 재개발 반대 문구가 붙어있다.ⓒ뉴데일리


"몇년 전 10억원을 호가했던 아파트가 불과 몇 달만에 반값으로 곤두박질쳤어요. 당장 재개발이 이뤄져 매매가가 회복되길 바라는 거죠. 내 재산이 하루아침에 공중분해 됐는데 사업 재추진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서부이촌동 대림아파트 주민) 

"서울시장 후보들의 공약 발표 이후에도 특별한 시장반응은 없어요. 간혹 투자 문의가 있긴 하지만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하는 수준이죠. 매물도 거의 없다시피 봐야죠. 공약 발표 후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 심리로 실소유주들은 꽉 쥐고 집값 오를때 까지 기다리는 거죠" (서부이촌동 A 공인중개사 대표)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 일대가 미묘한 변화가 감지됐다. 서울시장 후보들이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을 재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어서다.

정몽준 새누리당 후보는 "철도정비창과 서부이촌동을 통합해 3∼4개 구역으로 나눠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반면 박원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는 "기존 계획개발 구역을 철도정비창과 주거지역으로 분리해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두 후보 모두 용산 일대를 개발하겠다는 것은 동의했지만 방식의 차이를 나타냈다.


  • ▲ 개발 반대문구가 가득했던 어느 시범 아파트 벽면을 인부들이 새롭게 페인트칠하고 있다.ⓒ뉴데일리
    ▲ 개발 반대문구가 가득했던 어느 시범 아파트 벽면을 인부들이 새롭게 페인트칠하고 있다.ⓒ뉴데일리


  • 지난 21일 점심 무렵 서부이촌동을 찾았다. 두 시장 후보가 용산재개발 공약을 발표한 뒤 시간이 꽤 지났지만 그 효과를 체감하기엔 시기상조인듯 했다. 대림·성원 아파트 근방 다수 노후된 시범 아파트와 상가들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유동인구도 간혹 눈에 띌 뿐 용산 역세권과 한강 조망을 갖는 지역이라고 말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지은지 40년이 된 중산 시범아파트 단지 내에는 70대 어르신들이 계단에 앉아 휴식을 취할 뿐 유동인구는 없다시피했다. 재개발이 당장이라도 필요할 듯한 노후된 건물이 이곳 서부이촌동 일대의 분위기를 대변했다.

    이런 침체된 지역 분위기와 관련 주민 최모(33) 씨는 "지금 이 모습도 올 초 도시정비사업이 이뤄진 뒤 한결 좋아진 것"이라며 "과거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귀신의 집' 같은 분위기였다"고 귀띔했다

    주민들은 두 후보의 공약과 관련해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한 50대 남성 주민은 "지금까지 개발을 한다 안한다 말만 무성했고 결국 피해는 주민들만 떠앉았다"며
    "가시적인 성과물이 있을때까지는 어떠한 말도 믿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선거철에 내놓는 후보들의 공약을 100% 믿는 시민들이 어디 있냐"고 일갈했다.

    중산 아파트 주민대표회의 관계자도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가장 큰 반대의 이유는 도시개발법 강제수용방식이었다"라며 "법적인 보상이 터무니 없는 공시지가 기준 감정평가 금액 수준일 뿐"이라고 했다. 

    현 주택에 대한 평가가 통상적인 시장가격일 뿐이므로 주민에게 주어질 주상복합단지 분양권은 휴지 조각일 뿐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인근 주민 50대 남성 김모씨는 "한강 조망권을 소유한 대림·성원아파트 일부 주민들이 재개발을 반대했다"며 "두 아파트가 한강을 가로막고 있는 한 재개발이 이뤄진다 해도 100% 완성된 것이 아니기에 한강 조망권을 빌미 삼은 것"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실제 대림·성원아파트 주민은 사실과 다르다며 펄쩍 뛰었다.

    40대 여성 주민은 개발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면서 "다만 과거의 강제수용개발 방식은 소유권자에게 가격 결정권이 전혀 없기에 반대했다"며 "내 집은 값싼 가격에 넘기고 받아야할 집은 비싸다면 누가 찬성하겠느냐"고 반문했다.

  • ▲ 서울 시범아파트로 1970년에 지어진 중산아파트.ⓒ뉴데일리
    ▲ 서울 시범아파트로 1970년에 지어진 중산아파트.ⓒ뉴데일리


  • 반면 이번 지방선거에 내심 기대를 보이는 주민들도 있었다.

    30대 여성 주민은 "두 후보간의 방식만 다를 뿐 이 지역에 손을 대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어떻게든 상실감이 큰 주민들에게 회복의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어 "집값 상승과 상권 발전 등 재개발을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음식점를 운영하는 한 세입자는 "개발 철회된 이후로 손님이 뜸해졌다"며 "월세를 감당 못하는 세입자도 상당하다"고 털어놨다. 이어 "새로 들어선 가게는 외부 지역인들이 투자를 목적으로 매입한 것이 대다수"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인근 상가주민들은 대체로 개발을 환영하는 목소리를 전했다. 점심시간을 맞아 식당들이 붐빌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썰렁했다. 일대 몇몇 이삿짐센터도 자물쇠를 걸어잠근 채 영업하지 않고 있었다. 서부이촌동 상가들은 보증금이 없거나 많게는 2000만원 정도라는 게 인근 공인중개사의 설명이다.


  • ▲ 공인중개사들은 실제로 거래되는 물량은 거의 없다고 입을 모은다.ⓒ뉴데일리
    ▲ 공인중개사들은 실제로 거래되는 물량은 거의 없다고 입을 모은다.ⓒ뉴데일리


  • 용산지역 부동산도 침제에 빠졌다는 주장이다.

    C 공인중개사 대표는 "실제 개발 발표 이후에 집값이 급등한 뒤 사업이 지지부진해지면서 다시 폭락했다"며 "해지 발표 이후에 조금씩 매매가 늘어나고는 있지만 미약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이어 "용산만큼 입지가 좋은 곳은 없다"라며 "시장가가 떨어진 지금이 투자할 적기"라고 뀌띔하기도 했다.

    서부이촌동 주민들은 찬성과 반대의 목소리가 공존했다. 다만 어떤 시장이 뽑히던 주민들을 위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한목소리를 냈다.
     
    D 공인중개사 대표도 일본 롯본기힐즈를 예로 들며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롯본기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십여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며 "용산개발도 근시안적인 안목에서 벗어나 롯본기 모습을 벤치마킹 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동네 주민인 강중석(52) 씨는 "서울시를 비롯한 관계 기관은 서부 이촌동 주민들을 위한 길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먼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당초 용산국제업무지구개발 계획은 2001년 3월 고건 전 서울시장 재직 시절 KTX 용산역 개발을 비롯한 용산개발사업의 일환이었다. 이를 오세훈 전 시장이 서부이촌동 일대를 포함한 통합계획으로 발전시키면서 규모가 확대됐다. 그러나 사업추진이 지체되면서 주민들의 재산권행사가 묶이는 등 극심한 고통이 뒤따랐다.
     
    용산국제업무지구개발은 코레일 소유의 용산철도정비창과 서부이촌동 일대를 합쳐 약 52만㎡ 면적에 복합단지를 건설하자는 사업이었다. 사업규모가 30조원에 달해 '단군 이래 최대 개발 사업'이라 불렸으나 작년 10월 좌초됐다. 이후 사업 인허가권자인 서울시가 도시개발구역 지정을 해제하며 사업 발표 7년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부동산 시장 침체와 시행사 내부의 자금문제가 사업 중단의 원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