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승계-지배구조 개편...그룹별 '수천억-수조" 소요
7월 신규순환출자 금지...내년말 조세특례제한법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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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정부 경제민주화의 상징입법인 '신규순환출자금지' 제도 시행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

     

    다음달 24일부터는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의 신규 순환출자가 전면 금지된다.

     

    아우성을 치던 재계는 그룹별 후계승계 구도를 염두에 두고 지배구조 개편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존의 순환구조를 다급하게 해소하고 새로운 지배구조를 구축해야 하는 기업들은 내부거래를 줄이면서 동시에 자금을 확보해야 하는 이중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서는 그룹별로 적게는 수천억에서 많게는 수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지주사 설립시 세제 혜택을 주는 조세특례제한법이 2015년 말까지만 적용돼 올해와 내년 사이에 지주사 전환을 꾀하는 기업들이 부쩍 늘어날 전망이다.

     


  • ◇ 바로미터 '삼성'


    주요 그룹 지배구조 변화의 시발점은 역시 '삼성'이다.

     

    지난달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입원하면서 그룹 지배구조의 변화가 시작됐다.

     

    경영권 승계가 걸려 있는 여타 그룹들도 삼성만 바라보고 있다.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삼성의 변화는 장기적으로는 지주사 전환이다.

     

    계열사 간 순환출자를 해소해 지배구조를 단순하게 바꿀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은 현재 상속준비, 계열별 구획나누기, 출자구조 간소화 등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 에버랜드 등 주축 회사 몇 개가 중심이 되는 사업단위 소그룹으로의 개편이 예상된다.

     

    금융 계열사를 거느릴 지주회사를 중간에 설치할 목적으로 계열사 간 보유주식 매각과 자사주 처분을 진행하고 있다.

     

    이 회장 일가가 대주주로 있는 삼성SDS, 삼성에버랜드는 상장을 결의했고 삼성생명은 삼성자산운용, 삼성화재 등 금융계열사의 지분을 모으고 있다.

     

    시장에서는 계열사 상장으로 대주주가 자금을 확보한 뒤 그룹 지배 회사의 지분을 늘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삼성생명도 금융중간지주회사로 전환된다면 금융계열사의 지분을 대폭 확대할 것으로 점쳐진다.

     

    삼성은 1년전 76개였던 순환출자 고리를 현재 54개로 줄였는데 연말에는 이를 18개로 대폭 축소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마침 대기업그룹의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개정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이 다음달부터 시행된다.
    물론 기존 순환출자는 인정되는 것이지만 차제에 털고가자는 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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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높다.

     

    시가총액이 200조원이 넘는 삼성전자에 대해 삼성생명은 7.6%, 삼성물산은 4%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이들 지분을 인수하는 데만 22조원이 넘는 돈이 필요하다.

     

    삼성이 3~4개 주력회사를 중심으로 순환출자를 정리하려면 해당 기업들이 부담해야 할 세금만도 1조원을 넘을 것이라고 한다.

     

    삼성그룹이 당장 지주사로 전환하기에는 세금 등 각종 제도상의 제약이 존재하는 셈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중간금융지주사 제도도 아직 가시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삼성그룹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려면 금산분리가 선행돼야 한다.

     

    오너 일가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해주는 핵심 고리인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처분해야 하는 것인데 이 경우 굳이 지주사 전환을 택할 동기가 희박해진다.

     

    상호출자금지에 묶여 지분을 맞바꿀 선택지도 넓지 않다.


     
    그래서 재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지주사 전환을 독려하고 있는 만큼 삼성그룹에 길을 터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지배구조 개편의 바로미터와 같은 삼성그룹의 지주사 전환이 무산된다면 다른 대기업들도 비슷한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삼성의 지주 전환은 국내 재벌그룹의 지배구조를 공고히 했던 순환출자의 해소를 의미하는 상징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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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차-한진-현대그룹-대림 지주사 '가닥'

     

    삼성그룹의 다음 타자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그룹은 현대차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를 갖고 있다.

     

    그룹을 지배하는 회사는 현대모비스지만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지분은 6.96%에 불과하다.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모비스 지분이 아예 없다. 때문에 정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현대글로비스의 주가를 높인 뒤 기아차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그룹의 후계자 정의선 부회장은 최근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합병을 통해 지분가치를 끌어 올리거나 아예 보유지분을 매각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 부회장은 그룹 내 건설 계열사인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엠코의 합병으로 보유했던 주식가치가 크게 올랐고 과거 보유했던 이노션 지분의 매각결정으로 약 4000억원에 달하는 현금을 보유하게 됐다. 이에 따라 재계에서는 현대자동차그룹의 후계구도 형성이 가속화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진그룹은 정석기업→한진→한진칼→정석기업의 순환출자구조를 해결하기 위해 지주회사 전환을 진행 중이다. 정석기업, 한진, 한진칼의 분할·합병을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신규 지주회사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

     

    유동성 위기에서 한숨돌린 현대그룹도 최근 지배구조 개편 움직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향이다.

     

    현대유엔아이를 정점에 놓고 현대로지스틱스→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상선→ 현대로지스틱스로 연결되는 순환출자 구조의 재편을 준비중이다.

     

    재계서열 19위 대림그룹은 3세 경영인으로의 경영승계가 한창 진행 중이다. 창업주의 장남이자 2세 경영인인 이준용 명예회장은 지난 2000년대 후반부터 장남인 이해욱 부회장 중심의 오너 일가→대림코퍼레이션→대림산업으로 이어지는 지배체제 구축에 나섰다.

     

    대림산업이 대부분의 계열사를 지배하고, 대림코퍼레이션은 이런 대림산업을 지배하는 구조다. 오너 일가가 대림코퍼레이션의 지분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다.

     

    지배구조 개편이 가시화된 현 시점에서는 대부분의 그룹들이 지주 전환 준비 작업을 통해 오너 일가의 경영권을 더욱 공고히하는 쪽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순환출자로 엮여 있는 대부분의 계열사를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회사로 재편하는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 작업의 서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