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형 저성장 구조 고착화…한국경제 먹구름 자욱저물가 기조 지속…디스인플레이션 우려도 고조규제 완화·소비 활성화 유도해 꺼지가는 불씨 살려야
  • ▲ 발길 끊긴 시장 ⓒ연합뉴스
    ▲ 발길 끊긴 시장 ⓒ연합뉴스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이미 소비자의 지갑 문은 굳게 닫힌지 오래다. 

지난해 국민의 평균 소비 성향이 73.4%로 200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쓸 수 있는 돈이 100만원 있을 때 74만5000원만 썼다는 의미였다. 

일각에서는 국민들이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소비률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한다. 결국 지난해 한국 경제성장률은 3%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2011년 3.6% 이후 3년 연속 2∼3%대라는 역사상 초유의 저성장을 기록했다.

◇저물가 기조 지속…디스인플레 고착화 우려

지난달 2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4월 생산자 물가는 전년 동월대비 0.3% 하락했다. 2월 -0.9%에서 3월 -0.5%, 4월 -0.3%로 하락폭은 2개월 연속 축소됐다. 생산자물가는 지난 2012년 10월(-0.6%)부터 하락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최장기간 하락 기록은 2001년 7월부터 2002년 8월까지와 1986년 2월부터 1987년 3월까지, 두 차례 14개월 동안이었는데 이번 하락세로 기록은 깨진지 오래다.

  • ▲ 발길 끊긴 시장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생산자물가는 소비자물가에 대체로 선행한다는 점에서 저물가 기조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3일 통계청이 발표한 5월 소비자 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 물가는 전월대비 0.2% 상승했을 뿐이었다.

  • 소비자 물가의 상승세는 일반적으로 경기가 회복되면 서서히 나타난다. 그러나 최근 세월호 참사의 영향에 경기 회복 분위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 산업계의 시각이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부 장관 역시 지난 23일 "신용카드 사용액 등이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고 있긴 하나 분위기가 완전히 돌아섰다고 보기에는 어렵다"며 "2분기 경제지표를 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5월 산업활동동향에) 세월호 참사 여파가 어느 정도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6개월째 이어진 경상수지 흑자와 글로벌 달러 약세로 인한 원화 값 상승, 이로 인한 수입물가의 하락세와 세월호 참사로 인한 민간 소비 부진까지 겹친 상황. 이에 물가가 낮은 상태를 지속하는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 우려도 등장하고 있다.

    더불어 나아질 기미 없는 경기 상황에 계속되는 1%대의 낮은 물가 상승률 기록은 이미 '디스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되는 과정이라는 시선도 있다. 호주 ANZ은행은 홍콩 소재 레이먼드 융 선임 이코노미스트도 최근 블룸버그에 "원가가치 강세와 세월호 여파로 디스인플레에 대한 우려를 더욱 높이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 ▲ ⓒ뉴스Y 방송 캡쳐
    ▲ ⓒ뉴스Y 방송 캡쳐

  • ◇한국경제, 일본의 '장기 저성장' 따라갈까

    1990년대 성장률 6.6%를 구가하던 국내 경제는 2000년대 4.2%까지 추락했다. 내수성장률은 5.8%에서 3.2%로 낮아졌다. 

    더불어 최근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한국경제는 3.6%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부(3.9%, 신기준 적용시 4.1%), 한국은행(4.0%), KDI(3.7%) 등이 내놓은 전망치보다도 낮다.

    또한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민간소비 회복의 한계와 투자증가율 둔화 등으로 한국 경제가 하반기로 갈수록 성장률이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상반기: 3.9%, 하반기 3.4%). 김영준 연구위원은 "성장속도가 둔화됨에 따라 '내수부진과 저성장 고착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다시 커질 것"이라고 전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역시 "한국경제가 경기 회복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소프트패치(soft patch)가 아닌 더블딥 초입으로 들어설 수 있다"고 비관적으로 전망했고 하태형 현대경제연구원 원장도 "세월호 충격이 완화되더라도 올해 민간소비는 경제성장률을 크게 하회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우리나라는 저물가 상황도 지속되고 있고 경기회복도 더디며 원화절상까지 예상된다는 점에서 내년 물가상승률 역시 2% 내외에 머물 것이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상황이 과거 일본과 유사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은 엔화가 빠르게 절상되는 가운데 수입은 크게 늘지 않아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장기간 지속되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경제가 1990년대 초반 주식, 주택 등 자산시장이 붕괴되는 등 내수부진으로 장기 저성장이 시작한 것처럼 우리나라도 '저성장 국면'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이에 1999년 2월부터 2006년 4월까지 약 7년간 지속적인 디플레이션을 경험했다. 이후 약 3년간은 물가상승기로 돌아섰으나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2009년 2월부터 올해 5월까지 재차 물가가 마이너스 성장세를 기록했다.

  • ▲ ⓒ뉴스Y 방송 캡쳐
    ▲ ⓒ뉴스Y 방송 캡쳐

  • ◇저성장 기조 장기화…해법은 내수 수요 창출?

    기업인들은 한국 경제의 저성장의 심각성을 인식,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중소기업 최고경영자 300명을 대상으로 저성장 지속에 따른 중소기업 대응전략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0.3%가 '한국 경제의 저성장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답했다. 아울러 이들 중 92% 이상은 "우리 경제의 저성장이 적어도 2년 이상 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학계에서 역시 저성장 장기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세계 경제가 장기 저성장의 조짐을 보이고 있고 우리나라도 결코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성장의 원인이 금융위기라는 분석이 힘을 얻었다면 최근에는 '만성적인 수요 부족'이 저성장을 부르고 있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기업인들은 저성장의 원인으로 '내수침체'를 꼽고 있었다. 나아가 규제 완화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중장기적으로 내수 부문에서의 수요 창출력을 높이자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지난 2월 취임 1주년에 공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서 "벤처와 창업기업, 내수 산업을 집중 육성해 저성장의 굴레를 끊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과거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처럼 우리나라 역시 오랜 기간 저성장의 늪에 빠질 거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내수가 살아나지 못하면 한국 경제는 그 늪에서 허우적거릴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우리나라 경기가 회복세로 접어드는 듯하나 우리 경제의 체감경기는 여전히 찬바람이 불고 있다. 박 대통령의 계획대로 내수와 수출이 균형성장을 이뤄 한국 경제가 2017년 4%대의 잠재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을까. 아직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