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정하면 가격 할인 더 해줘 "제값주고 사면 '호구'"백화점업계, 각종 편법 세일 난무...면세점보다 '싸'
말 잘하면 추가 할인까지…소비자 신뢰 붕괴
  • ▲ 위 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 상관없음. ⓒ연합뉴스
    ▲ 위 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 상관없음. ⓒ연합뉴스

     


    소비자 A씨(여·30대)는 지난 5월, 올여름 계획된 휴가일정 때문에 한 백화점 선글라스 코너를 미리 방문했다. A씨는 'T'브랜드의 선글라스가 마음에 들어, 고가임에도 바로 구매를 했다. 그런데 며칠 뒤 SNS를 통해 지인  B씨와 이야기를 나누다, B씨가 자신이 구매한 것과 똑같은 제품을 할인 기간이  아니었음에도 무려 30%나 할인해 산 것을 알았다. 

     
    불황이 깊어지면서 백화점 내에 각종 편법 세일이 다시 성행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임의 할인'이라 칭하는 비공식적인 가격 할인이 난무하는 가운데 업체들이 목표 매출을 채우기 위해 암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임의 할인은 롯데·현대·신세계·갤러리아 등 '알 만한' 백화점업계에서 모두 성행 중이다.

    그 중에서도 롯데백화점은 그동안 고질병으로 고착화됐던 임의할인을 근절하기 위해 그린 프라이스제(정상 가격을 인하하고 정찰제 판매를 원칙으로 하는 제도)를 시행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때문에 업계는 매출 저하가 심해진 후 노골적으로 성행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과거엔 상대적으로 할인 폭이 적은 여성복과 구두 군 등에서 주로 성행했지만 최근에는 컨템포러리 브랜드와 선글라스 군으로도 번지는 추세다. 

    실제로 롯데·현대·신세계 등 주요 백화점 내에 명품 선글라스 브랜드를 유통하고 있는 A사의 경우, 직원이 백화점 내에서 계산기를 들고 다니며 고객과 흥정하거나 신상품의 가격 할인을 50% 이하로 무분별하게 할인 판매한다는 지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임의할인은 종종 면세점보다도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해 유통 채널간의 갈등을 빚어내는 상황도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이러한 임의 할인은 고객의 흥정 여부에 따라 30~50% 정도 가격이 상이하다. 때문에 제 값을 지불한 고객은 분명 백화점에서 올바른 구매을 했음에도, 적지 않은 금액의 손해를 보게 돼 큰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

    피해를 입은 한 고객은 "마치 정가에서 비용을 더 추가해 구매한 듯한 기분"이라며 "주위에 물어보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백화점 내 임의 할인과 같은 정보를 공유하는 사람들도 있다더라. 호구 취급을 당한 기분이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백화점업계, 예방·점검에 힘쓰지만 '속수무책' 

    백화점 측에서는 입점 업체가 제품을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면 그 만큼 마진율이 낮아져 임의 할인을 권장할 이유가 없다.

    백화점 측은 문제가 되고 있는 '임의 할인'에 대해 백화점 뿐 아니라 브랜드 자체의 이익과 이미지가 실추되는 사안으로 판단, 각 당사마다 기준을 만들고 예방과 점검활동을 실시하고 있다는 평이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고의적으로 매출금을 축소하는 행위는 계약해지 사유로 적발 시, 경고(공문)부터 거래중지까지 엄중하게 관리하고 있다"며 "매달 1회 모니터링 점검과 매일 매출금 점검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갤러리아백화점 역시 "2·8월 경 50%의 엔딩세일은 운영하지만 임의 할인은 절대 하고 있지 않다"며 "최근 자사에서 분기별로 점검하는 모니터링에도 적발된 사례는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임의 할인을 성행하는 입점 업체들은 매우 교묘한 수법을 활용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일반화된 임의 할인 방법에는 △바코드를 찍을 때 저렴한 가격 텍(tag)을 찍기 △정상 판매 기간에 할인을 해준 후 세일 기간 동안 매출에 등록하기 △현금 결제를 할 때 백화점 수수료(30~40%)가량을 할인하기 등이 있다.  

    이에 대해 현대백화점 한 관계자는 "계약관련과 위배되는 행위로 임의 할인을 하면 물의를 빚게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롯데백화점 측은 "예전에 가전 부문에 임의 할인이 성행했다. 임의 할인 보단 입점업체 점장이 고객에게 할인 혜택을 주는 식이었는데, 소비자 혼란이 야기될 수 있어 없애려고 노력했다"면서 "아침마다 전달·교육을 시행하지만 협력업체를 매 번 감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설명했다.    

    임의 할인을 받지 못한 고객이 항의하면 암암리에 차액을 보상해주기도 한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제 가격에 산 고객이 임의 할인 가격을 알고 이에 대해 항의하면 그 차액을 보상해주면서 상황을 무마한다는 것이다.

    한 유통 업계 관계자는 "백화점에서는 세일기간 전후에 주로 성행하고, 세일 기간에도 '말 잘 하면' 추가 할인을 해준다"면서 "이 같은 임의 할인은 단기적으로는 유통업체의 수익 구조 악화, 장기적으로는 브랜드와 백화점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를 붕괴시키고, 정상가로 상품을 구매한 소비자를 우롱하는 업계의 악습"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