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들의 거취도 못 정한 이사회가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
  • ▲ 유상석 경제부 기자
    ▲ 유상석 경제부 기자
    [취재수첩] "아~ 그 양반들 참 너무하네. 말 한마디만이라도 좀 해 주지…"
"기자들한테 아무 말도 안하기로 약속이라도 했나 보지…"

KB금융지주 임시이사회가 끝난 직후인 지난 12일 오후 6시 30분 경, 기자들 사이에서 터져나온 탄식엔 답답함이 묻어나 있었다. 

KB금융은 그동안 그룹의 수익구조가 지나치게 은행에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래서 KB금융을 이끌었던 리더들은 사업 확장을 위해 여러모로 애써왔다. 보험 분야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어윤대 전 회장은 ING생명 인수를 시도했고, 임영록 전 회장은 LIG손해보험 인수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어 전 회장은 이사회의 반대로, 임 전 회장은 금융당국의 중징계를 받은 후, 이사회의 해임 결의로 도중하차한 탓에 끝을 보지 못했다.

LIG손보 인수 작업은 금융위원회의 승인이라는 산을 넘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이 산만 넘으면 인수는 원활히 마무리되지만, 넘지 못하면 하루 1억원을 웃도는 지연 이자를 계속 지급해야 할 상황이다. 새 리더의 자리에 오르게 된 윤종규 회장 내정자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숙제가 된 셈이다.

문제는 윤 내정자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숙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어 승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배구조의 문제점으로 금융위는 이사회를 지목했다. 현 이사회에 문제가 있으니, 사외이사들더러 물러나라고 대놓고 요구한 것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이 날 열린 이사회에서 사외이사 자신들의 거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나왔다.

  • ▲ 유상석 경제부 기자

  • 하지만 회의를 마치고 나온 이사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나마 김영진 이사만이 "거취 문제에 대한 논의 자체가 없었다"고 짧게 답변할 뿐이었다. 자신들의 거취도 정하지 못했으면서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무슨 회의를 어떻게 나눴다는 것인지 어리둥절해지는 대목이다.

    물론 그들도 할 말이 있을 수 있다. "왜 당국이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하느냐"며 억울함을 토로할 수도, "우리가 책임지고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 믿어달라"고 호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그런 말 조차 꺼내지 않았다. 이들을 취재하는 기자들도, 이 모습을 지켜보는 독자들도 그저 답답할 뿐이다.

    KB금융 이사회는 임영록 전 회장과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의 대립 구도가 발생한 소위 'KB사태' 당시부터 책임론에 휩싸여 왔다. 복수의 내부 인사들은 "이들의 갈등 뒤에는 이사회가 있다"고 기자에게 귀띔했었다. 하긴, 임영록 회장을 선임한 것도, 그를 해임한 것도 결국은 이사회 아니던가.

    그런 이사회가 이제는 물러나지 못하겠다고 버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분란을 일으켜 놓고는 책임지길 거부한다. 물러나지 않으면 회사에 불이익이 발생하는 상황인데도 버티겠단다.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지만, 이제 박수 받으며 떠나기엔 이미 늦었다. 이제는 욕 덜먹고 떠나는 방법을 고민할 때다. 최소한의 명예를 지키는 결단을 내릴 것인가, 자리에 집착하며 후배들에게 영원히 치욕적 비난 받을 것인가. 이제는 선택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