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구역 흡연·온수통 미고정 등 생활 속 안전불감증도 여전자판기 등 대형 시설물 고정·탈출장비 부품 교체 등은 양호
  • ▲ 제주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한 씨스타크루즈에서 승객들이 내리고 있다.ⓒ뉴데일리경제
    ▲ 제주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한 씨스타크루즈에서 승객들이 내리고 있다.ⓒ뉴데일리경제


    '아직…….'


    16일이면 온 국민을 소위 멘붕(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뜨렸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주년을 맞는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지난 1년간 사회 곳곳에서 여러 변화가 일어났다. 하지만 여객·화물 운송 현장에서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들이 눈에 띈다.


    지난 14일 오전 8시30분 목포국제여객터미널.


    멀리서도 터미널 건물 너머로 1만5089t의 씨스타크루즈호(정원 1935명)가 한눈에 들어왔다. 매일 목포~제주를 오가는 이 배는 6825t인 세월호(정원 921명)보다 2.2배쯤 크다. 이날 해양수산부 소속 해사안전감독관의 연안여객선 안전관리 현장점검 대상이었다.


    안전점검에 동행한 취재진이 터미널에 도착해 제일 먼저 한 일은 승선권을 발급받는 것이었다.


    매표창구에서 승선권을 발급받으려면 신분증이 있어야 한다. 이름, 성별, 생년월일 등 승객의 인적사항을 확인해 전산으로 입력한 후에야 승선권이 나온다. 빠르고 정확하게 승선자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 사고대책본부는 정확한 승선자 수조차 파악하지 못해 우왕좌왕했었다.


    승선권을 받은 다음에는 개찰구로 이동한다. 개찰구에서는 파란색 점퍼를 맞춰 입은 선사 직원들이 신분증 없이 승선권만을 확인했다. 이어진 통로를 지나 여객선에 오르기 직전에 다시 한 번 신분증과 승선권을 확인받았다. 배에 오를 때까지 총 3번에 걸쳐 발권한 승객의 실제 탑승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허점이 있었다. 신분증 사진이 오래돼 얼굴을 확인할 수 없어도 인적사항만 달달 외워 자신이 맞다고 우기면 승선을 막지 않는 것이다.


    씨스타크루즈 선사인 씨월드고속훼리㈜ 직원은 "예전에는 현장에 배치된 해양경찰이 바로 신분을 확인했지만, 해양경찰청 해체 이후에는 방법이 없어 그냥 승선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 불의의 사고가 발생할 경우 승객 신원 파악에 혼선을 빚거나 확인이 더딜 수밖에 없는 셈이다.


    반면 제주국제여객터미널에서는 아직 국민안전처 소속 해경이 개찰을 참관하며 본인 여부를 확인하고 있었다.


    해경은 "제주는 무비자지역이어서 무사증 제도를 악용해 입국한 뒤 달아나 불법 체류하는 경우가 많아 (해경이) 여객터미널에 배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주는 2002년부터 무사증 제도를 도입해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에 따라 90일까지 비자 없이 머물 수 있다. 이날 목포발 여객선에도 전체 679명의 승객 중 104명(15%)이 중국인 관광객일 만큼 최근 2~3년 새 제주를 찾는 중국인이 늘고 있다.


    씨스타크루즈 매장 직원은 "예전에는 일본인 관광객이 많았지만, 요즘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대신 중국인 관광객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 ▲ 선사 관계자와 해사안전감독관이 목포국제여객터널을 출발하기 앞서 씨스타크루즈 화물칸에서 고박상태를 점검하고 있다.ⓒ뉴데일리경제
    ▲ 선사 관계자와 해사안전감독관이 목포국제여객터널을 출발하기 앞서 씨스타크루즈 화물칸에서 고박상태를 점검하고 있다.ⓒ뉴데일리경제


    세월호 침몰 원인 중 하나인 허술한 화물 고박(묶기)은 더 강화됐다. 쇠사슬이 더 두꺼워지고 결박 지점도 예전보다 30%쯤 늘었다.


    D 하역업체 관계자는 "예전에는 화물차량의 고박 위치가 6곳이었다면 지금은 좌·우 4곳씩 8곳을 한다"며 "13t 이상 차량은 최대 10곳까지도 결박한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안전기준이 엄수되고 있지는 않았다.


    해사안전감독관은 "주차장 차량 간격은 60㎝가 규정이지만, 불가피하면 사람이 통과할 정도(45㎝)로는 허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씨스타크루즈는 세월호 참사 이후로는 휴항 없이 풀가동되고 있는 처지다. 원래는 매주 월요일 휴항했다. 인천~제주를 오가던 세월호가 빠진 물류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제주산 농수산물이 새벽 4시 전에 서울 농수산물시장에 도착하려면 씨스타크루즈 같은 카페리가 매일 화물차를 실어날라야 한다.


    다시 말하면 물동량이 많을 경우 화물차 주차 간격이 안전규정보다 좁아져 자칫 과적으로 이어질 개연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적재 현장에서도 차량·화물 고박기준 강화 이후 불만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규정도 좋지만, 융통성 있게 기준을 적용하자는 볼멘소리로 들렸다.


    하역 관계자는 "날씨가 좋든 나쁘든 고박기준이 강화돼 하역 시간도 오래 걸리는 등 불만의 목소리가 없지 않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씨스타크루즈는 세월호 사고 이전부터 화물 고박을 잘 해왔고 화물 적재칸도 운동장처럼 뻥 뚫린 세월호와 달리 곳곳에 철제 기둥이 있어 적재물의 움직임이 제한되는 구조"라며 "여객선임에도 외부에 74개의 컨테이너를 싣게 돼 있던 세월호가 이상한 배였다"고 말했다.


    위급상황 때 탈출요령 등을 안내하는 방송은 사실상 유명무실했다.


    출발 전후 안내방송이 흘러나왔지만, 방송에 귀 기울이는 승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승객 대부분이 누워 잠을 청하거나 삼삼오오 모여 대화나 놀이에 빠져있다 보니 방송은 혼잣말 수준에 그쳤다.


    선사 측은 출항 1시간 전부터 객실과 4층 오픈 라운지에 설치한 2대의 벽걸이 텔레비전(TV)을 통해 비상탈출 관련 안내 동영상을 틀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마저도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선사 직원들이 객실 등을 살피는 내용이 상당 부분 포함돼 지루했고 무엇보다 객실 TV는 승객이 귀찮으면 언제든 채널을 바꿀 수 있었다.


    해사안전감독관은 "비행기처럼 안내방송이 나오는 동안에는 채널을 고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선사 측 관계자는 "라운지에 설치된 TV도 승객들이 다른 채널을 보여달라고 떼를 쓰면 난감하다"며 "그렇다고 단체로 TV 시청을 강제할 수도 없지 않느냐"고 하소연했다.


    이날도 라운지에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를 시청하는 승객들이 눈에 띄었다.


    그나마 세월호 침몰 당시 쓰러지거나 쏟아져 내려 대피를 방해했던 자동판매기 등 각종 시설물은 바닥이나 벽면에 철판을 덧대거나 접착제로 고정해놓아 양호한 상태였다.


    라운지 한 쪽에 마련된 구명동의 착용 체험장은 착용법 안내판을 보며 직접 구명동의를 입어볼 수 있어 눈길을 끌었다.


    소화기나 구명뗏목 등은 주요 부품이나 내용물이 제때 교체되고 있었다. 구명뗏목은 해수면에 일정 거리(4m) 이내로 접근하면 자동으로 펼쳐지는 자동이탈장치의 경우 지난 3월 모두 교체된 상태였다. 이 장비는 유효기간이 2년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모든 구명뗏목은 1년에 1번 작동 여부를 전수 조사한다"며 "세월호의 경우 검사업체가 점검을 대충해 문제가 됐지만, 요즘은 철저히 조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장비 점검은 강화됐으나 생활 속 안전불감증은 여전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선실 밖 비상시 집합장소에는 금연구역 표시가 돼 있었지만, 소방용 모래를 담은 통이나 쓰레기통 주변에는 담배꽁초가 있었다.


    식당 한편 선반에는 90도(℃)라고 적힌 온수통이 바닥에 고정되지 않은 채 놓여 있었다.


    한 승객은 "눈에 잘 띄는 것만 보여주기식으로 점검하지 말고 정말 승객 입장에서 어떤 것이 위험한지를 살펴야만 한다"며 "세월호 1주기를 앞두고 방송 카메라 불러 잘하고 있는 것만 보여주는 것은 말 그대로 쇼"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