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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일부 봉우리들이 흔들리는게 눈으로도 보였어요. 너무나도 무서웠습니다. 산 위에서 낙석을 두 차례나 피했죠. 원래는 산을 타고 티벳으로 이동하려 했지만, 산사태로 길이 막혀 돌아오는 길입니다."
12일간 산행을 막 마치고 게스트하우에서 만난 동서양 커플 여행객의 말이다. 약간은 상기된 얼굴.
아직 에버레스트에 수백명이 갇혀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자 산을 올려다보며 성호를 긋는다.
네팔 포카라에서는 26일 낮 아주 약한 진동이 한 차례 감지됐지만, 다행히 밤새도록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26일 밤 게스트하우스 주인장 가족은 물론 대부분의 숙박객들은 방이 아닌 공터에서 밤을 지새웠다. 자정께 여진이 있을 것이라는 풍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필자와 동행인도 침낭과 비상 식량, 귀중품을 챙겨나와 주변에 건물이 전혀 없는 페와호수 앞에서 노숙했다.
길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있는데 새벽 2시경 수 십 마리의 개들이 집단으로 짖기 시작한다. 마치 재난영화의 한 장면처럼 섬뜩했다.
그러나 다행히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어 방으로 돌아와 기절하듯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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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이다. 조간 영자신문을 보니 공식 집계된 사망자만 2700명이 넘고 부상자는 수천명이라고 한다.
참혹한 현장 사진들과 함께 약은 물론, 병원에 산소가 곧 부족해질 것이라는 우려 섞인 기사. 각국의 도움을 요청하는 기사도 있다. 인터넷을 통해 대한민국도 돈과 인력을 투입한다는 반가운 글도 접한다.
전날 긴장감에 종일토록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해 오랜만에 미역국으로 든든히 배를 채운다. 밥을 먹는 데 식당 종업원 청년이 어제밤 우리가 가려던 공원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노숙했는데 젊은이들끼리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다고 말한다.
죽음을 피하기 위해 나온 장소에서 싸움이라니.
자연은 무심하지만, 인간은 불가사의다.
오전 동네를 거니는데 다들 이제는 괜찮다고 한다. 혹은 괜찮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지인들은 "나는 신과 함께 삽니다. 어디서나 안전합니다."이렇게 이구동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