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 표대결 갈수록 불리해지자 소송 남발" 분석
  • 삼성물산의 3대 주주로 깜짝 등장하며 그룹은 물론 재계 전체를 압박하고 있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엘리엇)가 삼성그룹측의 방어전략으로 코너에 몰리자, 소송전으로 맞서는 모양새다.

    KCC가 삼성물산의 자사주를 취득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주주총회의 '백기사'로 등장했고, 삼성물산이 그룹차원에서 다가오는 합병 임시주총에서 합병 결의를 위한 우호지분을 꾸준히 끌어 모으고 있는 상황에서, 위기의식을 느낀 엘리엇이 전면적인 소송으로 시간을 벌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12일 금융투자업계와 재계에 따르면, 엘리엇은 KCC의 삼성물산 자사주 매입이 불법적인 매매라며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고 11일 밝혔다.


    엘리엇의 소송 제기는 이번이 두번 째로, 지난 9일에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결의를 금지해 달라는 '총회 소집통지 및 결의금지 등 가처분' 소송을 낸 바 있다.


    엘리엇이 잇따라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그만큼 다음달 17일 열리는 임시 주총에서 표대결이 불리해짐에 따른 불안감의 표현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통상적으로 주총장에서 표대결에 자신이 있을 경우 반대 세력과 힘(표)싸움에 집중하지만 반대의 경우 소송을 통해 시간을 끌 수 밖에 없다는 것.


    특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불합리하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리며 합병을 막는 데 주력했던 엘리엇은 합병 반대 세력을 집결시키는데 힘썼지만 삼성물산이 보통주 5.76%를 KCC에 매각함에 따라 큰 힘을 받게 되자, 소송전을 준비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상황은 엘리엇 측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삼성SDI(지분율 7.39%)와 삼성화재(지분율 4.79%) 등 특수관계인들이 삼성물산 보통주 14.06%를 보유하고 있는 상항에서 KCC가 삼성물산의 자사주를 매입, 단숨에 의결권 지분율을 20%로 만들었다.


    여기에 국민연금이 삼성그룹의 편에 설 경우 합병안 찬성 지분율이 최소 30%를 넘길 수 있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삼성물산 합병에 반대의사를 확실히 밝힌 의결권 지분은 아직까지 엘리엇의 삼성물산에 대한 지분 7.12%에 불과하다. 

    일부 소액주주들이 삼성물산 주식을 엘리엇에 위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그 비율은 여전히 1% 미만에 그치는 수준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그룹이 합병결의안을 주총에서 통과시키기 위한 안정적 지분율을 40%선으로 봤을 때 엘리엇의 지분과 우호지분을 합쳐도 그들의 의사를 관철시키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엘리엇은 결국 소송전으로 시간을 끌며 삼성을 압박하는 방법 외에는 남은 카드가 없다는 분석이다.


    결국 삼성물산의 행보에 제동을 걸고 나선 엘리엇은 소송을 포함, 다양한 시나리오로 장기전을 펼치면서 삼성을 압박해 올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엘리엇은 KCC의 삼성물산 자사주 매입에 대한 가처분 소송이 기각되더라도, 또 다른 시나리오를 전개할 가능성이 높다"며 "과거 해외 헤지펀드들이 보여준 사례를 비춰볼 때에도 소송전 전개는 예정된 수순"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과정은 지난 2003년 SK-소비린 사태 때와 거의 비슷하다.


    당시 소버린자산운용은 2003년 3월 26일 SK 지분 매입에 나서 4월 16일 14.99%의 지분을 확보한 이후 경영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그해 12월 SK 이사회가 우호지분을 확대하는 방안으로 보유 자사주의 의결권을 부활하려고 해당 주식을 하나은행에 넘기기로 하자, 소버린은 SK를 상대로 의결권 침해 금지 가처분 소송을 법원에 냈다.


    당시 법원은 소버린이 제기한 의결권 침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고 SK는 자사주 매각으로 9.7% 지분의 의결권을 확보했다. 


    결국 삼성-엘리엇 간 공방은 앞으로도 SK-소버린 사태와 상당히 닮은꼴로 진행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서로 주고받기 식으로 공방을 전개하면서 사태가 장기화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강현철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합병안이 통과되면 엘리엇의 보유 지분은 합병 비율에 따라 2% 수준으로 낮아진다"며 "엘리엇이 단기 투자를 노리고 들어온 것이 아닌 만큼, 내일부터 삼성물산 주식을 추가로 대규모 매수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결국 엘리엇은 이번 싸움을 조만간 끝내도, 아니면 계속 진행 시켜도 잃을 것이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지분매입 공시 이후 삼성물산 주가가 급등한 만큼, 엘리엇은 이번 싸움을 당장 끝내고 주식을 팔아도 큰 시세차익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끌고 갈수록 오히려 더 큰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주주로써 권리를 장기간 적극적으로 행사하며 중간 배당을 요구하는 한편, 삼성물산이 보유한 14조원어치의 삼성전자 등 계열사 주식의 현물배당을 압박해 이를 관철시킬 경우 엘리엇의 이익은 천문학적으로 불어나게 된다.


    한편 삼성물산은 엘리엇이 내달 17일 열릴 임시 주주총회에서 제일모직과의 합병 계약서를 승인하지 못하게 해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을 확인했다고 11일 공시했다.


    삼성물산은 "관할법원인 서울중앙지법에 답변서를 제출해 엘리엇의 주장을 반박하고 심문기일에 출석해 변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