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의 지분매입의도 단기 시세차익 수준 넘어서주주 자격으로 집요한 압박 지속할수록 이익
  • 삼성물산과 그룹은 물론 재계 전체를 긴장에 빠뜨린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엘리엇)의 등장은 '깜짝'수준이었지만, 물러나는데 까지는 긴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노련한 기업 사냥꾼'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저지를 위해 소송 카드를 꺼내는 등, 싸움을 장기전 양상으로 끌고 가려는 모습이다.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9일 엘리엇이 서울중앙지법에 낸 주주총회 결의금지 가처분 신청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엘리엇의 승소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엘리엇이 준비해 둔 그 다음의 수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엘리엇이 낸 가처분 신청은 내달 17일 예정된 임시 주주총회 개최 계획을 주주들에게 정식으로 알리는 행위조치 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합병을 막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법조계와 금융투자업계에선 법원이 이번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이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비율도 법 규정에 따라 두 상장사의 주가를 기준으로 정해진 만큼, 삼성물산의 자산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엘리엇의 주장이 통할 여지가 적다는 것이다. 국내 자본시장법상 합병 비율 산정을 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삼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지배구조 분야의 전문 변호사는 "자산가치와 주가의 괴리는 시장에서 굉장히 많이 볼 수 있다"며 "상장 제도는 시장 가격이 인위적으로 왜곡되지 않은 이상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이 정상적 가격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가처분신청 결과를 엘리엇 역시 이미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결국 이번 가처분 신청은 '신호탄'에 불과하다는 것.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엘리엇이 '장기전'에 대비해 자문과 소송 대리 업무를 맡긴 법무법인 넥서스 외에도 한국 내 법무 담당 인력과 복수의 국내 대형 증권사들까지 끌어들여 대대적인 협력팀을 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번 가처분 승소 여부와 상관없이 앞으로 국내와 영국 런런에서 소송 공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주주총회에서 합병이 성사돼도 엘리엇이 우호 세력을 동원해 삼성물산 지분을 추가로 사들여 임시 주주총회를 소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엘리엇이 이사 해임안과 중간 배당, 삼성전자 등 계열사 지분 매각을 요구하거나 합병 주주총회 이후 다시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을 내면 주주총회 결과와 관계없이 삼성에 큰 시련이 생기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엘리엇은 단기간 내 주가를 띄워 시세차익을 거둔 후 떠났던 일부 외국계 헤지펀드들과는 다른 전략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단기간 내 수익추구와는 달리 주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모습을 보이며 여론을 유리하게 끌고 가 결국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와 관련한 약점을 파고들어 더 큰 이익을 챙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삼성에스디에스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의 이슈로 논란을 야기한 바 있는 삼성 입장에서는 엘리엇의 이같은 공세를 가장 경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주주들 역시 '국내 대표 그룹을 살려야 하느냐'와 '주주로서 실익을 추구할 것이냐'를 두고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당장 삼성물산 지분 9.79%를 보유해 단일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도 삼성 편에 서서 해외 자본의 공습을 방어해야 할지, 엘리엇 입장을 옹호하며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지에 대해 선택을 해야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찬반 논란에 휩싸일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엘리엇은 이번 싸움을 조만간 끝내도, 아니면 계속 진행 시켜도 잃을 것이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지분매입 공시 이후 삼성물산 주가가 급등한 만큼, 엘리엇은 이번 싸움을 당장 끝내고 주식을 팔아도 큰 시세차익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끌고 갈수록 오히려 더 큰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주주로써 권리를 장기간 적극적으로 행사하며 중간 배당을 요구하는 한편, 삼성물산이 보유한 14조원어치의 삼성전자 등 계열사 주식의 현물배당을 압박해 이를 관철시킬 경우 엘리엇은 110% 목적 달성에 성공하게 된다.

    한편 이날 엘리엇은 삼성물산이 보통주 5.76%를 KCC에 매각한 것을 불법적인 시도라고 판단하며 가처분소송을 내겠다고 밝혔다.


    엘리엇 측은 "삼성물산의 자사주가 합병결의 안건에 의결권 행사가 가능한 주식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삼성물산과 이사진 및 KCC를 상대로 긴급히 가처분 소송제기를 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