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엘리엇)의 '기습'으로 시작된 삼성그룹과 엘리엇 사이의 갈등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주주 명부 폐쇄를 앞두고 전일(9일)까지 사들인 지분까지 내달 17일 열릴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남은 기간 주요 주주들을 대상으로 삼성과 엘리엇의 '우군 확보'대결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전망이다.
1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엘리엇은 현재 들고 있는 7.12% 지분만 갖고 삼성물산 주총에 참석하게 된다.
엘리엇은 지난 4일 '경영 참여 목적'에서 삼성물산 주식을 매입했다고 공시했는데, 자본시장법상 '냉각 규정'에 따라 5거래일이 되는 11일까지는 추가 지분을 매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은 변수는 엘리엇이나 삼성물산과 연대가 가능한 국·내.외 큰 손들이 이날 얼마나 많은 지분을 사들였느냐에 달려있다.
삼성물산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9.79%) 등 국내 연.기금과 자산운용사는 삼성물산에, 외국인 주주들은 엘리엇의 우호 세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일반적이지만, 주주마다 서로 셈법이 다를 수 있어 변수가 크다.
이에 따라 주총일까지 삼성그룹측과 엘리엇 사이에 본격적인 우호 지분 확보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엘리엇은 이미 지난 5일 국민연금 등 삼성물산 주요 주주들에게 합병 반대에 동참해 달라고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며 여론전에 나선 바 있다.
또 9일에는 삼성물산 주주총회 결의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해 법적 공방을 시작했다.
엘리엇은 "합병안이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삼성물산과 이사진들에 대한 주주총회결의 금지 등 가처분소송을 제기하는 법적 절차를 시작했다"며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는 엘리엇이 다음 달 예정된 주총까지 삼성물산과 협의를 시도하지 않고 곧바로 법적조치에 들어간 이유에 대해 관심을 보이며,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을 무산시킬 수 있는 우호 지분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우호 세력을 모으기 위해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보고있다.
결국 삼성물산과 엘리엇 대결의 관건은 각자가 얼마나 우호세력을 모을 수 있는지 여부다.
엘리엇측이 33%를 넘는 삼성물산 지분을 확보한다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무산된다.
상법상 주주총회는 과반수 주주의 참석으로 성립되고 특별 결의는 참석주주의 2/3 찬성으로 결의된다.
단 참석주주의 2/3 결의는 전체 발행 주식의 1/3을 넘어야 한다. 엘리엇이 1/3의 지분, 33.34%의 지분을 확보한다면 삼성물산의 합병 결의를 무산시킬 수 있다.
양쪽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주요 주주들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이후 가치, 합병 무산에 따른 주가 하락 가능성 등을 두루 고려하면서 '합종연횡'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엘리엇이 향후 주가 흐름을 보아가며 단기 차익을 챙기고 발을 뺄 가능성도 남아 있다. 이 경우 엘리엇은 이번 주총에서 여전히 의결권을 갖게 되지만 합병 반대의 명분을 완전히 잃게 된다.
현재까지 드러난 주요 주주의 지분 보유 현황으로는 삼성그룹과 엘리엇 어느 쪽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삼성그룹이 가진 삼성물산 지분은 2대 주주인 삼성SDI의 7.39%를 비롯해 삼성화재(4.79%), 이건희 회장(1.41%), 삼성복지재단(0.15%), 삼성문화재단(0.08%), 삼성생명(0.16%) 등 13.99%다. 이 밖에 삼성물산이 자사주 5.76%를 보유하고 있지만 의결권이 제한돼 표결이 벌어졌을 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엘리엇은 7.12%의 지분만 보유하고 있지만 엘리엇과 연대 가능성이 제기되는 외국인 주주의 움직임이 최근 심상치 않다.
삼성물산의 외국인 지분율은 9일 기준 33.70%가 넘는다. 전일에도 외국인들은 장내에서 삼성물산 주식 48만주를 순매수했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327억원에 달한다.
이 지분이 모두 집결되면 제일모직 합병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특히 일부 외국인 주주는 이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 의견을 표명하면서 엘리엇과 '느슨한 연대'를 시사하기도 했다.
삼성물산 지분 0.35%를 보유한 네덜란드연기금자산운용사(APG)는 "삼성물산의 가치는 높은 데 반해 합병 비율이 너무 낮다"며 "불공정한 합병 가격이 조정되지 않으면 합병에 찬성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엘리엇과 직접적인 공조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반대 표를 던진다면 결국 엘리엇 측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
또 공시 의무가 없는 5% 이하의 수준에서 삼성물산 지분을 대량 보유한 외국인 기관 투자가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2, 제3의 복병이 언제, 어떻게 주총장에 등장할 것인지 현재로서는 예측이 어렵다.
이 밖에 삼성물산 지분 2.05%를 보유한 일성신약도 이번 합병에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국내의 일부 개미 투자자들도 인터넷 카페를 개설, 합병 계획안에 불만을 표출하면서 엘리엇에 주권을 위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