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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정거래위원장이 출석한 국회 정무위. 의원들의 단골 레퍼토리가 이어진다.
"본 의원이 지난번 지적한 건에 대한 조사는 시작했습니까?"
"이거는 문제가 많은데 공정위가 나서야하는거 아닙니까. 조사하실거죠?"
곤혹스런 표정의 공정거래위원장은 주변의 국과장들과 간단한 논의후 언제까지 조사하겠다는 답변을 내놓는다.
최근 공정위는 시내 면세점 입찰참여 기업을 대상으로 독과점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지난주 국회 정무위에서 박영선·민병두 의원 등이 "관련 업계에서 롯데와 신라의 시장점유율이 80%가 넘는다"며 "면세점 추가 허용에 대해 공정위가 분명한 입장을 내놓으라"고 촉구한 직후였다.
신규사업자 선정이 3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터져나온 돌발변수에 기업들은 낭패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공정위가 이들 기업을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판단해 신규사업자 선정이 경쟁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관세청에 전달할 경우 심사위원들의 판단에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
하지만 공정위의 이번 조사는 영 떨떠름하다.
관세청은 이미 시내면세점 신규사업자 공고를 내기 전 공정위에 시장지배적 사업자인 롯데와 신라의 입찰참여가 공정거래법 적용여지가 있는지를 문의했고,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답변을 마친 상태다.
공정위는 또 호텔신라와 현대아이파크가 합작해 세운 법인 HDC신라면세점의 결합건도 진작에 승인을 내준 바 있다. 이래저래 등 떼밀린 조사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
공정위는 다음달부터 소셜커머스 업체들에 대한 자료수집을 시작한다. 이후 곧바로 실태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이건 역시 국회發 청부조사다.
지난 17일 정무위 업무보고에서 김영환 의원은 정재찬 위원장에게 "티몬, 위메프 등 소셜커머스 업체가 자본잠식 상태에 있다"며 "소셜커머스의 수수료 책정과 대금 지급 문제 등 입점업체 피해 조사를 해달라"고 했다.
또 옥션이나 지마켓, 11번가 세 회사가 수수료를 동일하게 12%로 책정하는 등 담합이 의심된다며 공정위의 개입을 촉구했다. 김 의원은 스마트폰 배달앱 수수료 문제까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정 위원장으로부터 "인력의 한계는 있지만 최선을 다해 (실태를) 파악 하겠다"는 답변을 이끌어 냈다. -
시민단체들의 거듭된 요구로 시작했던 영화관 '팝콘' 조사도 여러모로 논란이 일었다. 참여연대 등은 대형 멀티플렉스들이 원가 600원에 불과한 팝콘을 5000원에 팔고 350원 짜리 생수를 2000원에 팔고 있다며 공정위가 나서라고 거듭 채근했다.
이번에도 등 떼밀린 공정위는 조사를 벌인 뒤 팝콘의 경우 원가 산출이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다만 담합이나 끼워팔기, 광고 무단 상영 부분은 계속 살펴보겠다고 했다.
공정위 내부에서는 "어쩌다 공정위가 가격조사까지 하는 꼴이 됐다"며 한탄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시장경쟁 체제에서 가격에 대해 규제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기업마다 들어가는 비용이 다른 상황에서 '팝콘의 적정가는 얼마'라고 특정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 경우 공정위가 가격을 정해주는 꼴이어서 시장경쟁과도 맞지 않다. 공정위 역할은 경쟁의 결과인 가격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
이밖에도 정재찬 위원장은 국회 보고에서 또다른 각종 조사나 발표 계획을 쏟아냈다.
우선 40대 대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일감 몰아주기 조사 결과를 금명간 발표하겠다고 했다. 공정위는 지난 2월부터 주요 대기업 집단을 대상으로 서면보고서를 제출받고 내부검토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한진과 현대 그룹 등 일부 기업에 대해서는 현장조사도 벌인 바 있다.
또 상반기 하도급 대금관련 불공정 관행에 대한 현장점검에 이어 하반기에는 기본장려금 폐지에 따른 각종 비용전가행위 등 가맹본부의 위법행위에 대해서도 감시를 강화하겠다고도 했다. 최근 메르스 확산으로 인한 소비자들의 불안심리에 편승한 거짓·과장광고 의심 사례들도 집중적으로 감시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문제는 공정위의 소화 능력이다. 공정위 전체직원은 500여명에 불과해 중앙부처 내에서도 미니부서에 속한다. 순수 조사인력은 이 보다 훨씬 적다.
절대 인원이 부족한 터에 조직 확충과 인력 충원은 제때 이뤄지지 않는다. 지난해 20여명에 달했던 신입 사무관은 올해의 경우 단 세명에 그쳤다. 일감몰아주기 등 대기업 조사 전담조직 구성 등은 늘 공론에 그친다. 애써 키워놓은 베테랑 조사관들의 중간 이탈도 빈번하다.
기왕에 벌여놓은 조사건도 수두룩하다. 늘 늑장 조치라는 비난을 달고 사는 이유다. CD 금리 담합 조사건은 벌써 3년째 답보상태고 해를 넘긴 사안도 부지기수다. 이런데도 국회-시민단체-관련 협회-이해 당사자들의 조사요구가 빗발치고 공정위는 늘 끌려다닌다.
공정위의 스탠스를 다시 한번 고민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