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사태에 뛰어든 정치권의 연이은 실축이 국민들의 빈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애당초 정치권은 재계 서열 5위인 롯데가 국내 경제에 차지하고 있는 위상 등을 감안하더라도 개별 기업의 경영권 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청와대와 정부 역시 "개별 기업의 사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며 선을 그어왔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순전히 여론 때문이다. 롯데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거미줄처럼 이어진 순환출자제도, 후진적 경영 행태, 일본 기업 논란 등이 잇따르면서 반기업 정서가 확산되자 황급히 소방수를 자임, 사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문제는 새누리당이든, 새정치민주연합이든 사태 해결에 도움은 주지 못할 망정 혼란만 가중시켰다는데 있다.
새누리당은 롯데그룹의 핵심 주주인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한 행사를 추진하다 사흘 만에 없던 일이 됐다. 지난 7일만 해도 김무성 대표가 롯데의 주가 하락을 언급하며 "국민연금은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방안을 적극 강구해 달라"고 했다. 이에 후속 대책으로 새누리당은 홍완성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장을 국회로 불러들여 관련 보고를 받기도 했다.
이때 당 안팎에서는 국민연금의 경우 주식보유 목적을 '단순투자'로 한 데다가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와 새누리당이 법 개정도 불사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뒤따르기도 했다.
새누리당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홍 본부장과 면담 뒤 "법률적 제약 때문에 적극적 주주권 행사가 어렵다"고 김무성 대표에게 보고했다. 김 대표도 철회를 받아들였다.
국민연금의 주주권을 강화할 경우, 정부가 국민의 돈으로 시장과 기업을 지배하는 '연금사회주의'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데다가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다른 기업들로 이어질 경우 '관치경영' 논란은 불보듯 뻔한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계에서 법 개정의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은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였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여전히 국민연금의 주주권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오영식 최고위원은 12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 여당은 순환출자금지강화법안과 국민연금의 주주권 강화를 당장 시행에 옮겨야 한다"면서 "립서비스만 하는 여당으로는 제 2의 롯데 사태를 막지 못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또 새정치연합 이언주 원내대변인은 "재벌대기업 앞에 한 없이 작아지는 새누리당의 모습에 국민들은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오발탄'은 이뿐 만이 아니다. 롯데 사태의 후속 대책의 핵심이었던 순환출자금지도 '유야무야' 됐다. 지난 6일 정부와 새누리당은 긴급 당정협의를 열고 기업 총수가 가진 해외 계열사 지분을 의무적으로 공개하기로 했다. 단 순환출자제도 개선은 자율적으로 맡기기로 했다.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롯데호텔의 상장을 추진하고 순환출자를 개선하겠다고 선언한 게 다행이라는 평가가 여의도 안팎에서 나오기도 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롯데 사태는 내달 국정감사 때 또 다시 타오르게 될 것"이라며 "국민적 관심사가 높으면 우선 달려들고 보지 않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내년 총선을 앞둔 마지막 국정감사이기 때문에 심기일전 해야 하는 의원들은 일찌감치 자료 수집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모두가 포퓰리즘을 쫓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