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순위채 발행·유상증자 등 활발자본확충 통해 재무건전성 지표 제고 포석
  • 최근 금융당국이 보험사들의 자본 규제를 완화해줌에 따라 후순위채권·신종자본증권 발행 및 유상증자 등 자금수혈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보험사들의 건전성 여부를 가늠하는 지급여력(RBC·Risk Based Capital, 위험기준자기자본)비율을 산정할 때 신종자본증권의 기본자본 인정비율을 현행 15%에서 25%로 상향하고, 선제적인 후순위채권 발행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손보업계 2위사인 현대해상화재보험은 설립 이래 처음으로 40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를 최근 발행했다. 이에 따라 이 회사의 RBC비율도 소폭 개선될 것으로 전망됐다. 강승건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번 후순위채 발행 성공을 통해 이 회사의 RBC비율은 23.4%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10월말 기준 예상 RBC비율은 185.7% 정도"라고 봤다.

    RBC비율은 필요한 자본 대비 가용자본의 비율로 보험사에 적용되는 자기자본 규제 제도다. 보험사가 책임준비금 외에 추가로 순자산을 보유토록 해 예상치 못한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보험계약자에 대한 보험금 지급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는 안전장치다. 보험업법은 보험회사의 RBC비율을 100% 이상 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감독당국은 이보다 높은 150% 이상을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후순위채의 경우 가용자본에 포함되지만 그동안 금융당국의 규제 등으로 보험사들의 후순위채 발행은 저조했었다.

    현대해상에 앞서 10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를 발행한 메리츠화재는 이 가운데 600억원은 차환, 400억원은 지급여력 인정 차감분을 상쇄하는데 사용했다. 향후 성장 전략의 부담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RBC 비율 하락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었다. 메리츠화재는 2년여 전에도 2460억원의 후순위채를 발행한 바 있다.

    KDB생명은 지난 9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총 9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를 발행했다. 이 역시 RBC비율 개선 목적이었다. KDB생명은 이번에 발행한 후순위채를 내년 3월에 만기가 도래하는 1250억원 가량의 후순위채 차환자금으로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KDB생명은 RBC비율을 개선함과 동시에 매년 부담해야 하는 금리부담도 종전보다 3%포인트 줄일 수 있게 됐다.

    후순위채 발행이 여의치 않은 보험사들은 유상증자를 단행하고 있다. MG손해보험은 지난 3월 유상증자를 통해 400억원의 자본을 확충한데 이어 지난달에는 또 다시 825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올 상반기 말 현재 기준 MG손해보험의 RBC비율은 116.5%로, 금융당국의 적기시정조치 기준인 100%를 겨우 넘겼기 때문이다.

    대만 푸본생명은 현대라이프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이에 따라 현대라이프는 220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보험사들의 자금유치 활동이 활발한 이유는 재무건전성 지표인 RBC비율을 개선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보험업계 RBC비율이 감소 추세에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말 현재 기준 보험사 전체의 RBC비율은 278.2%로 전분기 말(302.1%) 대비 23.8%포인트 감소했다. 업권별로는 생명보험사 RBC는 291.9%로 전분기 말에 비해 28.2%포인트, 손해보험사는 250.9%로 14.4%포인트 하락했다.

    특히 올 연말에는 신용리스크 신뢰수준 상향조정 등 RBC비율 관련 규제 강화가 예정돼 있어 보험사들은 분주하다. 금감원 관계자는 "향후 금리인상에 따른 RBC비율 하락 등 건전성이 우려되는 일부 보험사에 대해서는 자본확충 및 위기상황분석 강화 등을 통해 재무건전성을 제고토록 지도·감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오는 2020년 도입될 국제회계기준(IFRS) 2단계도 발목이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IFRS 2단계 도입 시 생명보험산업의 RBC비율은 286%(2013년 말 기준)에서 115%로 절반 이상 떨어진다.

    이같은 상황이어서 대여섯 곳의 보험사들이 후순위채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김고은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KB손해보험의 경우 RBC비율을 경쟁사 수준인 200%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약 4000억원의 자본확충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KB금융지주가 KB손보의 RBC비율 제고 방안으로 연내 자사주 매입 의사를 밝혔지만, 이 방안으로는 역부족이어서 수개월 내에 후순위채를 발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