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그들은 자신이 누구라 생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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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러리스트의 아이폰을 열어달라는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이를 거부한 애플이 정면충돌하고 있다. 이들의 갈등은 국가안보와 사생활 보호, 두 기본권의 논쟁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17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미국 정부, 일부 정치인들은 법원 명령을 거부한 애플을 일제히 압박하기 시작했다.

    애플은 아이폰 잠금해제가 사생활 침해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조치가 될 수 있다는 이념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작년 12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버너디노의 한 장애인 재활·복지지설에서 부부가 총기를 난사해 14명을 살해한 참사다.


    이들 부부는 이슬람 극단주의에 심취한 것으로 조사됐으나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와 같은 해외 세력의 지원을 받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수사 당국은 이 사건이 일단 극단주의 세력들로부터 영감을 받은 자생적 테러라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공범의 존재 여부, 외부 세력과의 접촉에 대한 사실확인은 추가 테러의 예방, 대테러 전략 수립과 직결되는 사안이었다.


    미국에서는 극단주의 세력에 영향을 받은 자생적 테러, 외로운 늑대들이 더 큰 안보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후속 조치를 취하는 데 테러범의 아이폰 정보를 보호하는 애플의 강력한 보안체계가 걸림돌로 등장했다.


    FBI는 아이폰에 틀린 암호를 10번 입력하면 자료가 삭제될 수 있는 데다가 암호 조합을 모두 시도하는 데 최장 144년까지 걸릴 수 있다는 한계에 봉착했다.


    석달 가량 속을 태우던 FBI는 법원 명령을 통해 애플의 협조를 얻어내는 강제수사를 선택했다.


    하지만 팀 쿡 애플 CEO는 "우리 이용자들을 지키려고 강력한 암호 체계를 구축한 기술자들이 역설적이게도 우리 이용자들이 덜 안전하도록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반발했다.

    그는 FBI에 협조해 보안 장벽을 우회할 '백도어'(뒷문)를 한 차례 만드는 것 자체가 사생활 보안을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사기관이 아이폰 잠금해제에 사용되는 기술을 이번 한 차례에 국한되지 않고 계속 사용할 것이라는 강한 의심도 잇따랐다.


    쿡은 "현실 세계와 비교하면 은행, 가게, 가정집 등의 자물쇠 수억개를 딸 수 있는 '마스터 키'를 만들어주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애플이 미국 정부의 요구에 수긍했다가는 세계 각국의 다른 정부로부터도 압박을 받을 것으로 우려했다.


    백도어 기술이 확인되면 자국민을 수사하거나 감시할 때 애플의 협조를 직간접적으로 요구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갑자기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다른 업체들의 입장까지 대변하게 된 애플은 그 때문에 '나쁜 선례'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더 강하게 밝히고 있다.

     

    미국 법무부는 애플의 이 같은 입장이 국가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법무부는 성명을 통해 "애플이 미국 본토에서 발생한 주요 테러에 연루된 범인의 전화기에 접근하는 데 도움을 주기를 거부해 불쾌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FBI의 요구는 애플의 주장과는 달리 휴대전화기 하나를 여는 데 국한될 뿐이라고 주장했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도 "법무부가 애플에 제품을 다시 고안하거나 새로운 백도어를 만들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다"고 거들었다.


    샌버니디노에서 사건을 수사한 카운티 검찰 마이크 라모스는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애플이 총기난사 희생자와 유족들을 모독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라모스 검사는 "법무부가 알고 싶은 세부사실은 다른 모든 미국인이 알고 싶은 것과 똑같다"며 "다른 위협이 있는지, 공범이 있는지, 그런 것들인데 그걸 왜 못 들어주는지 모르겠다"고 울분을 토했다.


    국가안보를 우선시해온 보수진영 정치인들은 미국 정부의 견해를 전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공화당의 대선 경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이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법원에 100% 동의한다"며 "상식선에서 볼 때 이번에는 아이폰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공화당 후보인 마르코 루비오(플로리다) 상원의원도 "애플이 자발적으로 테러범의 아이폰을 열었으면 좋겠다"면서 "힘든 문제지만 정부와 IT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애플이 법원 명령을 거부함에 따라 사법처리가 예고됐으며 애플이 뜻을 굽히지 않는다면 공방은 항소법원, 대법원으로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WSJ는 애플이 '위험한 게임'에 뛰어들었다고 논란을 총평했다.


    완전한 악당이 저지른 국내 테러에 대한 후속대책을 위해 정부가 요구하는 사안이라서 거부할 명분이 약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아울러 분석대상인 아이폰이 구형(아이폰 5S)이라서 신형 모델들의 보안에 미칠 악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WSJ는 애플이 법정공방에서 패배한다면 일상 기기들의 보안을 강화해가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다른 업체들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에서는 정부가 국민의 사생활을 무작위로 감청했다는 에드워드 스노든 전 국가안보국(NSA) 직원의 폭로를 계기로 사생활 보호가 국가안보에 우선시되는 경향을 보여왔다.


    로이터통신은 샌버너디노 테러를 계기로 정부 관리들이 국가안보의 열세를 만회하고 분위기를 뒤집을 기회를 잡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