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로고

집회 신고 했으니 노상방뇨도 OK…"집시법 개정 시급"

초중고 주변은 안 되는데 보육기관은 된다?… '입법 미비'불법 농성에 멍드는 동심…"어린이집, 무방비 노출전투적·폭력적 '구태'… "외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입력 2016-05-10 19:06 | 수정 2016-05-11 10:05

▲ 폭력과 욕설로 아수라장이 된 광화문. ⓒ뉴데일리.


대한민국은 집회신고만 하면 길거리에서 술 마시고 노상방뇨를 해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국가다.

지난해 여름 서울 광화문, 티브로드 사무실이 입주한 흥국생명 빌딩 앞에서는 지독한 지린내가 진동을 했다.

태광 티브로드 하청업체에서 해고당한 노동자들이 복직을 요구하며 집회를 벌이는 과정에서, 일부 집회 참가자들이 야간에 술을 마시고 길거리에다 소변을 본 것이다.

이곳을 지나다니는 시민들은 역한 냄새를 참다못해 경찰에 신고했지만 "집회신고를 한 상태여서 우리도 답답한 상황"이라는 하소연만 들어야 했다.

원칙도 없고, 신뢰하기도 어려운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이 약자를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시민의 불편을 가중시키고 있는 셈이다.

◆ 집회에 멍드는 동심… 어린이집, 무방비 노출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은 '집회를 하면 불편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인식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집회 참가자들이 도로를 불법 점거해 광화문 대로가 완전히 막히고, 귀가 따가울 정도로 소음이 심해도, 사람들은 이런 비정상적 상황에 이미 익숙해진 듯 이렇다 할 항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경찰에 신고를 해봐야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성장 풍경은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집회 천국' 광화문을 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술판을 벌이는 시위자들과 담배꽁초, 쓰레기더미가 나뒹구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공공질서 무시는 대한민국 집회 문화에서 문제 축에도 못 끼는 애교 수준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이제는 경찰이 시위대에게 집단폭행을 당했다는 뉴스가 나와도 별다른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요지경 세상이 됐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집회로 피해를 입고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현행 집시법은 학습권 제한을 우려해 초중고 학교 주변에서는 집회를 막고 있다. 그런데 집회 금지 장소에서 어린이집은 빠져있다.

입법 미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어린집은 교육기관은 아니지만 보육기관이다. 이에 따라 보육기관인 어린이집 주변에서의 집회 역시 초중고 학교와 마찬가지로 제한을 둬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덕분에 어린이집 앞은 집회 천국으로 변했다. 서울 강남역 8번 출구로부터 반경 50m 내에는 어린이집이 3곳이나 있다.

이들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아동은 모두 300여명. 업무시설 밀집지역이다 보니 아이들은 보통 부모들의 출퇴근 시간에 맞춰 아침 7시쯤부터 오후 5시까지 어린이집에 머무른다.

어린이집 코앞에는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과천철대위'(과천 철거민 대책 위원회)가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어울리지 않는 동거는 부작용을 낳기 마련. 어린이집 가는 것을 무서워하는 아이에서부터 농성장 노래를 따라 부르는 어린이까지, 어른들 일에 끼인 동심은 시간이 흐를수록 깊게 멍들고 있다.

집회장 인근 한 어린이집 원장은 "집회 참가자들도 부모의 마음으로 어린이들을 바라봤으면 한다"며 "아이들 잠재의식 속에 시위 참가들의 과격한 언행이 스며들지는 않을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 '구태' 집회… 외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은 일

일각에서는 우리나라가 유독 집회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야권을 중심으로 정치권에서는 집회의 자유를 지금보다 더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하지만 이 말은 논리적 모순을 갖고 있다. 외국과 우리나라는 집회 문화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 남에게 피해를 주는 집회는 상상하기 어렵다. 관련 법을 어기면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매서운 처벌이 이뤄진다.

반(反)자본주의 투쟁으로 알려진 미국의 '월가 시위'만 해도, 당시 집회 참가자 대다수는 극도로 제한된 공간에서 조용히 구호만 외쳤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이들이 집회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이들의 움직임은 조용했다.

극심한 경기침체와 중산층 붕괴현상이 겹치면서 벌어진 미국의 월가 시위는, 2011년 미국 전역을 뒤흔들면서 73일간 이어졌다.

법 집행 측면에서도 다른 나라의 집회 및 시위는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2013년 미국 경찰은 집권 민주당의 22선 랭걸 의원을 시내 한복판에서 체포했다. 도로 위에서 불법 농성을 벌였다는 게 이유였다. 당시 그는 83세의 고령이었지만 미국 경찰의 법 집행은 엄정했다.

랭걸 의원은 시위대의 폭력에 가담한 사실도 없었지만, 관용은 없었다. 다른 나라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때문에 이들 나라는 우리와 달리 관련 법령에 복잡한 내용의 조건을 달지 않는다.

이와 달리 우리의 집회 문화는 지나치게 전투적·폭력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 노조는 철저히 소외돼 있었다. 이때부터 '싸워서 쟁취해야 한다'는 의식이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노동자는 항상 약자라는 방정식이 탄생했고, 이 같은 구시대적 인식이 시대가 바뀐 지금까지도 우리의 집회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이옥남 정치실장은 "미국과 영국, 유럽 등은 남의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집회를 벌이는데, 우리나라는 집회신고만 하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며 "서로를 배려하는 분위기에서 이뤄지는 집회만이 존중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최종희 choi@newdailybiz.co.kr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뉴데일리 댓글 운영정책

자동차

크리에이티비티

금융·산업

IT·과학

오피니언

부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