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상주 교통안전교육센터 가보니… 30년 경력의 베테랑 운전자도 겸손해지는 곳실습 위주의 7개 교육과정… 교육 후 교통사고 발생 건수 54%·사망자 수 67% 감소
  • ▲ 빗길 급제동 교육.ⓒ교통안전공단
    ▲ 빗길 급제동 교육.ⓒ교통안전공단


    "어~! 어~! 어~~!" 외마디 소리를 몇 번 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속수무책이었다. 차는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움직였다. 막상 차가 미끄러지자 출발 전 머릿속에 그려봤던 생각들은 하얗게 사라졌다. 차선 바깥쪽이 천 길 낭떠러지였다면 살아서 이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자. 지난 17일 오후 경북 상주에 있는 교통안전교육센터. 물과 타일 등으로 길바닥의 마찰계수를 줄여 빙판길 상황을 가정해 만든 곡선 미끄럼주행 코스에 섰다.

    첫 번째 실습 주행은 바깥 코스를 따라 정상적인 상태의 노면을 시속 50~60㎞로 도는 것이다. 기자의 운전경력은 19년이다. 그동안 여러 상황에서 산전수전 겪어왔다고 나름 자부한다. 서서히 가속해 곡선코스에 접어들었을 때 속도는 시속 60㎞였다. 몸이 심하게 쏠리기는 했으나 제동을 걸지 않고 코스를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순간이지만, 속으로 자화자찬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이었다. 눈앞에 급회전 코스가 나타난 것이다. 급하게 핸들을 꺾었지만, 차량은 차선을 벗어났던 것 같다. 급제동에 몸도 심하게 흔들렸다. 교관이 실습 전에 자신 있으면 그대로(속도를 유지한 채) 통과해보라고 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운전자가 돌발상황에 대비해 안전운전하지 않고서 교관에게 '왜 코스정보를 제대로 주지 않아 골탕 먹였느냐'고 따져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사고는 순식간에 찾아오기 때문이다.

    두 번째 실습은 안쪽 미끄럼주행 코스에서 이뤄졌다. 이번 교육센터 방문에서 학수고대했던 순간이었다. 보통의 경우 이런 아찔한 운전상황을 경험한다면 사고 위험과 보험처리 등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기자는 과거 눈 내리는 가파른 고갯길과 빙판길이 돼버린 출근길 도심 교차로에서 차가 미끄러지며 아찔한 순간을 경험했던 터다. 지식으로만 알고 있던 미끄럼 대응 운전법을 써먹어 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코스였다.

    '예전에는 불의에 당하다 보니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지만, 이번엔 다르다. 잠시 뒤 저 위치에서 차량이 미끄러진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으니 핸들과 제동장치를 적절히 조작하면 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예상은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 ▲ 빗길 급제동.ⓒ교통안전공단
    ▲ 빗길 급제동.ⓒ교통안전공단


    "어~! 어~! 어~~!"라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차량은 여지없이 미끄러졌고 내 통제에서 벗어났다. 긴장한 탓에 손발은 따로 놀아 제동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교관의 비웃음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거기까지였다. 교관은 빙판길 미끄럼주행에 대한 대처법은 교육하지 않고 빗길 긴급제동교육 코스로 이동했다.

    김준년 교육센터 교수는 "빙판길 위급상황에서 차량이 미끄러질 때 즉시 차 뒤꽁무니가 돌아가는 방향으로 핸들을 조작하면 차량을 제어할 수도 있다"며 "VIP 경호원 등은 반복적인 실습교육을 받기도 하지만, 일반인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차량이 미끄러지는 순간에 핸들을 조작해야지 이미 돌고 있는 상황에서는 의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 설명대로면 차량이 미끄러지는 것은 눈보다 촉감, 특히 좌석에 밀착된 엉덩이에서 먼저 느끼게 된다. 경호원들도 이런 동물적 감각을 익히기 위해선 무수히 많은 반복훈련을 해야 한다. 일반인이 한두 번 교육받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셈이다.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은 미리 속도를 줄이는 것이다. 도로교통법에는 노면이 젖었거나 눈이 20㎜ 미만으로 쌓였으면 최고속도의 20%, 안개나 폭우로 100m 앞이 안 보이거나 눈이 20㎜ 이상 쌓이면 최고속도의 50%를 줄이라고 돼 있다.

    김 교수는 "하지만 대부분 운전자가 면허를 딴 후 이런 기준을 잊어버리거나 알고있어도 잘 지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 ▲ 빗길 급제동.ⓒ교통안전공단
    ▲ 빗길 급제동.ⓒ교통안전공단


    빗길 긴급제동코스에서는 ABS(잠김 방지 제동시스템)를 끈 상태에서 급제동 상황을 체험할 수 있었다. ABS는 급제동 때 바퀴가 잠기는 로크업 현상을 방지하고자 개발된 특수 브레이크다. 차량은 관성에 의해 여전히 진행하는 데 바퀴가 잠겨버리면 미끄러지거나 옆으로 밀려 운전자가 차의 방향을 제대로 제어할 수 없게 된다.

    이럴 때는 브레이크를 세게 밟았다 느슨하게 풀어주는 펌핑 브레이크를 반복해야 하지만, 위급상황에서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ABS는 전자제어나 기계장치를 통해 1초에 10회 이상 펌핑 작동을 하게끔 설계됐다.

    기자는 시간관계상 ABS를 끈 상태에서만 실습했다. 빗길에서 급제동한 뒤 핸들을 끝까지 돌렸지만, 차량은 방향을 틀지 못했다. 제동거리 안에 위험물이 있었다면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전문가들은 ABS를 지나치게 믿지 말라고 조언했다. ABS가 장착된 차량은 제동 안전성에서 분명히 유리하다. 하지만 제동거리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고 무엇보다 빗길이 아닌 일반 노면 상태에서도 ABS만으로는 조향성 확보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 코스에서도 정답은 감속이었다. 비나 눈, 낙엽 등으로 노면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미리 속도를 줄이거나 차간 거리를 더 확보해야 한다. ABS가 없거나 고장 난 차량은 제동할 때 브레이크를 여러 번 짧게 나눠 밟는 게 효과적이다.

    교관들은 교육센터 교육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띠 효과를 체험하고 올바른 운전자세를 배우는 기본주행교육이라고 밝혔다.

    안전띠 교육은 미착용 상태에서 시속 10㎞ 이하 급제동 상황을 체험했다. 뒷좌석에 앉자 교관은 안전을 위해 안경을 벗어놓으라고 했는데 잠시 뒤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출발 이후 급제동과 함께 몸이 갑자기 앞쪽으로 쏠리면서 얼굴이 운전석에 부딪힐 뻔했다. 같은 상황에서 안전띠를 매면 상체가 갑자기 꺾이는 것을 안전띠가 잡아줬다. 최대 2톤의 힘을 견딘다는 폭 46㎜의 안전띠 착용이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교관은 "10㎞ 이하는 빠른 속도가 아니어서 충격이 크지 않을 거로 생각하지만, 엉덩이가 들리면서 상체가 꺾이게 된다"며 "충격은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므로 일반적인 주행속도인 시속 60㎞ 이상에서의 충격은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교관은 "안전띠는 어깨, 골반 등 몸의 단단한 곳을 지나게 매야 한다"며 "동반자석에서 잘 때 안전띠가 목에 걸치는 경우가 있는데 사고가 나면 아주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자칫 흐트러지기 쉬운 운전자세도 중요하기는 마찬가지다. 자세는 장시간 운전할 때 피로도와 위험상황에 대응하는 시간, 부상 정도 등에 영향을 끼친다.

    올바른 운전자세는 시동을 켠 뒤 엉덩이를 좌석에 밀착하고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무릎이 살짝 굽어지는 정도가 적당하다. 등받이는 90도로 세운 뒤 15도쯤 눕히는 게 이상적이다. 손은 어깨를 좌석에 붙이고 양손을 뻗었을 때 핸들을 쥘 수 있어야 한다. 머리받이는 옆에서 봤을 때 눈과 귀 부위가 중앙에 오도록 해야 목이 꺾이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짧은 체험시간이었지만, 교육 후 든 생각은 '안전운전에 왕도는 없다'는 것이었다. 올바른 자세로 감속·조심 운전하는 것이야말로 나와 내 가족을 지키는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이었다.

    김 교수는 "교육센터에서 야간교육을 포함해 이틀간 16시간의 교육을 받으면 베테랑 운전자도 운전을 두려워하게 된다"며 "특히 운수회사는 교육 이후 사고가 줄어 보험료율이 현저히 떨어지므로 '교육이 왜 안 되느냐', '취소된 교육 없느냐'고 문의한다"고 말했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2009~2014년 안전운전 체험교육을 받은 운전자를 대상으로 교육 전후 1년간 교통사고 발생현황을 추적 조사한 결과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7662건에서 3508건으로 54%, 사망자 수는 220명에서 50명으로 67% 각각 줄어들었다. 누적교통벌점은 52%, 교통사고로 말미암은 사회적 비용은 68%가 각각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오영태 공단 이사장은 "운전경력 30년의 베테랑 운전자도 겸손하게 만드는 곳이 바로 교통안전교육센터"라며 "앞으로도 돌발상황별 운전자의 대처능력을 파악할 수 있는 장비를 도입하고 실습 위주의 교육을 통해 안전운전을 확산하고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공단은 오는 10월 말까지 경기 화성시에 수도권 교통안전교육센터를 건립할 예정이다. 이곳에는 7개 코스의 실외교육장과 강의실, 200대를 세울 수 있는 주차장이 조성된다. 연간 최대 수용인원은 2만명이다.

  • ▲ 운전시뮬레이터를 이용한 가상운전 체험.ⓒ교통안전공단
    ▲ 운전시뮬레이터를 이용한 가상운전 체험.ⓒ교통안전공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