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광역버스 신설-증차 요구에 ‘인색’경기-인천 “서울 인구 이주로 이용객 급증, 서울시가 원인 제공”
  • ▲ 경기 용인에서 서울을 향하는 아침 출근길, 광역버스에 시민들이 입석으로 탑승해 있다. ⓒ 사진 뉴시스
    ▲ 경기 용인에서 서울을 향하는 아침 출근길, 광역버스에 시민들이 입석으로 탑승해 있다. ⓒ 사진 뉴시스

인천 부평에서 매일 아침 광역버스를 타고 서울로 출근하는 30대 직장인 남성 A씨는 요즘 들어 부쩍 몸이 피곤하다.

서울에서 살다가 결혼과 함께 인천으로 이사를 간 A씨의 회사가 있는 곳은 서울 남부터미널역 인근. A씨는 아침마다 두 번의 ‘환승’을 거쳐 회사로 출근한다. 집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광역버스 정류장까지 간 뒤, 서울 교대역에서 다시 지하철 3호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출근에 소요되는 시간은 평균 1시간 30분이 조금 넘는다.

정부가 2014년 7월 16일 사고 위험성 증가 등을 이유로 광역버스 입석 운행을 금지했지만, 일주일에 평균 이틀 정도는 부평에서 서울 교대역사거리까지 약 1시간 남짓한 시간을 버스 손잡이에 매달려 이동해야만 한다. 상습적인 교통 혼잡으로 버스가 가다 서다를 반복하지 않으면 다행인 상황에서 ‘입석’ 불평은 사치다.

조바심을 내면서 무사히 출근해 자리에 앉으면, 순간 힘이 쭉 빠진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체력을 전부 소진한 느낌이다.

최근 서울시가 미세먼지 증가를 막겠다며, 경기-인천에서 서울을 오가는 ‘경유(輕油)’ 광역버스 운행을 내년부터 제한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뉴스를 접한 A씨의 마음은 편치 못하다.

인천으로 이사 간 게 ‘죄’는 아닐 텐데, 마치 자신이 미세먼지 발생의 주범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서울시가 ‘경유’ 광역버스 운행 제한이라는 파격적인 계획을 밝히면서, 서울-경기-인천 3개 수도권 市道가 때 아닌 ‘버스 전쟁’을 치르고 있다.

서울시는, 경기-인천發 광역버스로 인한 도시 및 부도심 교통혼잡과 미세먼지 증가를 더 이상 두고만 볼 수는 없다며, ‘경유 광역버스’ 운행 제한 조치를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경기도와 인천시는 서울시의 발표에 불편한 심경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인천시는 29일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히면서, “서울시가 관광·전세버스를 제외한 인천 경유버스의 서울 진입제한을 일방적으로 검토해 인천시민의 공분을 일으켰다. 이는 인천에서 서울이 사용하는 전기를 생산하고, 발생하는 쓰레기를 매립해, 인천시민이 겪는 대기오염과 미세먼지 피해를 간과한 결과”라고 유감을 표했다. 

인천시는 “서울시는 경유버스 운행 제한에 앞서 전력 자급률을 높이고 대체 쓰레기 매립지 조성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경기도 역시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을 뿐, 서울시의 발표는 현실적이지도 못하고,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도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치솟는 서울 집값과 전세값을 견디다 못해 서울을 등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사 오는 곳이 바로 경기도“라며, ”서울시의 발표는 자기 잘못을 모두 다른 시도에 떠넘기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에 따르면, 지난 한 해 경기도로 이주한 서울 전입인구는 35만 9천명에 이른다.

일부에선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서울시가 1~2인 가구 위주의 소형평형 공급비율 확대정책을 추진하면서, 자녀 혹은 동거 가족 포함 3명 이상이 거주하는 가구의 ‘脫서울화’를 심화시켰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3명 이상 가구를 위한 중형 평형 공급비율이 줄어들면서 집값-전세값 인상 추세가 더욱 견고해졌고, 이런 상황은 30대 이상 서울시 인구의 등을 강제로 떠밀고 있다는 것이다. 즉, 현재 벌어지는 ‘수도권 버스전쟁’은 서울시의 근시안적 주택정책이 주요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크다는 지적이다.

3개 시도가 가시 돋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사이, 매일 아침 버스 손잡이에 매달려 출근전쟁을 벌여야 하는 수도권 버스난민들은, 불안한 눈길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출근할 때마다 市道의 경계를 넘어야 하는 수도권 직장인들이 겪는 가장 큰 고충은 ‘배차 간격’이다.

2년 전부터 경기 김포에서 회사가 있는 서울 용산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30대 남성 직장인 B씨는, 출근하는 데만 1시간30분~1시간5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B씨는 “아침 출근길 올림픽대로가 막히면 방법이 없다. 아침 7시 10분에 집 앞에서 버스를 타는데, 길이 많이 막히는 날에는 9시가 다 돼서야 버스에서 경우 내린다“고 말했다. 때문에 B씨는 요즘, 출근은 시내버스와 전철을 이용하고 퇴근할 경우에만 광역버스를 이용한다. 

B씨가 타는 광역버스의 배차간격은 20분. 길이 막히면 배차간격도 덩달아 늘어난다.

김씨는 퇴근할 때면 용산에 있는 회사를 나와 서울시청역 인근까지 이동해 버스를 탄다. 경기나 인천을 오가는 버스 대부분이 서울 서울역과 시청역 인근을 회차 지점으로 삼기 때문에, 이곳에서 버스를 타면 서서가는 불편을 피할 수 있다. 물론 줄이 너무 길면 입석은 피할 수 없다.

B씨는 며칠 전 경유를 연료로 하는 경기도 광역버스의 서울 출입을 제한한다는 서울시의 발표를 보면서, 2년 전 광역버스 입석운행 금지 방침이 나왔던 당시를 떠올리며 마음이 무거워졌다고 한다.

“2년 전에 정부가 입석 운행을 금지했을 때, 그땐 정말 버스 타기 힘들었다. 이번에도 그런 일이 다시 벌어지는 건 아닌지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B씨처럼 광역버스 증편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높다. 기업이 모여 있어 수요가 많은 서울 강남이나 서울시청, 여의도를 목적지 혹은 경유지로 하는 노선 신설도 광역버스 이용자들의 희망사항 중 하나다. 그러나 노선 신설은 고사하고 증편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서울시는 출퇴근 시간 교통 혼잡을 이유로 강남 및 강북 도심, 여의도 등을 경유하는 노선 신설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증편 요구에 대해서도 서울시는 같은 이유로 반대의 뜻을 밝히고 있다.

서울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는 경기도의 경우, 고육지책으로 2층 버스를 도입하기도 했지만, 효과는 크게 못 봤다. 1대에 4억5천만원이나 하는 높은 가격도 문제지만, 몇 대 안 되는 2층 버스를 투입한다고 해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회의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이미 경기도 광역버스는 콩나물 시루가 된지 오래다. 증편이 가로막히면서 좌석 사이 간격을 최대한 줄인 탓이다.

앞서 서울시는 26일, 미세먼지 저감 대책의 하나로, 약 1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경기와 인천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경유 광역버스의 통행을 전면 통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런 내용을 담은 서울시의 미세먼지 저감 대책은 빠르면 다음달 초 공식 발표될 전망이다.

서울시가 통행 제한을 검토 중인 광역버스는 경기도와 인천시에 등록된 버스 가운데 경유를 원료로 쓰는 차량이다. 현재 경기-인천에서 서울을 오가는 ‘경유 광역버스’는 1,600대에 이른다.

서울시는 경유 버스를 미세먼지 증가의 원인으로 보고, 이들 차량 모두를 압축천연가스(CNG) 버스로 교체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경기도와 인천시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CNG 버스 한 대 가격이 약 1억2천만원에 달해, 경유 버스를 모두 교체한다면 2천억원 이상이 들기 때문이다. CNG 충전소 설치 등 추가 비용도 부담이다. 

경기도와 인천시는 수명이 남아있는 경유 차량까지 모두 교체하는 건 무리라며, “서울시의 방안은 비현실적”이라고 말한다.

서울시의 입장도 완강하다. 서울시는 경기도와 인천시의 반응은 관심이 없다는 듯, 유예기간이 지나면 경유 광역버스에 대한 과태료 부과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5월말 기준으로 경기도와 인천시에서 서울을 오가는 광역버스는 모두 2천500여대다. 이 가운데 서울역과 강남역을 경유하는 광역버스는 1,590대. 

이용객들은 증차를 호소하지만, 그 바람이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강남역과 서울역 인근은 이미 경기-인천 광역버스로 극심한 혼잡을 빚고 있다. 이 지역을 경유하는 노선의 증차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