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통장 근절 규제로 개설기준 강화한도계좌 추천하거나 각종 서류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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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을 준비 중인 김 모양(26세)은 최근 자취방의 월세를 낼 통장을 개설하러 은행을 찾았지만 서러움만 받은 채 돌아왔다. 직장이 없다는 이유로 하루에 출금할 수 있는 금액이 30만원으로 제한된다는 말 때문이었다. 30만원 이상 출금할 일은 크게 없었지만 왠지 취업하지 못한 자기 자신이 미웠다.

#주부인 이 모씨(58세)는 목돈 마련을 위해 지인들과 계 모임을 갖기로 했다. 매달 50만원 씩 납부키로 약속했지만 본인 통장으론 50만원을 보낼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직장을 다니고 있는 딸의 이름을 빌려 통장을 개설하게 됐다.

최근 은행에선 대포통장을 막겠다는 이유로 무직자의 통장 개설을 꺼리고 있다.

무직자 뿐만 아니라 대학생, 주부, 일용직 근로자 등 신분에 따라 제한을 두고 있는 것이다.

통장을 개설하기 위해 은행을 방문하면 은행원들은 갖가지 증빙서류를 요구한다.

예로 재직 증명서, 근로계약서, 급여명세표, 공과금 납부 실적, 관리비 영수증 등이다.

이 때문에 통장 만드는 일이 고시에 합격하는 것처럼 어렵다는 뜻인 통장고시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다.

신한, 우리, 국민, KEB하나은행 4대 대형 은행을 방문해본 결과 대학생, 무직자, 주부, 일용직 근로자 등 직장이 없는 고객들에게 통장 신규를 타이트하게 운영하고 있었다.

이는 신분증만 있으면 5분 만에 입출금 통장을 만들 수 있었던 몇 년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은행을 방문한 한 대학생은 “통장을 왜 만드는지 꼬치꼬치 캐물으면서 각종 자료를 가지고 와야 개설이 가능하거나 한도제한계좌를 추천해 시간을 내서 은행을 방문한 이유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부터 대포통장 근절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금융사기를 막기 위해 통장 신규 개설을 강화했다.

이에 따라 대형 은행들은 하루 인출 및 이체 한도를 제한하는 대신 계좌 개설 목적에 대한 증빙서류 없이도 발급 가능한 한도계좌를 추천 중이다.

하지만 통장 신규의 기준은 각 은행마다 일률적이지 않아 무직자들의 불만만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먼저 국민은행의 경우 통장을 만들어주는 창구 직원의 판단이 절대적이다.

대포통장과 관련해 전적으로 통장을 개설해준 직원들에게 그 책임을 묻기 때문에 무직인 고객이 통장을 개설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직원을 만나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국민은행 직원들은 고객과의 대화를 통해 통장 개설 유무를 판단하고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직원에게 패널티를 부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한은행은 타 은행보다 일반 계좌 개설이 어려웠다. 오히려 영업점에서 한도계좌로 유도해 피해를 줄이는 쪽을 선택했다.

한도계좌는 은행창구의 경우 100만원, ATM 인출·이체·전자금융거래는 각 30만원으로 하루 거래 한도를 제한한 소액거래 통장이다.

우리은행은 대학생 신분인 경우 집, 학교 주변의 은행을 방문한다면 직원이 요구하는 증빙 서류 지참 시 일반 계좌를 개설할 수 있으며, KEB하나은행도 무직자인 경우 집 근처거나 자동이체 설정이 가능하다면 만들 수 있었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 직원마다 요구하는 서류도 다르고 인사 상 불이익이나 패널티를 받기 때문에 직원들도 꺼려하면서 잘 만들어 주지 않는 추세”라며 “지난 2014년부터 금융감독원이 계좌 개설 요건을 점차 강화시켰고 구체적인 지침은 없어 은행들이 알아서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