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들 자조 섞인 비판 쏟아내…"제2, 제3 백남기 방지할 수 있을까"
  • "서울대병원 故백남기 사망진단서 논란은 시작부터 끝까지 정치적 고려였다. 정말 부끄럽다."


    지난 16일 故백남기 씨 사망진단서 내용 수정을 발표한 서울대병원의 기자회견을 지켜본 원내 의료진들의 반응이다.


    국내 최고 대학병원으로 칭송받아온 서울대병원이 고개를 숙였다. '서울의대' 타이틀을 자랑삼아온 서울대병원 소속 교수들과 서울의대 출신 의사들의 자부심에도 멍이 들었다.


    서울대병원을 포함한 의료계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서창석 병원장으로부터 촉발된 지난해 故백남기 씨의 사망진단서 논란부터 비선진료 의혹에 이어, 9개월 만에 병원 입장을 번복하기까지 결국 과학의 가치가 정치로 얼룩져버렸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서울대병원, 정치적 결정할 만큼 무책임한조직 아니다" 했지만…

  • ▲ 서울대병원 김연수 진료부원장이 지난 16일 故백남기 씨 사망진단서 내용 수정과 관련 기자회견 하고 있다.ⓒ뉴데일리
    ▲ 서울대병원 김연수 진료부원장이 지난 16일 故백남기 씨 사망진단서 내용 수정과 관련 기자회견 하고 있다.ⓒ뉴데일리

    서울대병원은 지난 16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5년 11월 경찰 물대포에 맞은 뒤 숨진 백남기 씨의 사망 원인을 기존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한다는 입장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백 씨 사망 사건 진상규명 의지를 드러냈을 뿐 아니라 회견이 있기 전날에는 감사원이 갑작스러운 서울대병원 감사를 진행한 수상한(?) 시점이었다.


    세간의 의혹이 쏟아진만큼 서울대병원 측은 정치적 판단이 아니라는 해명 섞인 입장을 밝히는 데 상당 시간을 소요했다. 결코 갑작스러운 스텐스 변화가 아닌, 수면 밑으로 지속적인 논의를 가져왔으며 행정적 절차에 맞게 단계를 밟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재발방지책도 내놨다. 집단 지성과 개인의 지성이 마찰할 때 이를 제대로 논의할 수 있는 공식 기구인 '서울대병원 의사 직업윤리위원회'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서 서울대병원 권용진 의료윤리위원회 전문위원은 "서울대병원 교수만 500명"이라며 "행정적으로 이 많은 교수 의견을 모으는 게 쉽지 않은데다 서울대병원이 이런 어려운 결정을 정치적으로 할 만큼 무책임한 조직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시작부터 대책까지 정치적이었다…제2, 제3 백남기가 사라질까"

  • ▲ ⓒ서울대병원 제공
    ▲ ⓒ서울대병원 제공


    병원의 공식적인 입장과 달리 서울대병원 교수, 서울의대 출신 의료진들도 같은 심경일까. 기자회견 내용을 접한 의료진들은 "故백남기 사망진단서 논란의 시작부터 끝까지 정치적 고려였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대병원 외과 한 교수는 "이 문제는 시작부터 끝까지가 의료인으로서, 의료기관으로서 잘못 내린 결정이다. 부끄러움에 동료 교수들과의 편한 식사자리에서조차 이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고 자괴감을 드러냈다.

    서울의대 교수도 "늦긴 했지만 이제와서라도 진단서를 수정한 것은 적절한 조치였다"면서 "자체로 잘했다는 게 아니라 그나마 차선을 택했다는 것일 뿐, 정치적 고려라는 합리적 의심과 비판으로부터 병원은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의대 출신 개원의는 "과학을 정치로 판단하는 것 자체가 매우 기분 나쁜 일이었지만 그 빌미를 서울대병원이, 병원장이 제공했다"면서 "정치가 의료에 개입하는 현실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판을 쏟아냈다.

    재발방지책으로 내놓은 의사 직업윤리위원회를 구성한 데 대해서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

    시점상 적절하지 않았다는 평가에서부터 의사 고유권한인 진단서 작성에 병원이 개입하는 것이 맞지 않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서울대병원 내과 한 교수는 "위원회 구성 그 자체가 정치적"이라면서 "의사의 고유 권한인 사망진단서를 작성하는 데 위원회가 개입할 명분을 준다는 것은 판사의 판결에 별도의 위원회가 개입해 왈가왈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애시당초 정치적 판단으로 내린 결정을 수습하느라 의료전문가 집단인 서울대병원이 의사의 고유 권한에까지 칼을 들이대는 정치적인 해법을 내놓은 '악수'"라고 깎아내렸다.

    이어 이 교수는 "사망진단서 작성 당시부터 일반적 지침과 상식에 벗어난 결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동료들 간 의견이 분분했던 것은 사망진단서 작성이 의사 고유의 권한이라는 원칙 때문이었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의료진은 "결국 재발방지책 자체가 정치적인 고려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는데 아직도 이런 정신을 갖고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면서 이같은 측면에서 볼 때 "제2, 제3의 백남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현시점에서 서울대병원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묘책이었다는 자조 섞인 분석도 나온다.

    서울의대 교수는 "위원회에 대한 의사들의 입장은 다를 수 있겠지만 문제를 고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정치적인 고려라는 지적을 받는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더 우스운 것"이라면서도 "다만 서울대병원에서 위원회라는 재발방지책을 내놓고도 욕을 먹는 것은 그 시점이 왜 하필이면 지금이냐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