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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 인공지능 플랫폼, 5G에 다다른 퀀텀(Quantum)’. 정보통신 선진국답게 대한민국 국민은 이동통신기술의 전문가로 길들여진다. 주로 이동통신사들의 경쟁적 기술을 알리는 광고들을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늘에는 이동통신을 개통할 수만 있어도 좋은 사람들이 있다. 신용도가 낮거나 이주한 노동자들이 그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변두리나 공단지역에 가면 ‘신용도 상관없이 개통가능’이라고 써서 유리창에 붙여놓은 글을 볼 수 있다.
어떻게 가능하냐고? 선불로 가입하면 된다. 선불가입은 일정기간 일정금액을 미리 내고, 낸 만큼 사용하니까 신용상태가 상관없게 된다. 한마디로 누구에게나 평등한 조건인 것이다.
개인의 신용상태가 모든 거래에 영향을 미치는 미국에서도 선불이동통신은 주로 저소득자들의 몫이다. 이는 우리에게 알뜰폰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익숙한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MVNO)가 주로 하는 서비스이다. 미국의 기간통신사업자인 스프린트(Sprint)의 망을 임대해서 쓰는 부스트모바일(Boost Mobile)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주로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선불이동통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대리점 역시 그런 지역에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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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일반유권자들의 미국대통령선거 투표가 있었다. 그런데 수백만 명의 저소득층과 소수민족 유권자들은 선거 때 마다 투표를 하기 위해 긴 줄을 서서 기다리기 일쑤라고 한다. 그런 지역일수록 투표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평등을 위한 투표가 투표과정부터 불평등한 것이다. 거기 부스트모바일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전국 817개 대리점을 공식 투표소로 운영하기로 했다. 자신의 브랜드를 활용해 ‘너의 목소리를 높여라(Boost Your Voice)’라고 이름 붙여진 이 단순명쾌한 아이디어에 칸 라이온은 프로모션 부문 그랑프리를 선사했다.
이는 단순한 이동통신사의 프로모션에 머물지 않았다. 적극적인 투표를 프로모션 했고 이를 통해 인간의 가치를 프로모션 했으며 투표를 통해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프로모션 했으니 말이다. 그 결과 투표소를 제공한 지역은 앞선 2012년 선거보다 무려 23% 더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고 한다. 저소득층과 소수민족의 목소리를 높여준 것이다.
미장원, 결혼식장, 안경점, 태권도장, 자동차 대리점. 지난 5월 우리나라 대통령선거 때도 많은 이색투표소가 언론에 소개되었다. 하이마트나 디지털프라자 등 대형 유통점의 영향으로 줄고는 있다지만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이동통신 대리점은 SK텔레콤 1만1380개, KT 9370개, LG유플러스 5486개란다. 전국에는 총 2765개의 주민센터가 있으며 지난 대선 때 투표소는 전국 총 13964개였다.
양웅(동서대학교 교수/前 칸광고제 심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