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원칙도 지켜지지 않아"… '승계-청탁' 성립 여부 공방 전망"'승마지원-공모관계' 책임여부 다툼… '고의-과실' 등 형법 원리 벗어나"
  •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뉴데일리DB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뉴데일리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항소심에서 '책임주의'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책임주의는 '책임이 없으면 형벌도 없다'는 근대형법상의 기본원칙을 말한다. 

    변호인단은 앞서 항소심 1차 재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작업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직무권한도 몰랐던 만큼 1심 판결은 책임주의에 어긋났다'고 언급한 바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 승계작업에 개입한 정황이 없어 유죄판결을 수긍할 수 없다는 뜻이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 2차 재판이 오는 19일 서울고법 형사13부(정형식 부장판사)의 심리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날 재판은 승마지원 경위와 마필, 차량 구입 배경, 단순뇌물죄 및 공범관계 성립 등을 놓고 양측의 법리공방이 이뤄질 전망이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부정한 청탁과 대가관계를 합의했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변호인단은 경영권 승계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아 부정한 청탁과 대가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항변한다는 방침이다.

    향후 재판은 사실관계에 대한 양측의 공방과 책임주의를 중심으로 한 변호인단의 반격이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청탁과 대가관계가 성립하지 않아 책임주의에 어긋난다는 항변이다.

    앞서 변호인단은 유죄의 근거가 된 2015년 7월 25일 2차 독대에서 활용된 '대통령 말씀자료'를 언급하면서 책임주의를 강조한 바 있다.

    윤인대 전 청와대 경제수석실 경제금융비서관실 행정관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말씀자료에는 '현행법상 정부가 도와드릴 부분은 제한적이지만, 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이 정부 임기 내에 승계 문제가 해결되기를 희망한다'는 구절이 포함돼 있다.

    특검과 1심 재판부는 해당 내용이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의 승계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근거라 내세웠다. 두 사람 사이에 승계라는 공통된 현안이 공유되고 있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요구 없이도 묵시적 청탁이 성립한다고 판단한 셈이다.

    하지만 변호인단의 판단은 달랐다. 변호인단은 '정부가 도와드릴 부분이 제한적'이라는 부분에 무게를 실었다. 대통령이 삼성의 현안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집중한 결과다.

    또 말씀자료 작성자들 스스로도 정부가 승계작업을 위해 해줄 수 있는게 없다고 인식했다는 점을 들어 '책임주의에 비춰볼 경우에도 범죄성립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묵시적 의사표시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추단적 행위'가 뒤따라야 하는데 대통령이 승계작업에 관여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강조됐다. 청탁이 합의됐다면 독대 이전과 이후에 대통령이 관여한 정황이 포착돼야 하지만 어디에서도 이같은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변호인단은 향후 재판에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에 대한 책임주의를 강조할 가능성이 높다. 승마 및 재단지원을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의 권한으로 진행한 상황에서 이 부회장에게 형벌을 적용하는 건 책임주의에 어긋난다는 논리다.

    실제 형법 13조(범의)와 14조(과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행위와 죄의 성립요소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행위에 대해서는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이는 고의나 과실이 없는 행위에 대해서는 죄를 묻지 않는다는 뜻이다. 때문에 최순실과 정유라의 존재 및 승마지원을 인식하지 못한 이 부회장에게 형벌을 적용하는 건 형법에 어긋날 수 밖에 없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책임주의는 책임과 형벌을 규율하는 원리로 실제 재판에서 강조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면서 "변호인단이 책임주의를 강조한 건 그만큼 재판의 기본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정유라 인식 시점, 대통령과 최순실의 공범관계 등도 책임주의를 근거로 하고 있다"면서 "재판부가 이 부회장과 대통령의 책임을 얼마로 보느냐에 따라 형벌이 결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