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조망권 이유로 일부 아파트 높이 제한… 동간거리 가까워전체 84.7% 중소형 평형으로 구성, 사실상 '명품' 표현 아리송
  • ▲ 경의중앙선 한남역 1번출구에서 바라본 한남3구역 일대. 향후 한남맨숀 뒤편 구릉지를 따라 들어선 주택들이 사라지고 아파트가 들어선다. =이보배 기자
    ▲ 경의중앙선 한남역 1번출구에서 바라본 한남3구역 일대. 향후 한남맨숀 뒤편 구릉지를 따라 들어선 주택들이 사라지고 아파트가 들어선다. =이보배 기자


    지난달 서울시 주택재개발정비사업 건축심의를 통과한 한남3재정비촉진구역(이하 한남3구역)에 대한 업계 관심이 뜨겁다. 남산과 한강을 잇는 서울 대표 경관거점에 위치한다는 장점과 이태원을 품고 있는 지리적 특징을 바탕으로 미니 신도시급, 한국판 베벌리힐즈로 조성된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지난 9일 현장을 직접 찾았다.


    경의중앙선 한남역 1번 출구에서 건너편을 바라보면 색바랜 노랑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색은 퇴색됐지만 존재감을 뽐내는 '한남맨숀'이라는 투박한 글씨 뒤 주택들이 계단형으로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과거 한남동이라고 하면 소위 부잣집 고급주택과 회장님, 이태원을 떠올렸던 것을 생각하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조금 어색했다.


    한남3구역은 구릉지 지형으로 앞에서 바라보면 언덕을 따라 집들의 높이가 서로 다르다. 한남맨숀을 가로질러 골목 안으로 들어가니 이슬람사원까지 다양한 경사의 언덕이 이어졌다. 가파른 지형에 들어선 주택들의 간격이 워낙 가깝고 골목이 좁아 화재 시 위험에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노후 다세대와 다가구주택이 모여 있는 한남3구역은 2022년 7월 완공을 목표로 2019년 9월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지하 5층~지상 22층·195개동·총 5816가구 대규모타운으로 재탄생되고, 전용 39~150㎡의 다양한 평형으로 구성되며 단지 내에서 한강과 남산을 조망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서울시는 건축심의를 통과시키면서 한강변의 경관과 남산 조망의 시민 공유를 위해 해발 90m 이하의 스카이라인과 통경축을 확보했고, 한남3구역의 능선길인 우사단로는 기존 옛길의 선형과 가로 풍경을 살리는 방향으로 계획했다.


    이슬람사원을 등지고 직진으로 내려가는 길이 바로 우사단로다. 이태원 일대 유명한 경리단길만큼 우사단로도 요즘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이색명소다.

     

  • ▲ 우사산로 일대. 사진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보광초등학교 후문에서 시작되는 우사단로 입구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우사단로 상점 △폐허로 남아있는 우사단로 인근 주택가 △텅빈 도깨비 시장. =이보배 기자
    ▲ 우사산로 일대. 사진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보광초등학교 후문에서 시작되는 우사단로 입구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우사단로 상점 △폐허로 남아있는 우사단로 인근 주택가 △텅빈 도깨비 시장. =이보배 기자


    우사단로 주변은 이른바 산동네다. 해방 이후 속칭 판자촌이 모여 있던 곳으로 1960년대부터 정부의 판자촌 양성화사업으로 벽돌집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40~50년이 지난 현재 그곳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으로 변했다.


    마치 1970년대를 복원한 듯한 이발소와 약국 사이에 최신 로스팅 기계로 로스팅을 하는 커피숍이 들어섰고, 젊은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관도 보인다. 할머니가 앉아있는 골목 맞은편에는 피어싱을 한 젊은이들이 마주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했다.


    우사단로 일대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할 수 있게 된 것은 젊은 예술가들이 이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과거에는 낡은 건물에 대부분 외국인들이 들어와 살고 있어 인적이 뜸했지만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온 젊은 아티스트들이 하나둘 모이면서 그들만의 문화공간을 만들게 된 것이다.


    우사단로를 따라 걷다보면 보이는 도깨비시장은 이미 폐허 분위기였다. 문을 연 가게는 두 세 군데에 불과했고, 대부분 천막이 굳게 닫혀 있었다.


    이곳에서 잡화를 판매하는 한 할머니는 "재개발 때문에 이사를 가거나 가게를 옮긴 게 아니라 나이 많은 할머니들이 장사를 하다보니 건강악화와 고령으로 자연스럽게 장사를 접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빈 가게에 누구라도 들어와 장사할 수 있지만 지금 동네 분위기가 어디 그런가?"라고 반문한 뒤 "젊은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우리한테는 하나 이득될 게 없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니 도깨비시장 인근 주택에서는 사람의 온기를 느끼기 힘들었다. 재개발 때문인지, 동네가 오래돼 자연스럽게 떠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비어있는 폐허가 대부분이었다. 문득 재개발사업 추진 이후 완성된 한남3구역의 모습이 더욱 궁금해졌다.  


    특히 한남3구역은 5개 구역으로 나뉜 한남뉴타운 중에서 가장 넓은 구역으로, 가장 빠르게 건축심의를 통과한 만큼 향후 한남뉴타운의 랜드마크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 한남3구역 재개발 조감도. ⓒ서울시
    ▲ 한남3구역 재개발 조감도. ⓒ서울시


    일각에서는 한남3구역이 미국의 베벌리힐즈와 견줄만한 명품 주거단지로 탄생할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인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보광동에 위치한 L개업공인중개소 관계자는 "한남뉴타운이 입지와 교통, 배산임수형 명품 단지라는 장점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 또 향후 10년간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면서도 "다만 한남3구역이 명품 주거단지로 베벌리힐즈와 비교하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는 "전체 가구수 가운데 전용 84㎡를 포함한 중소형 공급율이 83.7%에 이른다"면서 "소형주택이 들어서는 블록의 경우, 용적률 제한으로 동간거리가 가까워 사생활침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만 해도 한남3구역 중심부를 저층 대형평수 테라스형 아파트를 지어 명품단지로 꾸밀 예정이었지만 서울시가 이 안을 철회하고 소형평수를 짓겠다고 결정했다"면서 "20평 이하 14~18평 아파트들이 다닥다닥 붙은 달동네로 만든 셈이라 양심상 한국의 베벌리힐즈, 명품단지라고는 부르기 애매하다"고 덧붙였다.


    인근 M개업공인중개소 관계자 역시 "서울시가 서민 우선주의를 표방하다보니 고급단지가 들어오는 것에 대해 반대했고, 소형아파트를 많이 짓게 하면서 조합과 트러블이 있었다"면서 "공공의 이익과 개인의 재산권 침해가 문제됐지만 결국 조합에서 양보해 용적률 235%와 높이 90m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한편,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이 지역 임차인은 "재개발이 시작된다고 해서 빠르게 진행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면서도 "이주시기가 되면 많은 임차인들이 한꺼번에 움직일 텐데 걱정이 되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세입자고 재개발 소식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대부분 집주인이 바뀌었다"면서 "그나마 세입자들의 안정적인 이주대책을 위해 임대주택공급신청 기회가 주어진 점은 다행스럽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