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급 7530원, 전년비 16.4% 인상… 음식점·편의점 등 비상고용 안정자금 실효성 의문… 지급총액·근로시간모호, 4대 보험·구인난도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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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고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으로 말미암아 중소기업과 골목상권이 흔들리고 있다.
인건비 상승은 고용 축소나 제품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후폭풍이 만만찮을 전망이다. 최저임금을 지키지 못해 범법자로 내몰릴 영세 업체가 증가할 거라는 견해다.
정부의 일자리 안정자금은 지급조건이 까다로워 고용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저임금 인상 도미노 시작… 인건비 상승에 제품가격 들썩
2일 유통·외식업계 등에 따르면 올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상승으로 물가가 오를 조짐이 보인다.
전국에 400여개 가맹점을 둔 죽 전문점 '죽 이야기'는 지난 1일부터 버섯야채죽과 꽃게죽, 불낙죽 등 일부 메뉴의 가격을 1000원 올렸다. 다른 메뉴 가격도 조만간 오를 것으로 관측된다.
매장 여건상 직원을 줄이기 어려운 만큼 최저임금 인상분을 가격에 반영한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은 7530원이다. 지난해보다 16.4% 올랐다. 인상금액은 1060원으로, 16.6%를 기록했던 2000년 9월~2001년 8월 이후 최대 인상 폭이다.
인건비 상승으로 비용 지출이 늘어나면 해법은 사업주가 허리띠를 졸라매 자신이 가져갈 이익을 줄이거나 고용 축소 또는 제품가격 인상을 선택할 수 있다.
김대준 소상공인연합회 이사장은 "지난달 근로기준법과 일자리 안정자금 홍보를 위해 전국을 다녔는데 최저임금을 못 지킬 것 같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며 "편의점·외식업계에선 자영업자도 힘들긴 매한가지로 '우리는 인간이 아니냐'는 소리가 나온다"고 전했다.
신용보증재단중앙회가 지난해 소상공인 3000곳을 대상으로 금융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를 보면 3개월 매출액 평균이 300만원 미만인 곳이 12.7%에 달했다. 이 중 3%는 100만원 미만, 1.3%는 아예 순이익이 없었다. 월매출 1000만원 미만인 소상공인은 55.8%였다.
가격 인상은 이미 시작됐다. 국내 치킨 전문점인 KFC는 지난달 치킨·햄버거 등 24개 품목의 가격을 평균 5.9% 인상했다. 놀부부대찌개와 신선설농탕도 주요 메뉴 가격을 평균 5.3~14% 올렸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촉발된 인건비 상승이 물가 불안을 부추기는 셈이다.
물가 인상은 새해 벽두부터 화장품·가구 등 다른 소비재로 확산할 조짐이다.
수입화장품 브랜드 샤넬은 지난 1일부터 백화점 등에서 파는 총 326개 품목의 향수와 피부관리·메이크업 제품 가격을 평균 2.4% 올렸다.
가구업계도 가격 인상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리바트는 이달 15일부터 침대, 식탁류 가격을 평균 3~4% 올릴 계획이다.
중소기업인들은 올해 경영환경이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나빠질 거로 전망했다.
지난달 25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협력센터가 중소기업 1000개사를 대상으로 올해 경영환경 전망과 정책과제 수요를 조사한 결과 올해 경영환경이 나빠질 거라는 응답이 43.4%(207곳)를 차지했다. 올해와 비슷할 거라는 답변은 39.5%(189곳)이었다. 좋아질 거라는 응답은 17.1%(82곳)에 그쳤다.
경영환경 악화의 요인으로는 인건비 상승과 인재 확보의 어려움을 꼽은 대답이 37.2%로 나타났다.
경영환경 개선과 경쟁력을 높이고자 정부가 추진해야 할 정책과제(복수응답)로는 '기술인력 양성·채용인력 인건비 보조 등 고용 지원'이 20.4%로 가장 많았다. '복잡한 중소기업 지원체계 통합·지원제도 효율성 제고'(19.8%), '수출·해외진출 지원체계 보강'(16.7%) 등이 뒤를 이었다.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올해보다 늘 거라는 예상이 52.7%(255곳)와 44.7%(217곳)로 집계됐다.
세계경기 회복에 따른 수출 증가로 경기 회복에 대해 기대감이 크지만, 인건비 상승 등에 따른 경영 부담이 발목을 잡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최저임금 시급이 17년 만에 최대 폭으로 오르면서 올해 중소기업이 부담해야 할 인건비는 지난해보다 15조2000억원쯤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지난달 28일 중기중앙회가 발표한 이달의 경기전망조사도 이런 우려가 반영됐다.
중기중앙회가 지난달 13~20일 315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올 1월 업황전망 중소기업건강도지수(SBHI)를 조사한 결과 84.3으로 나타났다. 지난달보다 4.8포인트(P) 낮아졌다.
SBHI 지수는 100 이상이면 업황이 개선될 거라는 긍정적인 전망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100 미만이면 반대로 경기전망이 밝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는 뜻이다.
중소기업은 경영의 최대 애로사항(복수응답)으로 '내수부진'(57.3%)과 '인건비 상승'(47.3%)을 꼽았다. 특히 인건비 상승은 지난달보다 4.7%P 올라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박성택 중기중앙회장은 신년사에서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논의 등으로 올해 중소기업계에 적잖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지난 1일 기자단 신년인터뷰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중소기업 영업이익률이 4%쯤인데 올해 최저임금이 16.4% 올라 중소기업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여건"이라고 했다.
김 이사장은 "올해 최저임금보다 적은 임금을 받고 일하는 근로자의 비율인 최저임금 미만율이 지난해(13.6%)보다 올라갈 것으로 전망한다"고 부연했다. 범법자로 내몰릴 영세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들이 늘어날 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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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아줌마' 보통 하루 10시간 일하는 데 일자리 안정자금 '그림의 떡'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말미암은 중소기업·소상공인 인건비 부담을 줄여주고자 올해 2조9708억원의 혈세를 일자리 안정자금으로 투입한다. 직원 수 30명 미만의 영세기업에 근로자 1인당 월 최대 13만원을 준다.
하지만 일자리 안정자금을 받을 수 있을지 우려하는 소상공인이 많다.
총액기준으로 월급이 190만원을 넘으면 대상에서 빠지기 때문이다. 현재는 식사비, 교통비 등은 최저임금에 포함되지 않아 이런 부분을 포함하면 일자리 안정자금을 받을 수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근로시간도 기준이 모호하다. 올해 최저임금 시급을 월급으로 환산하면 157만3770원이다. 이는 주 40시간, 하루 8시간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김대준 소상공인연합회 이사장은 "보통 '식당 아줌마'가 하루 10시간쯤 일한다. 주말 잔업 등을 하고 식사비나 교통비를 받을 수도 있는데 이 경우 음식점 주인은 일자리 안정자금을 받을 수 없다"고 부연했다.
소상공인업계는 '4대 보험 가입자' 조건에 대해서도 우려한다. 어렵고 힘들고 더러운 3D(기피)업종과 아르바이트 등은 4대 보험 가입률이 낮은 데 이들에 대한 고용 안정이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고용 현실을 외면하고 책상머리 행정을 편다는 견해도 제기된다.
김 이사장은 "자영업자 중 20~30%는 사람 구하기 어려우니 신용불량자 등을 고용하는 현실"이라며 "이들 근로자는 4대 보험을 들 수 없다. 급여도 현찰로 주지만, 증빙이 어려워 인건비 지출과 관련해 불리한 처지에 놓인 자영업자가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