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새해를 맞으면서 국내 철강사들이 세계 각 국가에서 강화되는 수입 규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세계 경제를 이끄는 미국에서부터 시작된 보호무역주의 강풍이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부족한 내수 탓에 수출로 타개책을 찾아야 하는 국내 철강사들은 보호무역주의에 빠르게 대처하고 있지만, 민간기업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에 뉴데일리경제는 날로 거세지는 철강업계의 글로벌 무역규제 현황과 향후 전개 상황, 이에 따른 적절한 대응 방안을 신년기획 시리즈로 제언하고자 한다.<편집자주>
철강 보호무역 장벽을 쌓고 있는 미국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 정부와 기업 그리고 협회가 손잡고 통상 교섭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또 WTO 제소가 무의미해지는 시점에서 미국 국제무역법원(CIT)을 적극 활용해, 승소 확률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12일 업계 및 외신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11일(현지시간) 철강을 타깃으로 한 무역확장법 232조 결과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사 결과에 따라 90일 이내 규제 수위를 정할 수 있다.
보고서 내용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국내 기업들에 불리한 내용이 담겼을 가능성이 크다는게 업계 관측이다. 이에 향후 트럼프 대통령이 어느 시점에서 국산 철강재에 제재를 가할 지 몰라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국내 통상 전문가들은 미국 무역 정책이 트럼프 행정부 수립 이후 상호주의로 흘러가고 있다고 분석한다. 상호주의는 미국 정부가 자유무역 이전에 취했던 방식으로, 상대국의 시장개방 정도에 맞추어서 자국의 시장개방을 결정하려는 입장을 뜻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금 자유무역체제로는 철강재 수입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해 과거 방식으로의 회귀를 시도하고 있다. 실제 미국 정부는 지난해 국내산 강관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음에도 수입산이 증가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따라서 반덤핑보다 더 강력한 조치인 무역확장법 232조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다.
사실 무역확장법 232조는 미국 스스로가 판단해 수입 규제를 할 수 있는 만큼, WTO 합의에 어긋나는 측면이 강하다. 그럼에도 미국이 이 카드를 쓰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수입 규제가 절실하다고 판단하고 있어서다.
국내 기업들은 WTO 제소 등을 언급하며 규제 수위를 낮추려 하고 있지만, 현재 미국 정부에는 통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미국은 WTO 판정은 이행하지 않겠다 천명한 바 있다.
무역확장법 232조가 적용된다면, 한국이 꺼내들 수 있는 카드는 그에 대응하는 보복조치 뿐이라는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우선 WTO에 제소를 한 뒤 WTO가 한국에 손을 들어주면 미국은 우리측의 입장을 들어줘야 한다. 하지만 지금 태도로 봐서는 미국이 WTO는 물론, 우리의 입장도 들어줄 리 만무하다.
이럴 때 우리가 꺼내들 수 있는 카드가 보복조치다. 이는 WTO 규정상에도 어긋나지 않아 합법적으로 우리가 대응할 수 있다. 만약 미국이 강관 수입을 막고자 강관에 대한 관세를 올린다던지 쿼터제를 시행하면, 우리는 그에 맞게 미국이 우리에게 수출을 많이 하는 품목으로 대응하면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수출하는 강관에 미국이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수출을 못하게 한다고 가정하자. 그럼 우리는 똑같이 미국으로부터 들어오는 강관에 관세를 부과한다던지 해서 수입을 막아야 하는데 미국은 우리에게 강관을 수출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강관 수출액과 비슷한 미국산 오렌지라던지 농산품에 관세를 부과해 수입을 막자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철강 통상 전문가는 "현재 미국이 상호주의로 가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정부의 통상 교섭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고, 그에 맞는 보복조치도 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보복조치만이 답이 아니다. 어찌됐던 철강 수출길이 막히면 피해를 입는 산업은 철강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화여대 최원목 교수는 미국 국제무역법원에 적극 제소하는 방법을 또 다른 대안으로 제시했다.
최 교수는 "삼성, 엘지 등 국내 주요기업들은 수년전부터 미국 국제무역법원에 제소를 해 왔다"며 "그럼에도 한국 기업들이 승소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는데, 이유인즉 정부와 기업간의 협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국내 기업들이 패소를 거듭하는 동안 일본은 많은 승소를 해 왔다. 그 배경에 대해 최 교수는 "우선 일본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기업과 협력해 미국내 호의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했기에 승소가 가능했다"면서 "우리 정부도 이제 미국 국제무역법원을 활용해야 할 준비를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최 교수는 "WTO 제소로 무역질서가 잡히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며 "최소한 미국에 대해서 만큼은 규제를 풀기 위해서는 국제무역법원 항소가 필요하다. 이는 무역확장법 232조에도 적용된다. 우리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이 사안에 대응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업계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정확한 내용이 발표되지 않은 시점이라 대응 방안을 밝히기는 어렵다"면서도 "여러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최선의 대응 방안을 준비 중이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