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의식 '찬성' 우세했지만 잇따른 의결자문사 '반대'에 난처외부 민간전문위에 의사결정 의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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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자동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안의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연금공단에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당초 정부를 의식해 현대차그룹의 손을 들어줄 것으로 예상됐지만, 국내외 주요 의결권 자문사들이 잇달아 반대 의견을 내놓으면서 쉽사리 찬성표를 던지기 어려워졌다. 찬반 결정을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 맡기기로 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자본시장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기금운용본부장(기금이사, CIO)이 사실상 내정된 점도 큰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18일 금융투자업계와 국민연금 등에 따르면, 10개월간 공석이던 국민연금 CIO에 곽태선 전 베어링자산운용 대표가 사실상 내정됐다. 

     

    국민연금 이사장은 이르면 다음주 곽태선 전 베어링자산운용 대표에 대한 추천 안과 계약서 안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제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CIO는 복지부 장관의 승인을 거쳐 국민연금 이사장이 최종 임명한다. 임기는 2년이며, 성과에 따라 1년 연임할 수 있다.

     

    곽 전 대표는 1958년생으로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증권 관련 전문변호사로 활동하다 1988년 베어링증권에 입사해 애널리스트로 전향했다. 1997년 세이에셋코리아자산운용 대표를 맡았고, 2013년 세이에셋운용이 미 베어링자산운용에 인수된 이후엔 베어링자산운용 한국법인 대표를 지냈다.

     

    국민연금 CIO는 연기금 624조원(지난 2월 기준)을 운용하는 총책임자로,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안에 대한 의결권 행사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국민연금은 현대모비스 지분 9.82%를 보유한 2대 주주다. 현대차 지분도 8.44%를 갖고 있다.

     

    다만 아직 선임까지 내부 검증 등의 단계가 남아있는 만큼 오는 29일로 예정된 현대모비스 주주총회에선 곽 전 대표가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긴 어려워 보인다. 

     

    이번 주총에서 논의할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안의 핵심은 현대모비스의 3개 주력사업(모듈, AS, 핵심부품·투자) 가운데 모듈·AS 사업을 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분할합병비율 0.61대 1)한 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보유한 글로비스 주식을 팔아 현대모비스의 주식을 매입하는 것이다. 그대로 실행되면 현대차그룹 지배구조는 '정 회장 부자→존속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 등 계열사로 단순화하고 순환출자 고리도 완전히 끊긴다.

     

    이에 대해 엘리엇은 기업가치 하락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엘리엇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삼성물산의 3대주주로서 양사 합병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며 이름을 알렸던 미국계 헤지펀드다.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 핵심계열사 3곳의 지분 1조원어치(약 10억달러)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는 엘리엇이 각 사 지분의 1.6% 정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민연금은 외부 민간전문가들로 구성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통해 찬성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안에 대해 정부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반면 국내외 주요 의결권 자문사들이 잇따라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있어서다.

     

    국민연금의 의결권은 원칙적으로 기금운용본부 내 투자위원회에서 행사해야 한다. 하지만 기금운용본부가 결정하기 곤란한 안건은 의결권전문위에 결정을 요청할 수 있다. 그만큼 국민연금의 입장이 곤란하다는 얘기다. 곽 전 대표가 아직 정식으로 CIO에 선임되지 않은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의결권전문위는 정부와 가입자단체, 학계 등에서 추천하는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현재 황인태 중앙대학교 교수, 김재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신현한 연세대 교수,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 김우창 카이스트 교수, 이성엽 고려대 교수, 전상경 한양대 교수 등 총 8명의 위원이 활동 중이며, 1명이 공석이다. 의결권전문위 회의는 다음주 중 열릴 예정이다. 

     

    정부는 현대차·현대모비스 합병 지주사 전환을 골자로 한 엘리엇 요구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현대차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실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달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엘리엇 방안을 따르면 공정거래법을 위반하게 되기 때문에 이 같은 요구는 부당하다"고 밝힌 바 있다. 엘리엇이 제안한 대로 지주사 전환이 단행되면 비금융지주사가 금융계열사를 둘 수 없도록 한 현행법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을 감안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대다수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의 생각은 정부와 다르다. 현재까지 찬성 의견을 낸 의결권 자문사는 트러스톤자산운용이 유일하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현대차그룹이 추진하는 개편안은 자본시장법상 규정을 모두 준수하고 있으며, 이 결과 순환출자고리도 해소하는 장점이 있다"며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 주총에서 양사 안건에 모두 찬성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 방향이 중·장기적으로 주주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국민연금과 의결권 자문 계약을 맺은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등은 현대차그룹의 지배 구조 개편안에 '반대' 의견을 권고하고 있다. 앞서 국내 의결권 자문기관인 서스틴베스트와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세계 양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글래스 루이스 등도 반대 견해를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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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의 주총 통과 여부는 국민연금의 판단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도 "정부에서는 찬성 신호를, 자문사에서는 반대를 내놓고 있는데다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주총 당시 기업지배구조원의 양사 합병 반대 권고와 달리 찬성표를 던졌다가 거센 후폭풍에 휘말렸던 만큼 국민연금 입장에선 권고를 거스르기가 어려운 입장일 것"이라고 평했다. 

     

    국민연금 한 관계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때와 상황이 똑같아 아주 부담스럽다"며 "아직 시간이 있는 만큼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이 주총을 통과하기 위해선 전체 지분의 3분의 1 이상 주주가 참석해야 하고 이들 중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주총 참석률이 80% 안팎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현대차그룹으로서는 적어도 의결권 있는 주식 가운데 46~53%의 찬성표를 받아야만 한다.

     

    현대모비스의 1대 주주는 정몽구 회장 등 오너 일가와 현대차그룹 계열사 등 특수관계인으로 31.1%다. 외국인 지분은 49.2%이다. 글로비스는 현대차 지분이 50%가 넘는다. 결국 두 회사 모두 합병 결의가 통과되려면 국민연금의 찬성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