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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정책으로 원전산업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국내 원전의 경우 사실상 더 이상 신규 건설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해외 수출마저 쉽지 않다. 이 과정에서 인력유출도 늘어나면서 경쟁력까지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원전산업 생태계 유지를 위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전력공사와 한전의 100% 자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이 현재 원전 수출을 추진하는 나라는 영국, 체코, 사우디아라비아 등이다. 이 중 속도가 가장 빠른 사업은 영국 리버풀 북쪽 무어사이드 지역에 짓는 '무어사이드 원전'으로, 한전은 기존 사업자인 뉴젠의 지분 100%를 인수하기 위해 협상 중이다. 뉴젠 지분은 일본의 도시바가 갖고 있다.
한전은 지난해 12월 지분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고, 올해 6월까지 본계약을 체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협상이 늦어지자 도시바가 다른 업체와도 협상하기 위해 지난 7월 한전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해제한다고 통보했다. 한전 측은 영국 정부가 제시한 새로운 사업모델을 중심으로 협상을 지속하고 있지만, 충분한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인수를 포기하는 게 더 경제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한전은 사우디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업 수주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우디는 석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2030년까지 1.4GW급 원전 2기를 건설할 계획이다. 한전은 미국, 중국, 프랑스, 러시아 등 원전 강국들과 함께 7월 예비사업자로 선정돼 경쟁 중이다. 최종 사업자는 내년 중 가려질 전망이다.
당초 정부는 한국을 포함해 2~3개 나라만 예비사업자로 선정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5개국이 모두 예비사업자로 선정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당초 한국을 포함한 3국 정도가 예비사업자로 선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는 점에서 다소 아쉬움이 있다"며 "사우디가 마지막까지 국가끼리 경쟁을 시켜 자신의 협상력을 높이려는 전략을 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수원은 체코를 비롯해 슬로바키아, 폴란드, 필리핀 등에 원전을 수출하기 위해 탐색 중이다. 체코전력공사는 두 개 부지에 각각 1GW 이상급 원전 1~2기 건설을 추진 중이다. 현재 한수원을 포함해 중국, 러시아, 프랑스, 프랑스·일본 컨소시엄, 미국 업체가 예비 입찰문서를 제출했고, 내년께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될 예정이다.
정부는 원전 수출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재차 밝히고 있지만, 원자력업계는 수출이 탈원전 때문에 더 어려워졌다고 주장한다.
원자력학회 측은 "원전 수입국이 국내 원전부품 공급망이 붕괴될 위험에 빠진 우리나라를 사업 파트너로 선뜻 선정하기는 쉽지 않다"며 "정부가 국내 원전산업 유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형건설 A사 관계자는 "정작 우리는 안전을 문제 삼아 우리 원전을 외면하면서 외국을 향해 기술력과 경제성이 뛰어난 한국 원전을 선택해 달라는 논리는 어불성설"이라며 "도입하려는 나라도 안정적인 건설과 운용, 사후 관리에서 큰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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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원전 관련 기업들의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 국내 마지막 신규 원전이 될 신한울3·4호기 건설 여부마저 불투명해지면서 원전 관련 기업, 특히 자금 여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중소·중견기업들의 고민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한국원자력산업회의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올해 4월 작성한 '2016년도 원자력산업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2016년도 국내 원자력산업분야 총 매출액은 27조원으로, 전년에 비해 8189억원(3.1%) 늘었다. 원자력산업분야 매출액은 2005년 12조원에서 매년 성장해 왔다.
2016년 원자력 관련 매출액의 20%(5조원)는 원자력 공급업체가 신고리4~6호기를 건설하고 한빛3~6호기 증기발생기 등을 교체하면서 올렸다. 하지만 앞으로 신규 원전 건설이 중단되면서 공급 산업체 매출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또 전체 매출의 4.3%(1조원)를 차지한 연구·공공기관의 원자력 관련 매출도 감소할 공산이 크다.
국내 원자력발전소는 신고리5·6호기를 끝으로 더 이상 신규 원전을 건설할 계획이 없다. 신한울3·4호기의 건설 여부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건설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고 있어 실질적인 국내 신규 원전은 신고리5·6호기가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신고리5·6호기의 준공시점인 2022년 3월 이후에는 국내 일감이 거의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원자력양자공학과)는 "산업부가 국내 원전산업을 살리고 해외수출을 원한다면 건설이 백지화된 신한울3·4호기 등 국내 원전 건설을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수출에만 의존해 신고리5·6호기를 끝으로 4~5년 동안 공사가 없는데, 업체들에게 버티라는 것은 비현실적인 바람"이라며 "수출이 된다고 하더라도 UAE 모델처럼 우리가 기자재 납품부터 건설, 운영까지 전부 담당하게 된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탈원전으로 인한 인력유출도 이미 현실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이 한전기술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5월부터 1년여 동안 한전기술에서 퇴직한 원전 설계 관련 인력은 53명에 달했다. 같은 기간 한수원에서는 원전 기술 분야 인력 61명이 퇴직했다.
산업부가 에너지경제연구원 등에 의뢰해 작성한 '원전산업 생태계 개선방안 보고서'도 해외 원전을 추가로 수주하지 못하면 국내 원전산업 인력이 현재 3만8800명에서 2030년 2만6700명으로 급감할 것으로 관측했다. 보고서는 사우디, 영국, 체코, 폴란드 등 4개국에서 2기씩 신규 원전을 수주해야 2030년 인력 규모가 현재와 비슷한 3만9500명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원자력공학과)는 "수출에 성공하더라도 탈원전으로 인해 국내 기술 인력이 없어지면 사후 운영지원을 해줄 길이 없다"며 "결국 우리 원전의 매력이 떨어져 수출이 더 힘들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원자력산업회 관계자는 "원자력산업 생태계가 무너지기 전에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으나, 실질적인 준비 상태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며 "지금부터라도 서둘러 원자력 생태계를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는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주장을 정관계가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