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분리 후 사고 1/5로 줄어… 전문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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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여서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진단도 내려지기 전에 부작용이 큰 처방전부터 내놓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28일 국토부에 따르면 제2의 오송역 단전사고를 막고자 지난 23일 국토부 내에 전담기획반(TF)이 꾸려졌다. TF는 국토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소속 철도안전감독관과 한국교통안전공단 검사관 등이 참여하는 현장조사팀(6명)과 대학교수 등 외부 전문가(7명)로 짜진 대책수립팀으로 구성됐다.
TF는 일단 오송역 단전사고 원인을 조사해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방향은 이미 잡혔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김 장관은 지난 2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재발방지책으로 사업 주체를 조정하겠다"며 "전차선·신호·궤도공사 등 열차 운행과 안전 관련 철도시설 공사는 모두 코레일에서 수탁받아 시행하는 것을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사고 원인과 관련해 "충북도가 시행한 전차선로 교체공사에서 시공 불량으로 절연 조가선이 연결부에서 뽑힌 것으로 추정된다"며 "열차 안전에 직결되는 공사는 철도공단이나 코레일이 시행해야 하는데 직접 수탁하지 않고 충북도가 발주했다. 철도공단이 공사 입회나 감독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영식 코레일 사장도 이날 "열차 안전운행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사는 코레일이나 철도공단이 직접 시행하게 관련 규정이나 법규를 보완하고, 유사시 고객 서비스와 안내 매뉴얼을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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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을 요구한 한 철도업계 관계자는 "철도 횡단시설은 지하화하는 게 원칙이지만, 선형이나 주변 도로시설물 등을 살펴 여건상 지상이 낫다고 판단하면 그럴 수 있다"면서 "철도공단과 충북도 등의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김 장관이) 시설공단을 밀쳐내고 운영조직인 코레일에 시설 관련 공사를 맡기겠다는 것은 철도산업 상하 분리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코레일과 ㈜에스알(SR)은 이번 사고로 최소 14억원의 피해를 봤다고 추산하는 가운데 발주기관인 충북도와 시설관리자인 철도공단은 주장이 엇갈리는 상태다.
충북도는 지난달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교량(다락교) 인근 전차선 개량공사를 발주했다. 열차에 전기를 공급하는 전차선과 이 선이 처지지 않게 수평을 잡아주는 조가선을 교체하는 작업이다.
충북도는 지난해 10월과 올해 4월 철도공단에 일부 공사를 맡기려 했으나 철도공단에서 인력이 없고 공사비가 적다는 이유 등으로 반대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철도공단은 철도보호지구 내 선로 개량공사는 철도공단이 관리자이지만, 지하화하지 않는 경우 통상 지방자치단체가 주변 여건 등을 고려해 추진한다고 설명했다. 또 애초 2009년 교량 건설 사업을 협의할 때 지하화를 검토해달라고 사업계획을 반려했으나 충북도가 도시계획 등을 반영해 지상화를 요구함에 따라 공사를 승인했다고 부연했다. 지상 공사는 철도공단이 수탁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어 절차상 하자는 없다는 것이다.
설명을 종합하면 철도시설물 공사와 관련해 규정 등이 미흡하다면 이를 보완하면 될 일이지, 조사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철도공단을 따돌리고 코레일에 시설 관련 업무를 주겠다는 것은 국토부가 지나치다는 견해다.
일부 철도전문가는 김 장관의 발언이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철도전문가는 "코레일이 시설 공사를 맡으면 앞으로 사고가 나도 원인 규명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철도 상하 분리 이전의 철도청 시절로 돌아가자는 얘기인데, 과거처럼 잘못이 생겨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뿐 조직이나 시스템의 문제는 묻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발주처가 코레일이 되면 문제가 생겨도 철도공단이 시설을 잘못 만들어놨기 때문이라고 남 탓만 할 수 있다"며 "철도청 시절과 비교하면 현재 철도 관련 사건·사고 발생 횟수는 5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이는 상하 분리 이후 관리체계가 잡혔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코레일이 발주한 공사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운영상의 문제를 지적하겠느냐"고 꼬집었다.
철도업계 다른 관계자는 "철도차량이나 시설 노후화를 고려할 때 앞으로 철도 관련 사고가 안 날 거라 기대하긴 어렵다"며 "유지보수와 관련해 투자를 늘리고 전문조직에 각각의 역할을 맡기는 것이 효율적인 관리방안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