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동된 선로전환기… 한쪽 오류시 다른 쪽도 이상 가능성 불구 운행 강행뒤늦은 靑 질책 "안전 보다 기관 이윤·성과 앞세운 것 아닌지"
  • ▲ 탈선한 강릉선 KTX 열차.ⓒ연합뉴스
    ▲ 탈선한 강릉선 KTX 열차.ⓒ연합뉴스
    강릉선 KTX 탈선 사고와 관련해 코레일의 안전불감증이 사고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선로전환기에서 오류 신호가 떴다면 안전을 위해 열차 운행을 늦추거나 속도를 낮추라고 지시해야 했지만, 코레일 관제센터에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코레일의 이런 안전불감증은 무지와 자만심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코레일이 본선과 지선 쪽 선로전환기 시스템의 연동 여부를 몰랐거나 알고도 이를 무시한 채 열차 운행을 강행했을 개연성이 적잖은 상황이다.

    ◇출발 늦추거나 운행속도 낮췄어야

    11일 국토교통부와 철도업계에 따르면 KTX 제806호 열차는 지난 8일 오전 7시30분 강릉역을 출발하고 5분쯤 지나 탈선 사고가 났다. 남강릉분기점에서 철도차량기지로 들어가는 지선(21A) 쪽 선로전환기 신호시스템에 오류가 표시돼 윤 모 강릉 역무팀장이 현장에 출동한 것은 이보다 앞선 오전 7시4분쯤이다. 양대권 코레일 안전혁신본부장은 지난 9일 뉴데일리경제와의 통화에서 "지선 쪽(21A) 선로전환기가 나쁘다고 뜨니 현장상태를 확인하러 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국토부 항공철도조사위원회는 강릉선 본선(21B)과 지선 쪽 선로전환기와 전환기의 오류 신호를 연결하는 회선(케이블)이 뒤바뀌어 있었다고 초동조사 결과를 브리핑했다. 양 본부장은 회선이 뒤바뀌어 본선 쪽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서울방향 KTX 운행을 늦췄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21B 선로전환 시스템과는 무관하다"며 "(당시) 본선 쪽 신호에 오류가 표시되지 않았다는 것은 (운행에)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까지 예측해 출발을 늦춘다면 열차운행이 어렵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철도시설공단 한 관계자는 "본선과 지선의 선로전환기 시스템이 연동돼 있는지, 독립된 시스템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며 "연동된 시스템이라면 지선 쪽 오류 표시가 본선 쪽과도 관련돼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철도공단 확인 결과 남강릉분기점의 선로전환기 시스템은 연동돼 있었다. 지선 쪽 오류가 연동된 본선 쪽과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코레일 관제실에서 열차 운행과 관련해 적절한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코레일의 철도운전취급세칙에는 선로전환기 장애 땐 시속 40㎞ 안팎으로 속도를 줄이게 돼 있다. 당시 사고 열차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평소처럼(시속 105㎞쯤) 달리다 탈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양 본부장은 뒤바뀐 표시회로와 관련해 "시설물의 이상여부를 시험측정하는 연동검사를 2년에 1번 하게 돼 있다"며 "철도공단이 준공 전인 지난해 9월 시행해 아직 검사 시기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코레일이 사고지점 선로전환기 시스템의 연동 여부를 아예 몰랐거나 알았지만, 이를 무시하고 열차를 운행했을 개연성이 없잖은 것이다. 코레일의 안전불감증이 지적되는 대목이다.

    전국철도노동조합은 10일 이번 탈선 사고와 관련해 "과거 동일한 선로전환기 고장이 발생한 경우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철도노조는 "열차 정시운행에 대한 압박으로 지난해 신설공사부터 2개의 연동된 선로전환기의 회로를 독립적으로 분리해 한 선이 고장나도 다른 선을 이용해 열차를 보낼 수 있게 했다"며 "조금이라도 빨리 열차를 운행하도록 하는 과정에서 안전조치가 제거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강릉선 KTX 탈선 사고에 대해 철저한 사고 원인 규명을 지시하며 "(이번 사고가) 혹시라도 승객의 안전보다 기관의 이윤과 성과를 앞세운 결과가 아닌지도 철저히 살펴보라"고 주문했다.

    코레일이 본선과 지선 쪽 시스템의 연동 여부를 알고도 열차 운행을 강행했다면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거라는 의견이 제기되는 이유다.
  • ▲ 수석ㆍ보좌관 회의 발언하는 문 대통령.ⓒ연합뉴스
    ▲ 수석ㆍ보좌관 회의 발언하는 문 대통령.ⓒ연합뉴스
    ◇건설·유지보수 업무 일원화해야

    코레일이 선로전환기 시스템의 연동 여부를 몰랐다면 철도공단과의 시설 유지보수 업무 인수인계가 엉터리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철도분야 한 전문가는 "가령 자동차를 사면 제작사가 제공하는 매뉴얼이 있다. 엔진오일을 언제 갈고 몇㎞마다 관련 부품을 갈아주라고 설명한다"면서 "철도공단에서 강릉선 건설 이후 유지보수 업무에 대해 코레일에 매뉴얼을 충분히 설명했을지가 우선 의문"이라고 했다.

    이어 철도 전문가는 코레일로 화살을 돌렸다. 그는 "코레일은 과거 철도청 시절부터 유지보수 업무를 맡아오던 게 있어서 철도공단이 신설 철도의 관리 매뉴얼을 알려주지 않아도 '잘 아니까 얘기 안 해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코레일의 자만심이 관성적인 업무태도와 만나 안전불감증을 키웠을 거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철도업계 일각에선 코레일이 위탁 처리하는 철도 유지보수 업무를 건설을 담당하는 철도공단으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철도업계 한 관계자는 "철도청 조직이 코레일과 철도공단으로 상하 분리되면서 7000여명 규모의 시설 유지관리 인력이 코레일로 넘어갔다"며 "철도노조로선 이들 유지보수 인력을 끌어안아야 몸집을 키워 목소리를 높일 수 있으므로 현재의 위탁 구조를 유지하려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 ▲ 탈선 사고 현장 지나는 KTX 열차.ⓒ연합뉴스
    ▲ 탈선 사고 현장 지나는 KTX 열차.ⓒ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