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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의 대(對) 한국 반도체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해 청와대로 30대 대기업 총수들을 불러모은것에 대해 뒷말이 무성하다.
"전례없는 엄중한 상황"이라는 대통령의 워딩과 달리 사태 원인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사뭇 차이가 있다.
작금의 사태가 대외요인에서 기인한 것으로 해석한 문 대통령은 민관협력과 소통을 강조하며 기업이 중심이 되어 달라고 했다. 소재 국산화 등 중장기 대책도 제시했다.
정부가 외교적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청 간담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하다.
당장 정치외교 문제에서 비롯된 만큼 문제 해결도 정치외교적으로 풀어야지 기업을 앞장세우는 것은 하책 중에 하책이라는 지적이다.야권에서는 대통령과 정부가 정치외교적 수단으로 일본과의 관계를 악화시켜놓고 기업과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부담이 가도록 한 부분에 대해 사과가 선행됐어야 한다는 주장 마저 나온다.
대법원의 등뒤에 뒷짐지던 정부는 그간 일본의 심상찮은 움직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벼르고 벼른 일본의 대응은 그래서 더 아프다.
일본이 타격지점을 세밀하게 분석해 WTO 제소꺼리가 되는 수출금지같은 조치보다는 무역 규제상의 우대 조치 대상인 화이트 리스트를 해제하고 심사를 강화하는 비관세 장벽을 세운 것이 지금까지의 흐름이다.
바로 여기에 문제의 해법이 들어있다. 정치프레임에 경제산업계가 덤터기를 쓰고 있는 만큼 양국 정상회동 등 정치외교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당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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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 프레임 남발... 일본 반도체 반격에 당황
지난 2017년 9월 문 대통령은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한 뒤 한미일 정상 업무오찬에서 ‘미국은 우리 동맹이지만 일본은 동맹이 아니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위로금으로 10억엔(약 108억원)을 출연한 화해치유재단을 일방적으로 해산했다. 한국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 배상 판결을 내렸다.
청와대는 조선일보 칼럼에 대해 "토착왜구같다"며 상대국을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날렸다.
집권여당인 민주당에서도 이재정 대변인이 ‘토착 왜구(倭寇. 왜나라 도적)’ 등 발언이 유행한다는 내용을 담아 서면브리핑을 여과없이 언론에 뿌렸다.
민주당의 중진의원은 이번 경제제재에 대해 “이 정도 경제침략 상황이면 의병을 일으켜야 할 일”이라고 주장까지 하고 나섰다.
이런 상황을 자제시켜야 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일본 정부를 향해 "보복성 조치가 나온다면 가만 있지 않겠다"며 외교부 장관이 아닌 국방부 장관같은 발언을 상대국에 토해냈다.
이것말고도 정치권에서 이웃나라인 일본을 적대시하는 반일 프레임은 수도 없이 찾을 수 있다. 지금의 이 상황은 정치권이 그동안 쌓아온 업보인 셈이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동안 정부가 반일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냈는데 일본의 반도체 수출 제한을 계기로 봉합은 커녕 더 악화시키는 것 같다"며 "이런 엄중한 시기에 강경화 외교부장관을 아프리카에 출장 보낸것이나 한일 외교채널 막아 놓고 대기업 총수들을 불러 국내 정치에 몰두하는것은 사태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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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권 외교적 노력을 사법적폐로 낙인… 태세전환 어려워
그렇다고 현 정권의 급격한 태세전환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박근혜 정부 초기에 위안부 문제를 국제 이슈로 끌고 가려는 오류를 위안부 합의로 전환한 정치외교적 노력에 대해 사법적폐, 토착왜구식의 낙인을 찍은 장본인들이기때문에 자기부정이 쉽지 않을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온다.
미국과 일본이 한국에 대한 반도체 도발을 사전에 협의했을것이라는 추측도 시장에 파다하다. 미국의 동맹인 한국에 대해 일본정부가 미국의 동의 없이 보복을 하지 않았을것이라는 예상이다.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으로 한일관계가 극도로 경색되고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늘상 애용하는 트윗조차 남기지 않고 묵묵부답이다.
한일 양국 간 갈등이 반도체를 넘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까지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지만 백악관과 국무부는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하면서 여전히 강건너 불구경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해결책은 이미 나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양국 협력의 초석을 놓았던 김대중-오부치 공동 선언의 정신으로 돌아가고 한미 동맹 수준의 협력관계를 복원하라고 조언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1998년 10월8일 도쿄를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의 결단으로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공식 문서로 처음 명문화한 것이다.
당시 두 정상은 정치, 안보, 경제, 인적·문화교류, 글로벌 이슈 등 5개 분야의 협력과 43개 항목의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선언에 명문화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승계했다고 자부하는 김대중 정권의 역사적 결정을 부인하고 뒤집으면서 이런 결과를 초래했으니 대기업 총수들 불러모으는 것보다 한일 과장급 실무 협상을 시작으로 외교라인을 총 동원하라는 것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오사카 G20 정상회의때 가장 가까운 나라인 한국의 대통령과 아베 일본총리의 정상회담은 불발됐다"며 "그 때 정상회담으로 관계정상화의 물꼬를 텃다면 지금과 같은 경제 갈등은 막을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해결책은 분명하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정신으로 돌아가고 일본과 한미동맹 수준의 협력관계를 복원하는 수 밖에 없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