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불매운동 장기화에 얼어붙은 소비 심리일본 상품 뿐만 아니라 소비 자체 꺼리는 사람들 많아일본보다 한국 기업·국민에 피해 돌아갈 가능성 농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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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불매운동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기업들의 마케팅 활동이 눈에 띄게 위축되고 있다. 이미 침체돼 있던 소비 심리가 더욱 얼어붙는 것은 물론, 최저임금 급상승 등으로 불안하던 고용 시장에도 적색불이 켜졌다.

    2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달 31일 tbs 의뢰로 진행한 제4차 일본제품 불매운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19세 이상 국민 4320만명 중 2780만명에 해당하는 64.4%가 불매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참여자(64.4%, 2780만)와 향후 참여 의향자(68.5%, 2960만)의 규모를 고려하면 앞으로 최대 180만명이 더 불매운동에 참여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번 조사는 19세 이상 성인 9340명을 접촉해 최종 502명이 응답을 완료했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였다.

    국민 3명 중 2명이 일본 불매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처럼 일본 불매운동 분위기가 고조되자 많은 국내 기업들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가까운 일본인만큼 일본 지분이 포함된 기업이 많았고, 국민들을 통해 이같은 지분 구조가 낱낱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분만이 문제가 아니다. 제품에 일본산 재료를 사용하거나 이름을 빌려와 로열티를 내는 등의 사업도 국내에선 많다. 또한 불매운동 리스트 기준이 모호하고 글로벌 경제 시장으로 나아가던 기업 입장에서는 외국 자본으로 인한 리스크를 떠안아야 하는 억울한 상황이다.

    불매운동 리스트 기준격인 '노노재팬' 리스트에서는 동아오츠카, 에스원, 와코루, 라이온코리아가 삭제됐다. 사실상 한국 기업에 더 가깝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일본산 재료가 조금이라도 들어가거나, 일본 측의 자본이 조금만 들어가 있어도 소비자들이 불매운동 리스트에 포함해버리기 때문에 기업들은 광고·마케팅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CJ제일제당은 햇반 미강추출물 원산지가 일본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곤욕을 겪었다. CJ제일제당은 "햇반에 들어가는 미강추출물의 양은 0.1% 미만이며, 생산업체는 후쿠시마에서 800km 이상 떨어져 있다"고 해명했지만 소비자들은 이미 햇반을 '일본산'으로 규정한 후였다.

    오뚜기도 일본산 용기 혼용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됐다. 오뚜기 측은 "일본산 용기는 극소량 혼용하고 있었고 대부분이 국내산 용기"라며 "앞으로는 국내산 비중을 늘려나갈 것"이라고 논란 확산 방지에 나섰다.

    실제 최근 일본 불매운동 분위기가 조성된 이후 일본 지분이 포함된 회사의  마케팅 활동은 대부분 전무하다.

    불매운동의 대표 타깃격인 유니클로는 한국에서 180여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유니클로의 한국법인인 에프알엘코리아가 고용하고 있는 인원만 해도 약 4800여명이다.

    이뿐만 아니라 에프알엘코리아는 지난 2014년부터 6년째 ‘장애인고용 우수 사업주’로 선정된 바 있다. 에프알엘코리아는 전체 직원 4772명 가운데 총 98명의 중증장애인을 고용(4.11%)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불매운동이 장기화될 경우 많은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게될 가능성도 있다. 이미 최근 수년간 최저시급이 대폭 오르면서 고용 시장은 활기를 잃은 상황이다.

    편의점 미니스톱 가맹점주들 역시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한국미니스톱의 최대주주는 지분 96.04%를 보유한 이온그룹이고, 나머지 지분 3.94%는 미쓰비시가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미니스톱의 가맹점주들은 대부분 한국인이다.

    다이소 역시 억울한 실정이다. 일본 다이소로부터 일부 지분 투자를 받은 것은 맞지만 현재 전체 매출의 70%는 680여 국내 중소기업이 납품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이소가 불매운동의 타깃이 될 경우 많은 국내 중소기업이 버티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다이소가 고용한 직원만 해도 1만2000여명이 넘는다.

    아울러 국내에 있는 일식당·이자카야 등에도 불똥이 옮겨붙었다. 일부 일본산 재료를 쓰고 일본 요리를 판매하긴 하지만 이곳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인 소상공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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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큰 문제는 사실이 아닌 정보가 섞여있어도 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과일 감숙왕 등으로 유명한 스미후루코리아는 일본 지분 정리를 마쳤지만 이미 일본 회사라는 낙인을 벗어내기 힘든 상황이다.

    관광업계 역시 일본여행이 크게 감소했지만 다른 국가들의 여행 실적이 크게 오르는 모양새는 아니다. 즉 일본여행을 포기한 사람들이 다른 국가로 여행을 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여행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나투어는 지난 7월 자사의 해외여행수요(항공권 판매량 21만7000여 건 미포함 수치)가 작년 동월 대비 14.4% 감소한 24만1000여 명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특히 하나투어 측은 작년 여름 발생했던 자연 재해의 영향으로 올 들어 줄곧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해온 일본의 침체는 보다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달부터 심화된 한일 양국간 갈등으로 인해 8월 이후 출발하는 신규 여행예약이 급격한 감소세를 띠기 시작했다.

    일본의 전년 대비 여행수요는 36.2%나 감소했다. 동남아(1.5%), 유럽(5.6%), 미주(4.2%)는 여행객이 늘었지만 중국(-13.7%), 남태평양(-12.0%) 등 전체적으로 감소폭이 증가폭보다 더 컸다.

    모두투어가 지난 7월 지역별 여행상품 판매 성장률을 집계한 결과 일본은 38.8%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유럽도 13.6%, 미주도 21.9%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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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대로 판매 성장률이 오른 지역도 있다. 다만 중국이 7.1%, 동남아시아가 5.5%, 남태평양 0.9%로 소폭 상승하는데 그쳤다.

    패키지여행 판매는 전달에 비해 2.2% 감소했고, 현지투어, 입장권 등의 단품 판매는 47%나 빠졌다.

    아시아나항공은 '부산-삿포로' 항공편을 중단했고, 대한항공 역시 인천발 일본행 노선을 축소한다고 밝혔다.

    여행상품 판매 자체가 쪼그라들면서 항공편마저 축소되고 있는 셈이다. 국내 여행사들의 폐업러시가 이어진 상황에서 이대로라면 국내 여행사들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일본 불매운동이 단순하게 일본에 타격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한국 기업들과 우리 국민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지금 같은 분위기가 장기화될 경우 우리 한국 소비 경제 자체가 침체되고 결국 한국 기업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