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정제마진, 18년 만에 '마이너스' 기록무역분쟁 따른 수요 급감 영향 제품 가격 하락 이어져
  • ▲ 자료사진. SK어드밴스드 공장. ⓒ뉴데일리경제 DB
    ▲ 자료사진. SK어드밴스드 공장. ⓒ뉴데일리경제 DB

    정제마진이 18년여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미중 무역 분쟁 등으로 인한 글로벌 수요 감소 여파로 분석된다. 수출량과 수출단가가 크게 내려간 가운데 일부 업체의 경우 어닝쇼크 우려까지 제기된다. 불황에 대비해 나선 화학 부문도 실적변동성 보완은 커녕 손실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정유사의 핵심 수익성 지표인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이 11월 3주 배럴당 마이너스 -0.6달러로 집계됐다. 지난주에 비해 배럴당 0.5달러 떨어진 수치다. 주간 평균 기준 정제마진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2001년 6월 1주(-0.52달러) 이후 약 18년 5개월 만이다. 일간으로는 2009년 1월14일(-0.12달러)이 최근이었다.

    정제마진은 두 달 전 사우디아라비아 원유시설에 대한 드론 테러로 공급이 급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9월 3주 배럴당 10.1달러까지 치솟은 뒤 줄곧 내리막이다.

    정제마진은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가격과 수송·운송비 등 비용을 제외한 금액이다. 통상 정유사들은 정제마진이 배럴당 4달러는 돼야 손익분기점(BEP)을 넘는다고 보는 만큼 이 상태라면 정유시설을 가동할수록 손실이 커질 수밖에 없어 4분기 대규모 적자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제마진 폭락의 원인으로는 미중 무역 분쟁에 따른 정유제품 수요 감소가 첫 손에 꼽힌다. 여기에 일부 트레이딩 업체들이 추가 가격 하락에 베팅하면서 정유 수요가 급감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석유제품 수출량과 단가가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석유공사 집계를 보면 10월 석유제품 수출량은 4395만배럴로, 전월대비 1.2% 줄어들었으며 전년동월대비로는 11.1% 감소했다.

    국제유가 하락 여파로 수출단가도 크게 내려갔다. 10월 전체 품목의 평균 수출단가는 배럴당 72.89달러로, 전월대비 0.26달러 하락했으며 전년동월대비로는 17.47달러 줄어들었다.

    이로 인해 10월 가동률은 76.7%로 전월보다 7.8%p 하락했으며 전년동월보다 9.6%p 감소했다. 올 들어 가동률이 70%대로 내려앉은 것은 처음이다. 올 들어 10월까지 누적 가동률은 85.5%로, 이 추세라면 2014년 83.6% 이후 최저가 될 전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미중 무역 분쟁으로 인한 경기 침체로 역내 수요가 감소하고, 최대 수출처인 중국의 자급률이 확대되면서 경유를 중심으로 생산이 크게 감소해 가동률도 70%대로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10월에는 정기보수로 버텼지만, 이후에도 수출 환경이 여의치 않아 가동률이 회복될 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 ▲ 자료사진. 잔사유 고도화시설(Residue Upgrading Complex, RUC). ⓒ에쓰오일
    ▲ 자료사진. 잔사유 고도화시설(Residue Upgrading Complex, RUC). ⓒ에쓰오일

    이 같은 정제 마진 하락으로 국내 정유사들이 4분기에 대규모 영업손실을 기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유4사 중 상장사 2곳의 실적 전망치를 분석한 결과 SK이노베이션은 4분기 매출액 12조5513억원, 영업이익 4153억원의 영업성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4분기에 비해 매출액(13조9480억원)은 10.0% 감소한 반면 영업이익(-2810억원)은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

    에쓰오일 역시 매출액(6조2496억원)은 지난해 4분기 6조8610억원에 비해 8.91% 줄어드는 반면 영업이익은 -3335억원에서 3324억원으로 흑자전환에 성공할 전망이다.

    다만 양사 모두 지난해 영업손실을 기록한 만큼 기저효과로 풀이된다. 실제 2017년 4분기에 비해서는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영업이익(8453억원)이 50.8% 급감할 것으로 추정되며 에쓰오일도 3693억원에서 9.97%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문제는 정유업체들이 업황 부진에 대비해 나선 화학 부문 역시 경기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화학제품의 원재료인 나프타와 중간재인 에틸렌의 톤당 스프레드가 지난달 212달러까지 좁혀지면서 되레 손실을 걱정해야 하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나프타와 에틸렌 간 스프레드가 톤당 250~300달러는 유지돼야 수익이 난다고 보고 있다.

    앞서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는 2017년 각각 2조6000억~2조8000억원을 투자해 나프타를 원료로 하는 NCC(Naphtha Cracking Center)를 건설하고 있다. 석유화학사업 진출로 새로운 수익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셰일오일 공급 증가로 글로벌 에너지 지형이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친환경에너지 사용 확대로 석유 수요가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정유사 입장에서는 전기차 배터리 외에 전기차나 태양광 등에 투자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글로벌 수요 둔화 등으로 이미 시황이 다운사이클로 진입했다고 보고 있다"며 "당분간은 침체를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