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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의 국제신용등급이 강등됐다. 업황 둔화에도 공격적인 투자를 지속하면서 재무안정성에 '경고등'이 켜지면서다. 단기 실적 반등 가능성이 낮은 가운데 중장기 투자는 지속할 계획으로, 자칫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 마저 나온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국제신용평가업체 S&P는 최근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내렸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신용등급이 강등된 것은 3년여 만이다.
업황 둔화 속에서도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를 지속하면서 펀더멘탈을 약화시킨 점 등이 부담 요소로 작용했다.
S&P는 "정유 및 석유화학 수익성이 예상보다 악화되고 유가 변동성이 커져 영업현금흐름이 약화될 경우 신용등급 하향이 현실화될 수 있다"며 "투자와 배당금 지급을 크게 늘리는 등 공격적인 재무정책도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8월 무디스도 SK이노베이션에 대한 등급 하락 가능성을 드러냈다. 당시 무디스는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Baa1) 아웃룩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꿔달았다.
무디스 역시 투자 부담과 업황 부진의 이중고에 대해 우려했으며 나아가 높은 수준의 배당금을 지급한다는 점에서 향후 조정순차입금이 추가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대규모 투자 기조에 힘입어 3분기 별도 기준 2016년 1조원대였던 부채가 △2017년 1조4831억원(+8.40%) △2018년 2조5640억원(+72.8%) △2019년 2조8619억원(+11.6%) 등으로 지속 증가했다. 2016년 3분기 부채총액이 1조3680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3년새 두 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차입금의 경우 2017년 3분기 3069억원에서 올해 동기 1조6382억원으로 다섯 배 이상 뛰었다.
같은 기간 부채 증가에 따라 이자비용(410억원)도 두 배 이상 증가하면서 현금 및 현금성 자산 규모(1870억원)가 2017년 대비 34% 수준으로 쪼그라드는 등 유동성이 저하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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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이후 투자 부담 증가, 대규모 배당 및 자기주식 취득에 따라 부족자금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부터 배터리·소재 부문 투자와 듀폰의 화학사업 및 SK네트웍스의 도매유통사업 인수(2900억원), 배당 확대로 자금소요가 증가하면서 차입금이 증가했다. 또 2018년에는 수익성 하락과 더불어 배터리·소재 부문의 증설 투자와 셰일 개발업체인 미국 롱펠로 지분 인수(3100억원), 고배당, 자사주 매입 등의 여파가 있었다.
올해 초 헝가리 제2 생산법인을 설립하고 설비를 투자하기 위해 약 9452억원의 현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4월에는 사내 직원들의 교육 등을 위한 시설로 인천 무의도 소재 홈플러스 아카데미를 1154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이밖에 5월 중국 배터리 생산법인 투자(5799억원)와 배터리 소재사업 전문화를 위한 물적 분할 법인인 SK IE테크놀로지에 4503억원을 출자하기로 했다.
이에 반해 영업성적은 내리막이다.
3분기 별도 기준 매출액(2조5996억원)과 영업이익(1조3784억원), 순이익(1조2553억원) 모두 2년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매출액의 경우 2년 전에 비해 5.65% 감소했으며 영업이익(-22.6%)과 순이익(-29.4%)도 줄어들었다.
게다가 금융투자업계 실적 전망치 분석 결과 올해도 턴어라운드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제마진 악화 여파로 매출 50조원, 영업이익 1조5413억원 등의 성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돼 지난해보다 매출(-7.24%), 영업이익(-27.2%) 모두 감소할 것으로 나타났다.
권기혁 한국신용평가 실장은 "당분간 글로벌 정제설비 증설과 PX, 윤활기유 등의 신규설비 가동 및 글로벌 경기 둔화로 인한 산업 내 수급 부담이 일정 수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향후에도 유가, 정제마진 및 주요 제품의 글로벌 수급 상황, 배터리를 포함한 신규 사업의 영업성과에 연계된 실적가변성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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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앞으로 대규모 투자가 예정돼 있다는 점이다.
SK이노베이션의 연간 자본 지출 규모는 지난해 1조5000억원에서 향후 2년 동안 2조5000억~3조5000억원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SK이노베이션은 경쟁업체에 비해 뒤늦게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뛰어들었다. 때문에 사업 격차 추격을 위해 미국, 폴란드, 중국 등에서 대규모 증설을 서두르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시장에서 규모의 경제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연간 생산량을 지난해 4.7GWh에서 2020년 말까지 60GWh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 같은 공격적인 목표에는 그룹 차원의 의지까지 뒷받침되고 있다. SK그룹은 2017년부터 3년간 미국에 50억달러를 투자했는데, 이 중 17억달러가 SK이노베이션의 조지아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짓는데 투입됐다.
최태원 SK 회장은 "시장 상황에 따라 조지아 공장에 최대 50억달러까지 투자를 확대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의 높은 배당 성향을 비롯한 적극적 주주환원 정책도 현금흐름상 부담 요인으로 판단된다. 2017년 이후 연간 7000억~8000억원의 배당 소요가 지속되고 있으며 2018년에는 1조원의 자기주식 취득과 같은 주주가치 제고 관련 자금소요도 증가했다.
S&P는 이를 반영해 SK이노베이션의 조정 차입금 규모가 2017년 2조9000억원, 2018년 5조5000억원에서 향후 2년 동안 7조5000억~8조원 수준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권기혁 실장은 "당분간 배터리 사업 중심의 신규 투자, 배당금 지급 등으로 인한 자금 소요와 외부차입 확대 가능성이 내재하고 있으며 향후 영업현금 창출 수준과 더불어 적정 투자재원 확보 여부, 신규 사업의 진행 상황과 영업성과, 투자 및 배당정책 등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