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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조업정지를 면한 국내 철강업계가 탄소배출권 거래제에 또 한번 시름하고 있다. 철강재 생산을 위해선 탄소배출권 확보가 필수적인데, 부족한 물량을 채우기 위한 구매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포스코 등 국내 철강사들은 내년 배출권 거래 가격을 미리 예측하며, 추가비용을 사업 계획에 선반영하는 등 벌써부터 대비책 마련에 나섰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올 한해 조업정지 이슈로 골머리를 앓았던 철강사들이 내년엔 탄소 배출권 거래가격 급등으로 큰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기업들이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배출할 권리를 사고팔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파리기후변화협약'을 준수하기 위해 한국도 2015년 본 제도를 도입했다.
국내에선 지난 2015년 1월 12일 한국거래소가 탄소배출권 거래시장을 개장하면서 첫 거래가 이뤄졌다. 당시 거래가격은 톤당 7860원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5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가격은 크게 올랐다.
배출권시장 정보플랫폼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배출권 거래가격은 톤당 4만800원을 기록했다. 개장 당시와 비교하면 무려 419.1% 상승했다.
급등한 가격은 경영 부담으로 이어진다. 제품 생산을 위해선 탄소 배출권 확보가 필수인데 현재 산업군에 할당된 물량이 턱없이 부족해 거래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한 대형 철강사는 사업계획을 수립하며 배출권 비용으로 약 1000억원이 더 소요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마저도 배출권 거래 가격을 톤당 3만원~3만5000원 정도로 가정했을 때 얘기다. 지금과 같이 천정부지로 오르면 구매비용은 더 증가할 수 밖에 없다.
철강업은 시멘트와 함께 업종 특성 상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은 산업군 중 하나다. 일례로 고로에서 쇳물을 생산할 때 철광석에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어 녹이는데 그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이런 이유로 포스코는 지난 2011년부터 단일 기업으로 8년 연속 탄소 배출량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포스코의 지난해 탄소 배출량은 7134만톤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국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1% 수준이다.
2위인 한국남동발전(5813만톤)과 비교해도 1319만톤이 더 많다. 내년 생산을 늘리려는 포스코 입장에선 온실가스 배출권 확보가 절실한 셈이다.
문제는 감축 목표가 확대된 제3차 배출권 거래제가 2021년부터 시행된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달 중 2021~2025년 적용되는 제3차 배출권 거래제 기본계획을 최종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3차 계획에선 기업들이 의무적으로 감축하거나 돈을 주고 사들여야 하는 탄소 배출권 유상할당 비율이 종전 3%에서 10%로 확대된다. 다시 말해 2차 계획에선 3%만 줄이거나 배출권을 구매했으면 됐는데, 2021년부터는 이 규모가 10%로 커진다는 얘기다.
결국 배출권을 구매하지 못한 기업은 배출권 평균 거래가격의 3배에 달하는 과징금을 물거나 생산을 줄일 수 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과징금이 톤당 최대 10만원으로 설정돼 있는데, 거래가격이 이 수준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며 "포스코 등 국내 대표 철강사들이 2차 계획까지 감축 목표를 달성했지만, 3차부턴 쉽지 않아 보인다. 기본적으로 배출량이 많아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