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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이 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석유화학 부문을 제외한 전 사업 부문이 부진한 가운데 ESS 화재 관련 일회성 비용이 더해지면서다. LG화학은 새 먹거리로 육성 중인 전기차 배터리 부문에 힘을 더 실어 실적 공백을 메우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6일 잠정 실적 보고서 분석 결과 지난해 LG화학의 영업이익은 연결 기준 8956억원으로, 2007년 '영업익 1조 클럽'에 진입한 이후 처음으로 1조원 이하의 실적을 기록했다. 2007년부터 2018년까지 12년간 평균 영업이익이 2조79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절반 이하의 성적을 거둔 셈이다.
영업이익률 3.12%의 경우 2001년 LG생명과학, LG화학, LG생활건강 등 3사 분할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2018년까지 18년간 평균 이익률은 9.48%이며 종전 가장 낮은 성적은 2014년 기록한 5.80%다.
순이익 3761억원 역시 손에 꼽힐 정도로 낮은 성적이다. 2003년 3621억원 이후 가장 적다. 2003년 당시 매출 규모가 지난해(28조원)의 20%도 채 안 되는 5조원 후반대인 점을 감안하면 수익성이 크게 하락한 것이다.
차동석 LG화학 부사장(CFO)은 "연간으로는 미중 무역 분쟁, 글로벌 경기 둔화에도 전지사업의 지속적인 성장세로 사상 최대 매출을 달성했으나, ESS 관련 일회성 비용의 영향으로 전사 이익 규모가 축소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특히 4분기는 일회성 비용이 반영되면서 영업이익이 적자전환했다"면서도 "석유화학 부문의 계절적 비수기 및 시황 악화에도 견조한 수익성을 유지했으며 전지 부문의 자동차전지 손익분기점(BEP)에 준하는 실적 달성 등 의미 있는 성과도 있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4분기 석유화학 부문 영업이익은 견조했으나, 전지 부문 적자가 뼈아팠다.
석유화학 영업이익은 3158억원으로 전년대비 30.6% 증가했다. 최근 나프타 가격의 상대적 강세에도 ABS(고기능 합성수지), PVC(폴리염화비닐) 등 고부가제품 판매 비중 확대 및 BD(부타디엔) 등 원가 감소로 수익성 방어가 가능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또 SAP(고흡수성 수지)도 프로필렌 가격 하락으로 수익성이 양호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지 부문은 2496억원 손실로 전년대비 적자전환했다. 자동차 전지는 외형 성장으로 BEP에 준하는 실적을 시현한 것으로 판단되지만, 예상보다 큰 3000억원의 ESS 관련 충당금 반영 여파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회성 비용을 제외하더라도 전분기에 비해 부진했다. 중대형 전지의 적자 폭 심화, 소형 전지의 비수기 진입에 따른 출하량 감소와 수익성 악화로 전지 부문 실적이 위축됐다.첨단소재 부문 영업이익(83억원)의 경우 전분기에 비해 74.6% 급감했다. 이는 주로 전방산업 비수기에 따른 출하 감소 및 판가 인하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생명과학 부문(-16억원)과 팜한농 부문(-153억원)도 전분기에 비해 손실 폭이 확대됐다. 생명과학은 R&D 비용의 지속적인 증가가, 팜한농은 비수기 진입이 실적 악화의 주요 원인이다.
이밖에 영업 외 항목에서는 LCD용 유리기판 사업부 철수에 따른 자산상각으로 300억~400억원가량의 손실이 발생하면서 순손실이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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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조한 수익성에도 미래 먹거리로 육성 중인 전기차 배터리를 향한 투자는 계속될 전망이다. 전기차 배터리를 통해 부진을 극복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올해는 수주물량이 매출로 본격 반영되는데다 신규 생산능력 및 수율안정화로 흑자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는 게 LG화학 측 설명이다. 지난해 5조원 규모였던 전기차 배터리 매출이 올해는 10조원으로 2배 늘어나는 만큼 영업이익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LG화학은 최근 실적설명회에서 "올해 목표 매출액을 지난해보다 23.4% 증가한 35조3000억원으로 설정했다"며 "이 중 15조원은 전지 부문에서 달성한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 자동차 전지 사업에서는 10조원 매출을 목표하고 있다"며 "최근 자동차 업체와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수요처를 확보하고 있는데다 신규 설비를 증설하고 있는 만큼 매출은 분기를 거듭할수록 좋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LG화학은 지난해 말 GM과 함께 미국 오하이오주에 배터리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으며 세계 전기차 1위 업체인 테슬라와도 배터리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또한 현대·기아자동차를 비롯해 테슬라, 중국 지리자동차는 물론 아우디와 쉐보레, 폭스바겐 등 전 세계 주요 완성차 업체 대부분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LG화학은 2019년 10월 기준 전 세계 배터리시장 점유율 14.2%를 기록하며 중국 CATL(26.7%)과 일본 파나소닉(17.5%)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LG화학은 "지난해 4분기 자동차 배터리가 BEP에 준하는 실적을 달성했다"며 "분기마다 등락은 있겠지만, 추진 중인 증설이 안정화되면 연간 한 자릿수 중반 정도 수익성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LG화학은 전기차 배터리 성과를 더욱 끌어올리기 위해 투자를 강화한다. 3조원을 투입해 현재 70GWh 규모의 생산능력을 올해 말까지 100GWh로 확대할 방침이다. 내년에는 20GWh 용량의 시설을 추가 증설해 내년 말에는 120GWh의 생산능력을 보유한다는 계획이다.
R&D에도 대규모 투자를 단행키로 했다. LG화학은 올해 R&D 비용으로 1조1316억원을 책정했는데, 이 중 34.3%인 3876억원으로 배터리 부문에 책정했다. 전년대비 증감액도 배터리가 675억원(21.1%)로 다른 사업군을 압도한다.
정승세 LG화학 전지 경영전략총괄 전무는 "시장 성장에 발맞춰 전체 생산능력의 80%를 유럽, 중국에 확보할 계획"이라며 "고객사와의 제휴나 조인트벤처(JV) 투자도 지속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유럽의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 강화가 올해부터 심화하면서 전기차 시장이 빠른 속도로 커질 것"이라며 "유럽 시장만 한정해서 봐도 시장 크기가 지난해보다 약 2.5배 성장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증권가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전지 부문 분사에 대해서는 여러 방안에 대해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차동석 부사장은 "전체적으로 사업 방식이 상당히 다른 석유화학 부문과 전지 부문이 같이 있는 것에 대해 장점도 있지만, 투자순위 등 여러 면에서 각 부문의 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며 "사업가치 제고뿐만 아니라 주주가치를 제고할 수 있는 전략적 방안에 대해 다각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분사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지만, 어느 정도 구체화되면 공시 등 관련 제도 범위 내에서 시장과 커뮤니케이션하겠다"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는 올 상반기 내에 LG화학의 전지사업 부문이 분사한 후 기업공개(IPO)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