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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가 중국발 코로나19(우한 폐렴) 사태와 관련해 한시적으로 버스업계의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를 추진하는 가운데 한국도로공사가 문재인 정부의 동네북 신세가 되고 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지난 9일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을 찾아 버스업계와 간담회를 하고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는 버스업계를 위해 오는 11일부터 한시적으로 고속버스 통행료 면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여러 정황상 이번 정부 지원책은 즉흥적이고 일방적인 측면이 엿보인다. 국토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즉시자료로 배포했다. 보도자료에는 가장 중요한 통행료 면제기간에 관한 언급이 빠졌다. 민자고속도로를 포함할지, 한시적으로 적용하면 언제까지 할지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담당부서인 도로정책과 관계자도 이날 간담회 결과에 대해 "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모른다"고 말했다.
국토부의 통행료 면제 발표에 대해 모르기는 도로공사도 마찬가지였다. 도로공사의 한 관계자는 국토부의 발표에 대해 "모르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국토부 발표가 도로공사와 사전 협의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졌다는 방증인 셈이다.
생색은 국토부가 내고 부담은 도로공사가 떠안는 모습은 익숙한 광경이다. 현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으로 명절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를 추진했다.도로공사에 따르면 2017년 추석 연휴(10월3~5일)를 시작으로 올해 설 연휴(1월24~26일)까지 도로공사가 관리하는 재정고속도로에서 면제된 통행료는 총 2872억원에 달한다. 이는 앞선 박근혜 정부때 2015년(146억원)과 2016년(143억원) 임시공휴일을 정해 각각 하루씩 통행료를 면제했던 것과 비교하면 규모면에서 큰 차이가 난다.
도로공사 부채는 2018년말 현재 28조1129억원이다. 부채 규모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2016년 27조5125억원이었던 부채는 이듬해 27조4828억원으로 다소 줄었다가 2018년 반등했다. 2년만에 6004억원이나 증가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부채는 27조8873억원으로 2018년의 99%에 육박했다. 회계결산이 이뤄지면 부채 증가는 불보듯 뻔한 상황이다. -
다만 도로공사의 부채 현황을 들여다보면 미세한 경고음을 감지할 수 있다. 도로공사 부채비율은 2017년 이후 감소폭이 둔화하고 있다. 2017년 전년대비 4.01%p 줄었던 것이 2018년 1.02%p로 4분의 1토막이 났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보통 상반기에 정부 출자금이 들어왔다가 연말에 공사 준공대금으로 한꺼번에 나간다"며 "회계결산을 해봐야겠지만 지난해 부채비율이 상반기(77.36%)보다 많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주 수익원인 통행료는 4조원대에서 정체를 보이는 반면 도로 유지보수 비용 등은 증가하고 명절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로 수백억원의 손실까지 떠안는 상황을 참작하면 부채비율이 증가세로 돌아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도로공사가 매년 두차례 명절 통행료 면제로만 900억원 이상의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지난 2017년과 2018년 부채비율이 줄어든 배경에는 서울~세종고속도로 등의 건설사업 추진으로 예년보다 많이 풀린 토지보상비도 있다. 통상 도로건설·공사비는 정부가 40%쯤을 예산으로 주고 나머지는 도로공사가 회사채를 발행해 충당하는 구조다. 반면 토지보상비는 전액 국비로 지급되므로 도로공사로선 이 두 해 회사채 발행 규모를 줄일 수 있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