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준의 재계 프리즘] 호텔 반대-공원 지정-헐값 인수… 서울시 뜻대로제값·제때 받아야 하는데… 대한항공 속앓이
  • ▲ 대한항공의 송현동 부지.ⓒ서울시
    ▲ 대한항공의 송현동 부지.ⓒ서울시

    서울시의 일방통행에 대한항공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 호텔 건립 반대로 수년간 개발을 못하게 발목을 잡더니 이제는 공원을 만들테니 싼 값에 팔라며 노골적인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시세의 절반가격인 2000억에 내놓으라고 윽박하다가 여론의 질타에 공시가는 쳐주겠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그나마 2년에 걸쳐 나눠지급하겠다고 한다.

    이쯤되면 도대체 땅 주인이 누군지 아리송하다.

    제값을 제때 받아 회사 살리기에 투입해야 하는 대한항공은 서울시의 강짜에 끙끙 앓고만 있다.

    재계는 "서울시의 횡포에 다름아니다"며 짠한 시선을 보낸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딴지는 더욱 명확해진다.

    대한항공은 2008년 6월 삼성생명 등에 2900억원을 주고 송현동 부지를 매입했다. 송현동 부지는 경복궁 옆에 있는 3만6642㎡의 땅이다. 대한항공은 2009년 9월 이곳에 7성급 호텔을 포함한 문화복합단지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서울 중부교육청에 제출했다.

    중부교육청은 인근에 있는 덕성 여중·고를 이유로 학교환경위생 정화구역 내 금지시설 해제 요청을 부결했다. 대한항공은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하고 사업이 중단됐다.

    2012년 10월 정부는 유해시설 없는 관광호텔은 학교환경위생 정화구역에 지을 수 있다는 취지의 관광진흥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2013년 9월 박근혜 대통령은 투자활성화 대책에 유해시설 없는 관광호텔 건립 지원을 포함시켰다.

    정부에서 사실상 호텔 건립에 동의했지만, 실질적인 인허가 권한을 갖고 있던 서울시는 2013년 10월 송현동 호텔건립 사업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 중심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있다. 박 시장은 2011년 10월 재보궐 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당선된 이후 2014년과 2018년에 잇따라 당선됐다. 결국 대한항공은 박원순 시장 임기 중에는 송현동 호텔 사업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사실상 포기한 상태였다.

    서울시는 지난 3월 대한항공에 민간 매각 시 발생하는 개발요구를 용인할 의사가 없다며 공매절차를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즉, 서울시에 팔지 않고 다른쪽에 팔면 그 땅에서는 어떠한 개발도 할 수 없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송현동 부지에 관심이 있던 매입 후보자들은 사실상 입찰에 참여하기 힘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가 저렇게 대놓고 찜 해놓은 땅에 어떤 기업이나 투자자들이 뛰어들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로 항공업계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대한항공도 사상 최악의 위기에 직면했다. 대한항공은 정부로부터 1조2000억원의 긴급 자금을 수혈받았고, 1조원의 유상증자를 통해 총 2조2000억원의 자구 계획을 밝혔다.

    대한항공은 조원태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의 임금을 최대 50% 반납하고, 전 직원들의 70%가 순환휴업에 동참하는 등 비용절감을 위한 고강도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경영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어 정부의 기간산업안정기금 1조원을 추가로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송현동 부지가 대한항공의 자산매각 등 자구노력의 핵심이라는 점이다. 최대한 높은 가격을 받고 매각해서 자본 확충을 하는 것이 시급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런 대한항공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송현동 부지를 사들여 공원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지난 5월에 밝혔다. 대한항공과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부치고 있다. 게다가 당초 서울시가 생각했던 매입금액은 2000억원이었다는 얘기도 파다했다. 여론의 차가운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서울시는 송현동 부지 보상비로 4671억원을 책정했다고 지난 5일 밝혔다. 공시지가에 보상배율을 적용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 금액은 시장의 평가액과 큰 차이가 있다. 시장에서는 최소 5000억원, 많게는 8000억원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돈을 내년에 10%(467억원), 2022년에 나머지 90%(4204억원)를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대한항공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한시가 급한데, 서울시는 땅 주인의 의사와 여건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있는 셈이다. 박원순 시장의 임기가 끝나는 2022년까지 보상을 마치고, 공원 사업을 치적으로 삼겠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울시 측의 입장은 이렇다.

    시 관계자는 4671억원 보상비 책정은 재정계획 수립을 위한 추정액이며, 향후 감정평가를 통해 구체적인 보상액이 정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어차피 그 땅은 개발이 힘든 곳이니 공익 활용을 위해 서울시한테 매각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입장이다. 아울러 올해 안에 매각 금액이 집행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는 비판에 대한 답변으로는 미흡하기 짝이 없다. 서울시가 송현동 부지가 꼭 필요하다면 대한항공이 추진하는 적법한 매각 절차에 공정하게 참여해 제 값을 주고 사는 것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