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부총리 최근 "최저임금·주52시간제 속도조절 필요" 전임 김 부총리 2018년 "시장·사업주 수용성 같이 봐야"전문가 "배운대로 말한 것"…내년 최저임금 심의 앞두고 파장 촉각
  • ▲ 2021년 적용 최저임금 심의 시작.ⓒ연합뉴스
    ▲ 2021년 적용 최저임금 심의 시작.ⓒ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이끈 부총리들이 취임하고 1년~1년 반쯤 되는 시점에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소주성) 정책 핵심인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속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발언을 해 눈길을 끌고 있다. 김동연, 홍남기 두 부총리 모두 다음 해 적용할 최저임금 심의를 앞두고 해당 발언이 나온 터여서 최저임금 심의에 파장이 미칠지 주목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미래경제문화포럼 조찬모임에 참석해 "사회안전망 확대와 저소득층 소득보강 등 속도를 낼 부분은 더 내지만, 최저임금이나 주52시간제처럼 기업에 부담이 너무 가파른 부분은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한국 경제·사회가 가야 할 6가지의 길'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한 홍 부총리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인 '혁신적 포용성장'이 국제사회에서 폭넓게 논의되는 개념이라고 설명한 뒤 "최저임금이 지난 2~3년 너무 급격하게 오르면서 역풍을 맞았다. 포용성장에 부정적 인식이 많이 박혔다"고 부연했다.

    홍 부총리는 우리나라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혁신적 포용성장의 길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혁신성장 주체는 민간으로, 정부는 제도·법·규제·금융·연구개발(R&D) 등에 집중하는 게 포인트"라고 언급했다.

    홍 부총리의 발언은 현 정부의 정책기조를 따르는 듯 보이지만, 엇박자를 내는 부분이다. 최저임금은 대선공약인 '2020년 시급 1만원'은 물 건너 갔지만, 주휴수당 등을 포함하면 올해 이미 1만원을 넘어 공약을 달성하고도 남았다는 의견이 적잖다. 이런 가운데 홍 부총리 발언은 정부가 작정하고 올린 최저임금이 속도 조절에 실패했다고 자인하는 셈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기조인 제이(J)노믹스의 네 바퀴 성장동력 중 소주성의 핵심이다.
  • ▲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왼쪽)과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연합뉴스
    ▲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왼쪽)과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연합뉴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홍 부총리 전임자인 김동연 전 부총리도 소주성의 근간인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속도 조절 필요성을 언급했었다는 점이다. 사실상 문재인 정부의 경제라인 중 유일하게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냈었다.

    김 전 부총리는 현 정부 들어 최저임금이 급격히 올랐던 2018년 5월23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과 시장·사업주의 수용성을 충분히 고려해 목표 연도를 신축적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당시 최저임금은 2017년(6470원)보다 16.4%(1060원) 오른 7530원으로,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후폭풍이 거세게 일 때였다. 경기침체에 지급능력이 떨어져 아르바이트를 자르거나 아르바이트 없이 가족끼리 버텨오던 영세 소상공인이 정부 정책으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며 아우성쳤다.

    김 전 부총리는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긴 시계열로 봐야 한다"면서 "최저임금의 적절한 인상으로 양극화 등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시장과 사업주에게 어느 정도 수용성이 있는지도 같이 봐야 한다"고 했었다.

    김 전 부총리 발언은 당시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대립각을 이루면서 논란이 됐다. 장 전 정책실장은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 우려에 대해 "일부 식음료 분야 등을 제외하면 고용감소 효과가 없다"고 주장했었다. 당시 두 경제정책 수장이 엇박자를 내자 급기야 청와대가 나서 김 전 부총리가 경제 컨트롤타워가 맞다고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 ▲ 홍남기 경제부총리.ⓒ연합뉴스
    ▲ 홍남기 경제부총리.ⓒ연합뉴스
    일각에선 공교롭게 경제정책 컨트롤타워가 취임 1년 남짓한 시기에 데자뷔처럼 현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을 비판한 것은 정통 관료출신답게 배운 대로 말하는 거라는 견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두 부총리 모두) 고시 출신의 경제관료"라며 "경제학 이론에는 최저임금을 올리면 최저임금보다 덜 받더라도 일하고 싶어 하는, 나이가 많거나 어린,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는다고 나와 있다. 많은 학자가 최저임금의 긍정적인 측면을 인정하면서도 차라리 최저임금이 없는 게 낫다고 주장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두 부총리는) 정석을 알기에 배운 대로 말한 거로 생각한다"며 "최저임금 인상이 실업률을 높이는 주범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과도하게 올린 것에 대해 (소신을) 밝힌 것으로 본다"고 해석했다.

    김 교수는 "미국은 주(州)별로 최저임금이 다르지만, 7.25달러로 잡아도 이제 우리나라 최저임금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미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6만 달러고 우리는 절반인 3만 달러니 지난 3년간 최저임금을 얼마나 올렸는지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11일 전원회의를 열고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에 본격 착수했다. 경영계가 중국발 코로나19(우한 폐렴) 사태를 이유로 동결을 주장하는 가운데 노동계는 일정 수준 이상의 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홍 부총리의 이번 발언의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 파장에 관심이 쏠린다.

    한편 홍 부총리는 이날 정치권이 주도하는 기본소득 논쟁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홍 부총리는 "지구상에 기본소득을 도입한 나라는 없다"면서 "현재 복지예산이 180조원이다.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전 국민에 30만원씩만 나눠줘도 200조원이 필요하다. 그 돈을 전 국민 빵값으로 나눠주는 게, (미래) 우리 아이들이 부담하게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반대 뜻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