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대 축소판 ‘공중보건장학제’도 의대생들 외면 ‘공공의료’ 본질보다 정치적 셈범이 우선… 곳곳에 터지는 ‘파열음’ 의료정책연구소 “실효성 확보 어려워… ‘공중보건의료지원단’ 제안
  • ▲ 의사국시 실기장 앞에서 한 산부인과 전문의가 '공공의대 철회'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 의사국시 실기장 앞에서 한 산부인과 전문의가 '공공의대 철회'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2020년 의사 파업 사태’로 정점을 찍었다. ‘파업 종료’와 ‘원점 재검토’가 담긴 합의서로 일단락되긴 했지만, 뇌관은 남아있다. 코로나 시국 속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대안으로 잠시 쉬어갈 뿐이다.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논란의 중심인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첩약급여 시범사업 ▲비대면 진료 육성 등 내용을 분석하고 향후 방향성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공공의대 문제는 실효성을 확보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한다. 투입되는 예산 대비 실질적 공공의료 확충이 이뤄질지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공공의대 설립이 추진된 이유는 군 복무를 대체해 3년간 의료취약지에서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사’의 빈틈을 채우기 위함이다. 

    인구 구조의 변화로 입대 자원이 부족질 수밖에 없고 실제 공중보건의는 현격히 줄어들고 있다. 도서, 산간 농어촌 등에 의사 수급 문제가 우려되고 또 전문성 부족 등 문제가 제기되면서 공공의료인을 국가가 길러내는 공공의대를 만들어 해결하자는 취지다. 

    공공의대 설립 추진에 앞서 동일한 성격의 ‘공중보건장학제도’를 살펴봐야 한다. 공공의료 활성화를 목표로 의대생들이 일정기간 의료취약지에서 근무할 경우, 국가가 지원금을 제공하는 것으로 공공의대의 축소판으로 봐도 무방하다.

    이 제도는 1977년부터 1996년까지 운영됐다가 폐지됐다. 장학금 제공과 의무근무라는 원칙만 있었을 뿐 공공의료의 특수성을 가진 의사로 전환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 대부분의 공중보건장학생은 장학금을 조기상환하고 의무복무를 면제받았다. 

    그런데 정부는 의료계 반대에도 지난해 이 제도를 부활시켰다. 사실상 공공의대 설립 이전 시범사업 형태로 추진됐으며, 이는 실제 현장에서의 효과를 판단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부활한 공중보건장학제도는 공공의료에 사명감을 갖춘 의대생을 모집해 1인당 등록금 1200만원, 생활비 840만원 등 2040만원을 국가와 지자체가 함께 지원하기로 했다. 지원금을 받은 의대생은 지원받은 기간(최소 2년에서 최대 5년)만큼 공공보건의료 업무에 종사해야 한다. 

    예상대로 결과는 참담한 수준이다.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제도 부활 첫해인 2019년 정원 20명 중 8명이 지원했고 올해는 정원을 14명으로 축소했음에도 4명이 지원한 것이 전부다. 

    타 장학금과 중복 수혜 등 혜택을 부여했음에도 의대생들의 관심을 얻기엔 역부족이었다. 현재 정부는 하반기 공중보건장학생 모집을 추진 중이다. 

    공공의대는 공중보건장학제도의 확장판이다. 실효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료계 입장이다. 

    해외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대만의 경우는 1975년 정부 주도로 취약지역과 제대군인을 위한 ‘원호의료’를 목적으로 공공의대 성격의 ‘국립양명의대’를 설립했지만 1982~2017년 졸업생 중 16%만이 취약지에 남았다.

    일본 역시 ‘자치의대’라는 이름의 공공의대를 설립했지만, 정원 미달과 의무 복무 규정을 지키지 않는 등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 ‘공공의대 게이트’ 잇따라 불거진 의혹들  

    공공의대 법안은 20대 국회에서 논의되다 자동 폐기됐다. 그러다 21대 국회 들어서 의대정원 확대와 함께 드라이브가 걸렸다. 

    김성주,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용호 무소속 의원 등이 관련 법안을 입법발의한 상태다. 정동만 국민의힘 의원도 관련 법안을 냈지만 공공의대 설립이 아닌 의료취약지 지정에 대한 내용을 담아 맥락은 다소 다르다. 

    이 과정에서 ‘공공의대 게이트’ 논란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국무총리의 공공의대 신설 관련 청탁 전화, 남원시의 선제적 부지매입, 시민단체·시도지사 추천, 수련병원 문제 등 각양각색의 논란이 불거졌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물론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관련 내용이 돌았고 복지부는 ‘가짜뉴스’에 대응하겠다고 선포했다. 

    하지만 상임위 심사조차 진행되지 않은 공공의대 관련 예산을 정부가 편성한 상태였고 이미 방향성을 확보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더 크게 불거졌다. 

    지난 10일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보건복지위 간사)은 “복지부는 관련 법안 통과도 안 됐는데 예산부터 편성했다”고 지적했다.

    강 의원이 입수한 복지부의 내년도 예산안 자료에 따르면, 복지부는 공공의대의 위치를 전북 남원으로 특정했고 학교 및 기숙사 설계비 2억3000만원(총 설계비 11억8500만원의 20%)을 내년도 정부예산안에 포함시켰다.

    또 남원 공공의대 설립 추진 경위를 '대통령의 공약사항'으로 명시했는데, 아직 상임위 심사도 안 된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근거로 들었다. 

    이에 윤태호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5월 정부 예산협의를 시작해 8월경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통해 예산이 예정된 것이다. 의협과 합의가 이뤄지기 전 결정된 부분이다. 예산안과 법안 관련 결정 권한은 국회에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공공의대 설립과 관련 지난 4일 의정합의가 이뤄지면서 ‘원점 재검토’가 명문화된 시점인데, 여전히 여당 의원의 ‘신속한 법안 통과 의지’가 드러나면서 후폭풍이 불고 있다. 

    이와 관련 전라북도의사회장 백진현 회장과 전라남도의사회 이필수 회장은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합의서 서명이 있는데도 언론사 인터뷰를 통해 ‘공공의대 법안 처리, 오래 끌 생각 없다’는 발언을 했다. 즉각 관련 법안을 철회하라”고 언급했다. 

    이들은 “의정합의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합의 이행 의지를 의심케 하는 정부와 일부 정치인들의 행보는 국가와 의료계의 합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깨뜨리는 행위다. 이에 대해 깊은 분노와 우려를 표한다”고 지적했다. 

    ◆ 불확실한데 막대한 예산 투입 우려… ‘공중보건의료지원단’ 대안 

    공공의대 설립은 그 취지와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함몰된 경향을 보인다. 포퓰리즘 성격이 강한 정책으로 이해관계자인 의사들에게 설득력을 얻긴 어렵다. 

    실제로 남원에 49명 정원의 공공의대를 설립하는 것은 2017년 폐교된 서남의대 정원을 확보하는 수준에 머물러 지역사회 기득권을 확보하기 목적이 크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필수 전문과목 및 감염병 대응 공공보건의료인력 부족의 문제는 공공의대 설립을 통해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의료계 시각이다. 

    공공의대 정원이 50명도 안 되는 소수이고, 공공의대를 졸업한 인력이 10년 의무복무 기간 이후에도 그 지역에서 필수 및 감염병 전공과목으로 의업을 지속할 것이라고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용호 무소속 의원이 입법발의한 내용에 따르면, 2027년까지 공공의료대학 건축 및 운영, 학생 선발에 따른 지원비용을 합산하면 1334억원이 예상된다. 이후부터는 교육실습을 위한 부속병원 설립을 제외하고도 매년 약 300억원의 비용이 고정적으로 투입된다. 

    이와 관련 의협 의료정책연구소는 “불확실한 공공의료인력 확보를 위해 고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교육경제학적으로 비용효과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취약지에 필수 및 공공보건의료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안은 적정 소득 보장뿐만 아니라 거주 및 근무환경 개선, 직업 안정성 확보, 경력 개발과 같은 강력한 유인 요인을 제공하는 것만이 최선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실적인 대안으로는 ‘공중보건의료지원단’ 설립을 제안했다. 

    지역의사회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의사인력 조직을 구성해 감염병 등 재난 발생 시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는 단체 설립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사회 의사인력은 평상시 소속 의료기관에 근무하고 재난시에 소집되어 파견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