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 법안 찬성은 공정·반대는 불공정 프레임 씌워경영계 "재벌 타깃 반공정법안… 중소·중견기업에도 불똥""글로벌 스탠다드·코로나 위기극복과 동떨어진 일방적 규제"대한상의 "입법 신중히 접근해야"… 보완의견도 제시
  • 중국발 코로나19(우한 폐렴) 사태로 기업이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상황에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정부·여당이 밀어붙이는 이른바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을 수용할 의사가 있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계속되는 기업 옥죄기로 가뜩이나 기업 활동이 위축된 상황에서 뒷배가 돼 숨통을 터줘야 할 제1 보수야당이 되레 뒤통수를 친 거나 진배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선 거여(巨與)를 의식해 모종의 정치적 포석을 깐 게 아니냐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존폐의 갈림길에서 고전하는 기업인의 기를 살려주진 못할망정 찬물을 끼얹고 한가롭게 '정치질'을 할 때이냐는 목소리가 적잖다. 문재인 정부의 반(反)기업 입법에 관해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편집자 註>
  • ▲ 올 2월 코로나19 대응 경제계 간담회에서 만나 악수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연합뉴스
    ▲ 올 2월 코로나19 대응 경제계 간담회에서 만나 악수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연합뉴스
    '반(反)기업 정서가 공정(公正)인가?'

    소위 '공정경제 3법'은 정부와 여당이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을 패키지로 부르는 약칭이다. 하지만 경제계에선 해당 법안들을 이렇게 안 부른다. 사안에 따라 상법, 공정거래법 등으로 부를 뿐이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거론할 때 따로 네이밍해서 부르거나 하진 않는다. 보통은 상법(개정안) 등 내용에 따라 부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이 이들 패키지 법안을 공정경제 3법이라 부르는 것은 이들 법안에 정치적 프레임을 씌우려는 저의가 깔렸다는 의견이다. 법안에 찬성하면 공정, 반대하면 불공정이라는 여당의 이분법적 틀에 인식을 가두려는 의도가 읽힌다는 것이다. 논란을 촉발한 김종인 위원장도 이를 의식한 듯 당 소속의원들과의 오찬에서 약칭을 "민주당이 주장하는 경제 관련 3법"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영계와 학계는 해당 법안을 '반공정법' '기업부담법'이라고 부른다. 세종대 김대종 경영학부 교수는 "상법 개정안 중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등은 외국인 주주 등에게 경영권을 뺏길 수도 있는 취약한 부분이 있다"면서 "자칫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당하는 등 기업 경영권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 만큼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투기자본에 기업이 휘둘릴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미국 행동주의펀드인 '앨리엇'이 삼성물산을 공격했을 때처럼 지분을 사들여 자신에게 유리한 분위기로 경영을 위협하면, 가뜩이나 외국보다 경영권 방어수단이 적은 국내 기업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경영계는 이들 법안이 사실상 국내 재벌그룹(대기업집단)을 타깃으로 역차별하는 '반공정 법안'이라는 의견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관계자는 "정부·여당은 이들 법안을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질서 확립을 위한 거라 말하지만, 실상은 재벌집단을 콕 집어 많은 부담을 주고 규제하기 위한 것"이라며 "(경영계는) 공정경제 구현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규제가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호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계는 정부 법안의 주요 내용이 글로벌 스탠다드와는 동떨어진 '갈라파고스'적 규제여서 법이 통과되면 우리 기업의 세계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결국 국가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거라는 견해다.

    또 다른 문제는 이들 법안이 대기업을 옥죄고 중소기업에는 날개를 달아주는 법안이 아니라는 데 있다. 경총 관계자는 "상법의 경우 규제 대상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상장사인데, 국내 상장비율을 보면 중소·중견기업이 60~70%를 차지한다"며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중견기업에도 규제의 영향이 미친다"고 부연했다.

    지난 16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 6개 경제단체가 '상법·공정거래법에 대한 경제계 공동성명'을 발표했을 때 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한국상장회사협의회·코스닥협회 등이 함께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들은 성명에서 "상법 개정안 등이 통과되면 기업의 경영권 위협이 증대하고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쓰일 자금이 불필요한 지분 매입에 소진되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지금은 경제위기를 극복해야 할 시기"라며 "세계 각국은 위기 극복을 위해 기업 규제 완화 등에 전력을 다한다. 우리도 기업이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마음껏 나설 수 있게 규제 완화가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 ▲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21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경제입법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연합뉴스
    ▲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21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경제입법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연합뉴스
    경제단체는 이들 패키지 법안이 도입됐을 때 예상되는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인 측면이 더 큰 만큼 독소조항을 수정해야만 한다는 입장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21일 '주요 입법 현안에 대한 의견'을 국회에 냈다. 대한상의는 "기업에 부담을 주는 법안을 국회가 논의하는 과정에서 기업 현장에 미칠 영향과 경제계가 제시하는 대안 등을 함께 살펴달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대한상의는 상법 개정안에 대해선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사측 방어권을 극도로 제약한다. 해외 투기펀드 등이 이사회에 진출할 수 있게 정부와 국회가 대문을 활짝 열어주는 격"이라며 "투기펀드 등에 대응할 수 있게 대주주 의결권 3% 룰을 손질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나 손자회사 경영진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낼 수 있게 한 다중대표소송제도도 외국계 투기자본이 경영에 간섭한 뒤 '먹튀'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소송요건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소송요건을 모회사가 99% 이상 출자한 회사로 제한하자는 것이다. 정부안은 출자비율이 50% 이상인 자회사 등을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게 돼 있다. 비상장회사 주식 지분의 100분의 1, 상장회사 지분 1만분의 1만 가져도 계열사 경영에 간섭할 수 있는 셈이다.

    대한상의는 내부거래 규제 대상을 확대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관련해서도 "규제 대상을 획일적으로 확대하면 자회사 지분율이 평균 72.7%에 달하는 지주회사 소속기업이 대부분 내부거래를 의심받는 대상이 된다"며 "이는 그동안 지주사 도입을 장려해온 정부 정책과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 ▲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의.ⓒ연합뉴스
    ▲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의.ⓒ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