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간 유럽 출장길첫 행선지 EUV장비사 'ASML'인텔, 7나노 CPU 자체 생산 포기... TSMC와 신규 파운드리사로 꼽힌 삼성 '기회'한해 30여대 생산되는 EUV장비 선점 '치열한 경쟁'... D램 생산에도 활용EUV로 경쟁력 확보하는 삼성 파운드리...반도체 비전 2030 달성 '잰걸음'
  • ▲ ⓒ뉴데일리DB, TSMC홈페이지
    ▲ ⓒ뉴데일리DB, TSMC홈페이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유럽 출장길에 올랐다. 코로나19가 재확산되고 사법 리스크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단행된 출장이라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일주일 간의 여정으로 네덜란드를 거쳐 스위스에서 이번 업무를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그 중에서도 이 부회장이 가장 먼저 달려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은 글로벌 반도체 장비기업인 'ASML' 본사가 위치한 곳이다.

    이 부회장은 이번 출장에서 ASML 핵심 경영진과의 만남을 통해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도입과 관련한 협의에 나설 것이라는게 업계의 관측이다. 이미 삼성은 지난 2018년 ASML의 EUV를 도입하며 끈끈한 관계를 구축해왔지만 이번에 이 부회장이 직접 ASML과의 만남을 추진한데는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데 무게가 실린다.

    업계에서는 삼성이 올 하반기부터 '반도체 비전 2030' 을 실행하기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에 착수한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종합반도체 기업인 삼성이 글로벌 1등인 메모리 사업에 이어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특히 파운드리 시장을 접수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133조 원의 투자에 나선다는 것이 이 비전의 골자다.

    이 비전을 성취하기 위해 올해와 내년은 이른바 '골든 타임'이다. 이 부회장이 직접 나서 첨단 장비 도입을 준비할 정도로 삼성은 다가오는 기회에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하고 있다.

    삼성 파운드리에게 기회란 자체 생산을 포기한 인텔의 '7나노 중앙처리장치(CPU)'다. 인텔은 지난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7나노미터 공정 기반 CPU 생산이 예상보다 6개월 가량 미뤄질 것이라며 이미 2년 전 양산에 성공해야했을 CPU 자체 생산에 사실상 포기를 선언했다.

    이와 동시에 인텔이 외부 파운드리 전문업체에 생산을 위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며 업계의 셈법은 복잡해졌다. 시장의 50%를 점한 독보적 1등인 대만의 파운드리사 TSMC가 당연히 인텔의 위탁생산을 맡을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는 가운데 파운드리에서 무섭게 치고 오르는 삼성이 인텔의 신규 위탁생산을 맡을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무엇보다 TSMC가 인텔과 CPU시장에서 경쟁구도에 있는 AMD의 위탁생산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삼성이 새로운 대항마로 지목된다. 이미 경쟁업체에 한참 뒤져 7나노 제품을 내놓는 마당에 경쟁사 핵심 제품을 생산하는 곳에 위탁하는 것이 인텔에는 최선의 선택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이 EUV를 도입한 이후 TSMC를 넘어선 기술 경쟁력을 갖게 됐다는 점 또한 인텔이 삼성에 위탁생산을 맡길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더구나 적어도 내년 1분기까진 애플의 칩 생산으로 분주한 TSMC가 인텔의 수주까지 모두 소화할 능력이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현재 TSMC가 미국 애리조나에 5나노 공정을 적용한 파운드리 공장을 추가적으로 건설할 계획을 세우고는 있지만 당장은 모든 물량을 소화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 ▲ ASML의 EUV 장비 트윈스캔 NXE 
 ⓒASML
    ▲ ASML의 EUV 장비 트윈스캔 NXE ⓒASML
    삼성은 이 같은 판도를 일찌감치 파악해 파운드리 사업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쓸 수 있는 인텔 물량 유치에 사활을 거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삼성이 강점을 갖고 있는 EUV 공정을 보다 전면으로 내세워 인텔을 비롯한 신규 고객사 유치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모습이다.

    삼성은 현재 공사가 한창인 평택 2공장의 파운드리 라인에 EUV 공정을 도입하기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이미 화성 V1 공장에 EUV 전용 라인을 가동하고 있지만 파운드리 고객사를 확대하고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장하기 위해 추가적인 라인 준비에 돌입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오스틴에 위치한 반도체 생산라인에도 EUV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EUV 핵심 장비를 공급할 ASML과의 협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ASML은 올해 연간 기준으로 총 35대의 EUV 장비를 공급할 계획으로 상반기 중에 13대를 출하했다고 밝혔다. 하반기 나머지 물량을 확보하고 내년 40여 대 수준으로 늘어날 EUV 장비를 선점하기 위해 협상력 있는 이 부회장이 직접 나서는 것이다.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D램 생산에도 EUV 공정을 도입하게 된다는 것도 삼성이 ASML과의 관계에 공을 들이는 또 다른 이유로 꼽힌다. 현재 삼성은 앞서 도입한 화성 EUV 라인에서 D램 양산을 위한 준비를 거의 마친 단계로, 내년 메모리 시장 상황에 따라 추가적으로 EUV 장비를 도입해 D램 생산에까지 경쟁력을 확보해야 할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결국 삼성은 올해를 기점으로 반도체 사업 전반에서 EUV가 핵심 경쟁력으로 자리잡으면서 이를 뒷받침할 ASML과의 관계에 공을 들일 수 밖에 없는 입장이 됐다는 해석이다. 이는 곧 삼성이 세운 반도체 비전 2030 달성을 위한 물꼬를 트는 작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EUV가 D램 생산에까지 확대 적용되면서 ASML이 단독 공급하는 EUV 장비를 도입하려는 반도체 기업들이 늘어나고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며 "삼성으로선 반도체 사업 양대산맥인 메모리와 파운드리 모두에서 EUV가 필수가 된 상황이라 해당 장비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한 선제작업이 당연해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