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2050 탄소중립" 발언 후삼성, SK 이어 포스코, LG 등 줄줄이 선언일각 너무 가열… "탈탄소화 신중해야"탄소배출가격 급등하면 난방비·전기료·유류세 인상 불가피산업연구원 "철강·석유화학·시멘트 3개 업종만 최소 400조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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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영업을 못하는 항공이나 여행업계에는 정부가 혈세를 퍼부으면서 30년뒤에는 아예 생산이 불가능한 제조업에 대한 정부지원은 찾아볼 수가 없다."정부가 추진 중인 2050 탄소중립 정책에 전통 제조업계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탄소배출 없이는 생산 자체가 불가능한 제조업이지만 당장 7억톤이 넘는 국내 연간 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24.4% 감축하라는 정부지침에 난감한 모습이다.정부는 15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2050 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를 의결하고 본격적인 탈탄소 정책 추진에 나섰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흑백영상으로 찍은 '2050 대한민국 탄소 중립 비전 선언'에 연이은 것으로 정부가 본격적인 탄소규제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0)'를 만든다는 목표아래 에너지·산업·수송·건물 등 각 분야별 감축 의무량을 제시했다. 석탄발전 시설을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석유·화학·철강·시멘트 등 주요 탄소배출 제조업에 감축량을 매기는 식이다. 일방적으로 할당한 의무 감축량을 달성하지 못하면 탄소배출권을 돈으로 사야하는 사실상의 과징금도 부과한다.정부의 강력한 탄소 제로 정책에 주요 대기업들은 속속 탈탄소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지난달 탈석탄 금융을 선언한데 이어 SK그룹은 2050년까지 전세계 모든 사업장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기로 했다. LG화학은 중국 공장에서 현지 풍력·태양광 에너지를 쓰기로 했다.국내 기업 중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8148만톤)하는 포스코도 2050년까지 수소 500만톤 생산체제를 구축하는 탈탄소시대 선도 비전을 제시했다. 내년까지 대기오염물질 감축을 위한 1조원 규모의 투자계획도 현재 집행 중이다.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에 질소산화물 저감장치(SCR)을 설치하고 부생가스 발생을 줄이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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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정부의 일률적인 탄소규제는 투자여력이 있는 대기업에게도 부담이지만, 중소·중견기업들은 영업정지 선고와도 같다고 하소연한다.특히 탄소배출이 많은 정유, 철강, 시멘트 업계에는 직격탄이다. 산업연구원은 3개 업종에서 배출하는 탄소배출을 0으로 만드는데에만 최소 400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추정도 정부가 추진하는 그린뉴딜과 새로운 민간 솔루션이 나온다는 '긍정적 시나리오'에서나 가능하며 '대체 가능한 대안이 없는' 강(强) 시나리오의 경우 제조업 생산이 최대 44%, 고용은 최대 134만명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업계 관계자는 "석탄으로 고로를 가열해 제품을 생산하는 철강, 시멘트 등 제조업에서 탄소배출을 하지 않는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포스코 같은 굴지의 대기업도 모든 투자금을 탈탄소에 쏟아도 모자르다"고 말했다.열악한 상황에도 정부는 기업만 옥죌 뿐 현실적인 지원은 미루고 있다. 정부가 그동안 탈탄소 기업에 지원한 것이라곤 1993년부터 운영한 에너지절약전문기업 지원금이 고작이다. 그것도 20년간 2조9000억원, 연평균 1450억원에 불과하다.구체적 로드맵 없는 탈탄소 가속화는 민생경제와도 직결된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나라 탄소배출량은 발전과 산업이 각각 35%, 나머지 30% 정도가 건물과 수송인데 탄소배출가격이 오르면 장기적으로 건물 난방비와 전기료가 상승하고 자동차 유류세도 비싸진다"며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모든 분야에서 강력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건물 난방비와 전기료가 상승하고 자동체 유류세도 비싸진다"고 우려했다. 생활 필수재 가격도 동반 상승해 기업 뿐 아니라 서민생활에도 양극화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허은녕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급격히 늘리면 경제성이 떨어져 비용만 든다"며 "에너지 밀도가 높은 탈원전을 하면서 탈탄소에 속도는 내는 것은 시장 메커니즘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