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페이 상장 연기, '135일 룰' 무관치 않은 듯 IPO 대어 공모가 하향 조정…거품 논란에 심사 강화 '과도한 개입 VS 투자자 보호'…'묻지마 투자'도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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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카오페이의 기업공개(IPO) 일정이 사실상 4분기로 미뤄졌다. 금융당국의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가 발목을 잡은 탓이다. ‘투자자 보호’ 차원의 제동이지만 최근 정정 요구를 받은 기업들이 희망 공모가 범위를 줄줄이 낮추면서 시장의 불만이 적지 않다. 작년 10월 하이브(상장 당시 빅히트) 공모가 거품 논란을 계기로 금융당국의 압박이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이후 개인 투자자들이 대거 유입된 만큼 당국의 심사 강화는 불가피한 행보라는 분석도 있다. 

    ◆카카오페이 상장 연기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카카오페이는 내달 예정됐던 IPO 시점을 9월 이후로 연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당초 오는 29~30일 기관 투자자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진행한 뒤 다음달 4~5일 일반 청약, 9일(납입일) 상장을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이 지난 16일 ‘중요사항의 기재 불충분’ 등을 이유로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청하면서 공모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IPO대어 공모가 하향 조정 잇따라…당국, 거품 논란에 심사 강화 

    금감원은 심사 결과 증권신고서의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경우, 중요사항에 관해 거짓 기재 또는 표시가 있거나 중요사항이 기재 또는 표시가 되지 않은 경우, 내용이 불문명한 경우 정정을 요구한다. 이는 투자자의 합리적인 투자 판단을 저해하거나 투자자에게 중대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카카오페이의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 역시 투자자 보호 일환으로 이뤄졌지만, 결국 공모가 고평가 논란 때문이라는 게 업계 안팎의 중론이다. 일반적으로 희망 공모가를 산정할 때 피어그룹(Peer Group)의 기업가치 등을 반영하는데, 이 과정에서 공모가가 과하게 책정됐다는 것이다. 

    현재 카카오페이는 기업가치 평가를 위해 미국 페이팔, 브라질 파그세구로 등 해외 핀테크·금융 플랫폼 기업들을 비교 대상 그룹으로 삼으면서 과대평가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올해 들어 당국의 제동으로 공모가 하향 조정이 이뤄진 곳은 코스피 시장 기준 SD바이오센서와 크래프톤 2곳이다. 

    코로나19 진단키트 등 질병진단기업 SD바이오센서는 처음 제출한 증권신고서에 기재된 희망 공모가 밴드 6만6000~8만5000원을 4만5000~5만2000원으로 낮춰 잡았다. 공모 물량도 1555만2900주에서 1244만2200주로 줄였다.

    공모 희망 밴드를 역대 최고 수준인 45만8000~55만7000원으로 제시한 크래프톤은 40만~49만8000원으로 내렸다. 공모 주식수는 1006만230주에서 865만4230주로 낮췄다. 

    이 때문에 카카오페이의 공모가 조정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카카오페이가 제시한 공모 희망가격 범위는 6만3000~9만6000원이다. 이를 기준으로 한 공모 규모는 1조710억~1조6320억원, 상장 후 예상 시가총액은 8조2131억~12조5132억원이다. 

    금감원이 직접적 개입에 나선 것은 아니지만, 카카오페이와 마찬가지로 공모가 거품 논란에 휩싸였던 기업들이 정정 요구 이후 공모 희망가를 낮춘 만큼 조정 가능성도 적지 않을 것이란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당국의 이러한 심사 강화 행보는 작년 개인 투자자 참여로 IPO 시장이 크게 확대된 시점과 맞물린다. 심사 건마다 ‘공모가가 높아서 제어하겠다’라는 식의 강화는 아니라는 반박이다. 

    실제 지난해 접수된 증권신고서는 총 556건으로 전년 대비 12.1% 늘었다. 이중 주식 발행 신고서 접수는 24.1% 증가한 211건으로 가장 큰 폭으로 뛰었다. 같은 기간 정정요구 비율은 3.2%포인트 상승한 9.7%로 집계됐으며, 주식 증권신고서에 대한 정정요구 비율은 10.7%포인트 급증한 16.6%다. 

    시장별로 살펴보면, 코스닥시장에 대한 정정요구 비율(38.7%)이 가장 높으나, 코스피 시장도 전년 대비 상승(0.5%→6.6%)했다. 1차 정정요구 이후 미흡·보완 사항이 명확히 반영되지 않는 등 동일 신고서에 대해 2회 이상 정정요구한 사례도 5개사에서 12개사로 늘었다. 기업 가치를 쉽게 평가하기 어려운 기술특례상장 등이 부쩍 늘어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증권업계는 작년 10월 하이브 공모가 거품 논란이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보고있다. 하이브는 ‘따상(공모가의 2배에 시초가 형성 후 상한가)’으로 코스피에 입성하면서 주가는 35만1000원까지 뛰었다. 그러나 거래 시작 4시간여 만에 시초가 아래로 추락했으며, 같은 달 말에는 공모가(13만5000원)를 위협하기도 했다. 당시 하이브는 일반적인 엔터기업이 아닌 네이버와 카카오를 비교 기업에 산정했다. 

    ◆'과도한 개입 VS 투자자 보호' 의견 분분…'묻지마 투자'도 지적  

    최근 금융당국의 심사가 더욱 까다로워진 것을 두고 시장의 의견은 분분하다. 

    우선 기업공개를 하는 과정에서 수요예측 등 합리적인 가격으로 공모가를 결정하는 절차가 있음에도 투자자 보호 명분을 앞세워 지나치게 관여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다. 일반적으로 기업들이 증권신고서 제출 시 금융당국의 정정 요구까지 감안해 상장 계획을 세우지만, IPO 대어들마다 공모가 하향 조정을 결정하는 것은 시장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고평가 논란에 뭇매를 맞은 하이브가 사상 최고가 행진을 이어가는 점도 당국의 개입이 과도하다는 해석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하이브 주가는 반년 넘게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가다 올해 들어 회복세를 타고 있다. 

    반면 공모주 과열 분위기를 안정시키고 적절한 공모가 책정을 위한 선제 조치라는 평가도 있다. 당국 뿐 아니라 시장 전문가들은 작년부터 IPO 시장 과열 조짐을 경계하며 경고의 목소리를 높였다. 흥행이 지속될 경우 고평가 논란이 불거질 우려가 있으며, 상장 직후 높은 변동성에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개인 투자자들이 대거 유입된 만큼 금융당국 입장에선 투자자 보호 조치의 노력이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 공모주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으로 뛰어든 투자자들도 적지 않았으며, 빚투(빚내서 투자) 열풍이 가세하면서 시장은 투기판을 방불케 했다. 따상 실패, 주가 하락 등으로 손실을 떠안은 사례도 속출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공모주=따상’이라는 기대감으로 ‘묻지마 투자’에 나서는 행태를 고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상장 첫 날부터 큰 폭의 수익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성 없는 투자 전략으로 대형주 기업가치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 관점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아울러 증권신고서 정정 제출의 경우 빈번히 발생하는 만큼 공모주 투자에 있어 크게 우려할 요인은 아니라는 평가다. 최종경 흥국증권 연구원은 “증권신고서를 정정 제출한다고 기업의 가치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며 “공모 희망가와 공모 후 시가총액의 하향 조정은 오히려 투자자 관점에서 투자 매력이 높아지는 기회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