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도 아닌데…수출 6대제품·글로벌 정제 5위 여전히 중요한 전략재, 석유산업 역시 전략산업 ▲인구↑▲개도국 소비↑▲운송용 에너지대체원 부재
  • 한국은 석유 한 방울 나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수출 6대 제품 중 하나가 석유로 세계 5위의 정유 정제 능력을 갖춘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수출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냈던 석유의 위상이 벼랑 끝에 내몰릴 처지다. 국제사회는 탄소중립(Net-zero) 목표 아래 이를 2050년까지 '0'으로 만들라고 변화의 파도에 직면해 있어서다. 탄소 배출의 주범으로 지목돼 곳곳에서 석유산업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하지만 석유는 여전히 중요한 전략재 역할을 하고 수요 역시 위축 없이 견고할 것이라는 분석은 눈길을 끈다. [석유의 역습]이란 기획을 통해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석유산업을 쫓아가봤다. <편집자주>

    탄소중립은 국내 석유산업의 종말을 불러올까. 

    결론부터 말하면 호락호락 무너질 산업은 아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수요감소와 친환경 전기차로의 전환 등이 석유산업의 사형선고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해석이다. 

    세계적인 에너지 전문가인 대니얼 예긴 IHS마킷 부회장은 "에너지 전환은 필연적이지만 그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지 않을 것"이라면서 당분간 석유의 시대가 지속될 것으로 예견했다. 

    코로나 사태가 에너지(석유) 수요에 타격을 준 건 맞지만 회복 가능하다고 그는 전망했다. 석유의 시대가 끝났다고 속단해선 안 된다고 언급했다.

    에너지 전환 속도의 문제를 떠나, 신재생에너지는 석유를 대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권오복 한국석유공사 스마트데이터센터장은 '탄소중립 기조에도 석유 수요가 견고한 이유'라는 보고서를 통해 다음과 같은 취지의 주장을 했다. 

    권 센터장은 3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그가 꺼내든 이유에서 주목할 점은 석유 수요가 감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봤다는 것이다. 

    세계 인구의 증가를 석유 소비량 증가의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석유뿐만 아니라 경제 관련 예측을 할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구 통계자료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인구 통계 변화는 정확한 미래 예측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 할 정도로 인구를 강조했다. 

    특히 석유 수요는 식량을 제외한다면, 다른 어떤 상품 수요보다 인구와 상관관계가 높다고 그는 강조했다. UN의 세계인구전망에 따르면 세계 인구는 2019년 기준 약 77억명에서 2040년에 92억명에 이르고 2057년에 100억명을 돌파한다. 인구가 증가하면 이동량과 필요한 재화의 양도 증가한다는 설명이다. 

    지난 20년간의 추세도 이를 뒷받침한다. 2000년 이후 인구는 연평균 1.2% 증가할때 같은 기간 원유 소비량도 1.3%씩 늘어났다. 77억명에서 2040년 92억명이 될때 계산상으로 19%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권 센터장은 "과거 20년의 기조를 반복한다면 2040년 석유 수요는 19%와 유사한 수준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엑손모빌의 CEO 대런 우즈는 2040년까지 석유는 20%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아울러 개도국의 수요 증가 역시 석유 수요의 증가를 부추길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0년간 선진국그룹 OECD 국가 석유 수요는 약 12% 감소(2000년 4800만b/d→2019년 4200만b/d)했다. 그러나 비OECD 국가인 개도국의 석유 수요는 90% 증가했다. 같은 기간 2800만b/d에서 5300b/d로 늘어났다. 

    주요 개도국은 석유 소비 감축에 소극적인 행보다. 또한 글로벌 석유 소비의 60% 차지하는 8대 석유 소비국 중 중국, 인도, 사우디, 러시아 등 역시 석유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아 석유 생산 감축과 소비 감축에도 나서지 않고 있다. 

    권 센터장은 "세계 인구의 1,2위의 차지하는 중국과 인도가 향후 소비 증가를 주도할 것"이라며 "세계 석유 수요의 4%만을 차지하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석유 수요가 감소할 여지는 없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탄소중립과 에너지전환이 단기간에 운송용 에너지원인 석유를 대체하기 쉽지 않다는 이유가 세번째다. 

    원유의 약 60%가 휘발유, 경유, 항공유, 중유 등으로 가동돼 운송용 에너지원으로 쓰인다. 이런 운송용 에너지원이 석유가 아닌 다른 자원으로 대체되어야 석유 수요가 감소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항공기와 선박 연료는 대체 자원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를 대체하려는 움직임도 적다. 다만 도로운송 분야에서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대체할 경우 석유 수요를 줄일 수 있다. 이마저도 실질적인 석유소비 감소가 나타나기 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현재 글로벌 전체 차량에서 전기차 비중은 1% 이하인 약 1500만대로 추정된다. 최근 몇 년간의 전기차의 가파른 성장에도 불구하고 석유 수요 역시 동반 증가하는 모습이 이를 방증한다. 

    결국 석유 수요 증가세는 상당 기간 유지될 가능성에 무게감이 실린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지난해 세계에너지전망 보고서에서 2050년 석유 수요가 약 일 1억300만 배럴에 도달해 2020년 8800만 배럴 대비 17%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원이 비중이 단 시간에 급격히 증가할 수 없어서다. 

    권 센터장은 "석유 시대를 좀 더 준비할 필요가 있다"며 "장기적으로 석유 수요가 증가함을 염두해 두고, 관련 기관 및 기업의 역할과 정책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 유럽의 BP, 쉘, 토탈 등 메이저 석유회사가 야심차게 추구하는 순탄소배출 제로 목표 또한 배출하는 탄소의 절대량을 '0'으로 줄이겠다는 것이 아니다. 배출하는 탄소만큼 탄소를 흡수하는 사업을 확대해 말 그대로 '순 배출'을 '0'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성원모 한양대학교 자원환경공학과 교수는 "배출하는 탄소만큼 탄소를 흡수하는 사업을 확대해 말 그대로 ‘순 배출’을 ‘0’으로 하겠다는 것"이라며 "즉 석유개발, 생산, 정유를 주요사업으로 이어가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탄소배출량을 상쇄해가며 에너지 전환 시대를 이어가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기후 온난화의 해결책이 석유 시대의 종식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이다고 성 교수는 주장했다. 

    그는 "과거 산업혁명 시대의 주에너지원이었던 석탄이 20세기의 석유로 대체되기까지는 1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며 "이후 석유는 지난 100여년간 문명의 발전과 삶의 질 향상에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고 했다. 

    이어 "에너지 전환 시기에는 주에너지원과 지역에너지의 적정한 개발비중을 고려한 상태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며 "특히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목 중 하나는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제품이며, 석유 하류부문의 정유 등의 관련 산업은 GDP와 고용 등 국가경제에서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