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한이익상실 사업장 많아"발빼는 건설사들… 수백억 손실 감내30조 브릿지론 본 PF 전환 미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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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상윤 기자
    미분양 공포에 대형 건설사마저 발을 빼는 부실 사업장이 늘어나고 있다. 사업부지 확보를 위해 '브릿지론'을 제공한 제2금융권으로 부실이 전이될 것이란 우려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제2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17일 "A급 신용등급의 모 대형 건설사가 최근 지방의 한 대형 PF 현장에서 발을 뺀 것으로 들었다"며 "시행사에 브릿지론을 공급한 대주단이 비상상황에 빠졌다"고 전했다.

    해당 건설사는 금리 인상 전인 2021년 지방에서 주상복합 신축사업을 추진 중인 모 시행사와 계약을 맺고 시공사 참여를 결정했다. 시공사 선정에 따라 시행사는 사업 부지 확보를 위해 지난해 제2금융권 여러 곳에서 1000억원대의 대출(브릿지론)을 일으켰다.

    순조로울 것 같았던 사업은 부동산 경기 침체로 위기를 맞았다. 인플레이션으로 금리가 급등하면서 지방에 미분양이 급증하자 사업성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 것. 시공사는 책임준공 약정을 제공하며 시행사의 브릿지론 전환(본PF)을 돕는 게 일반적이지만 해당 건설사는 고심 끝에 '손절'을 택했다.

    해당 사업장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자재비 인상으로 공사비가 30% 이상 올랐는데 분양가 하락에 준공 후 미분양이 대량 발생하면 건설사 입장에서는 그만한 악몽이 없다"며 "2년 뒤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대주단에 기한이익상실(EOD)을 통보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OD는 건설사가 해당 사업장을 부도 처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해당 건설사 역시 이번 '손절' 결정으로 상당한 손실을 감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사의 고육지책에 불똥은 시행사와 대주단으로 튀었다. 고수익을 기대하며 '브릿지론'을 제공했던 제2금융사들은 사업부지 매각을 통해 채권을 회수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사업장 부지가 큰 데다 부동산 경기 악화로 매수자가 선뜻 나타나기 어려워 경매에 부쳐질 가능성이 클 것으로 주변에서는 내다보고 있다.

    대형 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최근 제2금융권 쪽에서 시공사 참여 문의를 종종 해오는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우리를 포함해 대형 건설사들의 경우 시장 상황을 매우 안 좋게 보고 있기 때문에 (시공사 참여) 심사 통과가 어려울 것"이라고 상황을 전했다. 그는 "시장에 알려지지 않은 EOD 사업장이 몇 곳 더 있는 것으로 파악 중"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9월말 기준 보험사, 증권사, 여신전문사,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의 부동산PF 규모는 115조5000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브릿지론 규모는 약 3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금융당국은 파악 중이다. 30조원 가운데 본PF로 전환되기 어려운 사업장이 몇 곳이나 되는지 당국은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원장님 말씀처럼 전국 5000여개 사업장 중에 취약한 사업장 300~500곳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며 "건설사가 발을 뺀 경우는 예외적인 상황에 가깝고 일반적인 상황으로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