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세법개정안에 부동산·법인세 등 굵직한 개편안 다 빠져巨野·내년 총선 의식… 지난해 법인세 인하 좌절 학습효과올해 혼인증여공제 등 '주목'… 이재명 "또 초부자감세냐 한탄"
  • ▲ ⓒ연합뉴스
    ▲ ⓒ연합뉴스
    정부가 올해 내놓은 세법개정안에서 법인세와 부동산 중과세 개편안이 빠지며 거대 야당을 의식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혼인증여공제 등 증여세 완화 방안도 야당의 '부자감세' 프레임에 걸리면서 수정될 위기에 놓였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부동산 세제 정상화,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유산취득세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집권 첫 해부터 거야(巨野)에 밀려 개편안이 원안대로 국회를 통과한 적이 없다. 정부는 지난해 세제개편안에서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3%포인트(p) 내리겠다고 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초부자감세'라고 비판하면서 결국 최고세율 1%p 인하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출범 당시 기업의 모래주머니를 풀어준다고 포부를 밝혔던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올해 세법개정안은 굵직한 세제개편은 모두 제외된 상태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완화와 법인세율 인하, 유산취득세 전환 등이 모조리 빠졌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제도의 경우 문재인 정부 시절 부동산 시세차익을 노리고 투기를 하는 다주택자에게 징벌적 과세를 하기 위해 도입했다. 주택 수와 보유기간, 주택 보유 지역 등에 따라 최대 70%까지 양도세액을 부과한다.

    하지만 본래 취지와 달리 높은 세율에 주택이나 분양권을 팔고 싶어도 팔지 못한다는 원성이 높아졌고, 이에 따른 매물잠김 현상으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이를 개편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번 세법개정안에서는 제외됐다.
  •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31일 국회 당 사무실에서 최고위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31일 국회 당 사무실에서 최고위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상속·증여세 개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상증세의 최고세율은 50%로, 과거부터 이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민주당의 반대로 매번 무산됐다. 이에 정부는 최고세율을 직접 개편하는 대신 전체 자산이 아니라 상속인이 물려받은 만큼만 세금을 내는 유산취득세 방식으로의 개편을 추진했다.

    이에 더해 직계비속(자녀·손자녀)에 대한 증여공제한도 5000만 원을 상향하는 안도 검토했다. 해당 기준은 지난 2014년 정해진 뒤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의 소득수준이나 물가 상승분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야당의 반대가 불 보듯 뻔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혼인증여공제다. 혼인신고 전후 2년씩 총 4년간 성인자녀(손자녀)에 대해 1억 원을 증여자산으로 추가 공제해주는 내용이다. 1000만 원쯤의 증여세를 아낄 수 있다. 부부합산 총 3억 원의 증여자산에 대한 세금을 아낄 수 있어 전세자금 마련에도 용이할 것으로 보인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 대비라는 정책 목적까지 더해 젊은 부부들의 주택자금 마련이라는 차원에서 야당도 반대하지 않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탄생한 제도다.

    그러나 정부 예상과 달리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31일 "또 초부자 감세냐는 한탄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초부자 감세로 나라 곳간에 구멍을 내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민주당 소속 기획재정위원회 의원들은 비공개회의를 열고 혼인증여공제 대신 성인자녀에 대한 증여공제한도를 현행 5000만 원에서 7000만 원으로 상향하고, 혼인공제에 출산을 조건으로 넣자는 안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가업승계 증여세 완화안도 야당의 반대에 부딪힌 상황이다. 가업승계 증여세 과표구간은 증여재산가액이 10억 원 이하일 경우 0%, 10억~60억 원 이하는 세율 10%, 60억~300억 원 이하는 20%다. 정부는 10억~300억 원 이하 구간에 대해 낮은 세율(10%)을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저율과세 구간을 대폭 확대한 것이다.

    이를 두고 야당에선 중소기업의 숙원을 해결해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저율과세 구간을 한 번에 5배나 확대하는 것은 무리한 감세라는 반대 입장도 나오고 있다. 야당이 소위 있는 자들의 증여세 완화라는 부자감세 프레임을 재가동한 만큼 정부 원안이 그대로 통과되기는 어려울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의 세법개정안을 보면, 1999년부터 그대로인 증여세 과세표준 구간과 세율은 건드리지도 못했고 법인세율도 전혀 만지지 못했다. 부동산 세제도 종합부동산세 공정시장가액비율만 건드렸을 뿐 큰 틀은 건드리지도 못했다"면서 "기껏해야 저출산 고령화에 대비한다고 혼인증여공제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정부가 (세법개정에 적극 나서지) 못한 것은 여야 의석 수 문제와 내년 4월 있을 총선 때문"이라며 "세법개정안은 내년 총선이 지나 정치지형이 달라질 경우에나 (큰) 변화가 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