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정부 예산안이 올해보다 2.8% 증가한 656조9000억 원으로 짜졌다. 지난 2005년 이후 최저 증가율이다. 경기둔화로 세수펑크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빚을 내 지출을 늘리기보다는 강도 높은 긴축으로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이를 위해 정부는 23조 원 규모의 지출을 구조조정해 확보한 재원을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 강화와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투자에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29일 국무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24년 정부 예산안을 확정했다.
정부는 내년 예산(총지출)을 올해 본예산 638조7000억 원보다 18조2000억 원(2.8%) 늘어난 656조9000억 원으로 편성했다. 정부가 올해 예산안을 지난해보다 5.1% 늘렸던 것에 비하면 낮은 증가율이다. 총지출 증가율은 지난 2016년 2.9%를 기록한 이후 꾸준히 올라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에는 9.5%로 뛴 바 있다.
앞서 정부는 내년 예산을 3%대 증가율로 맞추겠다고 여당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보다도 낮은 예산안이 편성되면서 국세수입 감소가 생각보다 심각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내년 총수입 예산안을 올해 625조7000억 원보다 13조6000억 원(2.2%) 줄어든 621조1000억 원으로 편성했다. 내년 국세수입은 올해 400조5000억 원에서 33조1000억 원(8.3%) 감소한 367조4000억 원 규모다. 내년 국세외 수입은 올해 225조2000억 원보다 19조5000억 원(8.7%) 늘어난 244조7000억 원으로 추진된다.
정부가 총지출과 총수입 예산을 빡빡하게 가져가는 것은 어려운 경기 여건으로 내년에도 국세수입 감소가 예상되는 가운데 재정수지와 국가채무 악화를 최대한 억제하겠다는 재정건전화 의지 때문이다.
내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는 올해보다 1.3%포인트(p) 악화한 -44조8000억 원(-1.9%), 각종 사회보장성 기금을 뺀 관리재정수지도 올해보다 1.3%p 악화한 -92조 원(-3.9%)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통합재정수지 적자가 13조1000억 원,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58조2000억 원으로 전망되는 것을 고려하면 내년에는 각각 30조 원쯤 적자 규모가 커지는 셈이다.
내년 국가채무는 올해 1134억4000억 원보다 61조8000억 원 늘어난 1196조2000억 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51%로 예상됐다.
내년 총수입은 줄어들지만, 정부는 취약계층 보호와 미래 성장동력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로 했다. 이를 위해 모든 재정사업의 타당성과 효과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23조 원 규모의 구조조정을 통해 재원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내년 예산안을 부문별로 보면 총지출 증가율이 가장 높은 것은 외교·통일(7조7000억 원)로 올해보다 19.5% 늘었다. 보건·복지·고용 부문은 올해 226조 원에서 내년 242조9000억 원으로 7.5% 증가한다.
반면 교육 부문은 올해 96조3000억 원에서 내년 89조7000억 원으로 6.9% 감소한다. 연구·개발(R&D) 예산도 올해 31조1000억 원에서 내년 25조9000억 원으로 16.6% 줄어든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을 △약자복지 강화(취약계층 지원)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미래준비 투자(첨단산업 투자 등) △경제활력 제고를 통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투자 활성화 등) △국가 본질기능 수행 뒷받침(군대·공공안전 강화 등)에 중점 투자하기로 했다.
정부는 내년부터 기초생활보호대상자의 생계급여액을 4인 가구 기준 월 21만3000원 올린다. 지난 5년간(2017~2022년) 총 인상액 19만6000원보다 대폭 인상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4인 가구 기준 생계급여는 올해 월 162만 원쯤에서 내년 월 183만3000원쯤으로 늘어난다.
노인일자리는 올해 88만3000명에서 내년 103만 명으로 역대 최대인 14만7000명이 늘어난다. 일자리 수당도 올해보다 2만~4만 원 인상한다. 대중교통 요금을 20~53% 할인받는 'K-Pass'를 도입하고 청년에게 자기돌봄비를 분기별 50만 원 신규 지원해 의료·문화·교육비로 쓸 수 있게 한다.
인공지능(AI)이나 첨단바이오, 양자컴퓨터 등 차세대 혁신기술에 대한 R&D 투자를 강화하는 한편 우주, 반도체, 이차전지 등 첨단분야를 중심으로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해 글로벌 산업 생태계를 주도한다는 계획이다.
이밖에 출산가구에 대한 주거안정을 위해 신생아 출산 가구의 주택 구매과 전세자금 융자에 관한 소득요건을 연 7000만 원에서 1억3000만 원으로 대폭 완화하고 출산 가구에 대해 특별분양을 신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