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감평사, 전세사기 사건에 깊숙이 관여…작년 24명 송치이른바 '업감정' 빌라·오피스텔 중심 사기수법으로 자리매김세입자 보증금 적정수준 판단 어려워…눈뜨고 코베이는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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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수원시 일대에서 전세사기(2021년 1월~2023년 9월)를 벌인 정모씨 일가는 무자본 갭투자로 빌라·오피스텔 800여가구를 사들인뒤 214명으로부터 받은 전세보증금 225억원을 돌려주지 않았다. 수사결과 아들은 감정평가사로 동일건물 다른 호실보다 최대 63%이상 높게 거래된 특이사례를 기준으로 '업감정'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전세사기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지 2년, 전세사기특별법이 시행된지 1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특히 감정평가사가 일부 전세사기사건 '몸통'으로 지목되면서 해당직군에 대한 관리‧감독‧처벌 및 자정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11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HUG가 대신 내야하는 보증사고액이 지난해 4조3347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건수로는 1만9350건이다.최근에는 안산지역에서 전세사기사건이 발생, 피해액만 약 1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 6일에는 전세보증금 10억5000만원을 가로챈 30대남성 2명이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사태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는 전세사기특별법 등을 통해 피해자 구제에 나서고 있지만 제도적 허점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그중에서 감정평가사와 집주인이 합의해 건물감정가를 높이는 이른바 '업감정'이 사기수법중 하나로 자리매김하면서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업감정은 전세사기꾼과 감정평가사가 짜고 부동산평가액을 부풀려 전세금을 올려 받는 방식으로 주로 공시가나 실거래가가 없는 신축빌라·오피스텔 임대계약시 종종 벌어지곤 한다.문제는 법적자격을 갖춘 감정평가사가 막대한 수수료를 챙기기 위해 전문자격사라는 점을 악용하고 있다는 점이다.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전세사기 주범은 공인중개사'라는 인식 때문에 눈치를 보고 있는 공인중개사들과는 달리 일부 감정평가사는 전세사기와 무관한 척하면서 당당하게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꼬집었다.이어 "감정평가사가 감정평가액을 부풀려도 세입자는 보증금 적정수준을 판단하기 힘들다는 게 문제"라며 "결국 눈 뜨고 코 베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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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G가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감정평가사를 거친 전세보증보험 사고금액은 △2018년 8억원 △2019년 22억원 △2020년 52억원 △2021년 662억원 2022년 2234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이에 정부는 감정평가사 처벌기준을 강화하는 한편 '안심전세앱 2.0' 등을 통해 매물 부풀리기 방지에 나서고 있다. 또 전세보증금 가입기준을 전세가율(전세보증금‧주택가격) 90%로 조정했다.하지만 이같은 조치만으로는 업감정을 통한 전세사기 예방이 어렵다는게 업계 지적이다.실제 지난해 전세사기 일당이 요구한 금액대로 부동산을 업감정한 감정평가사 24명이 줄줄이 검찰에 송치되기도 했다. 이들은 브로커에게 의뢰건당 100만원에서 1000만원의 수수료를 받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물론 감평사협회는 전세사기에 가담한 회원은 극히 일부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관련 피해가 끊이지 않는 만큼 직군 전반에 대한 관리·감독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업계 한 관계자는 "감정평가사에 대한 관리‧감독‧처벌을 정부만 감당하기엔 한계가 뚜렷하다"며 "전세사기 근절을 위해선 관련 협회에 권한을 위임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이어 "보다 세심한 전세사기 관련 법개정을 통해 그간 노출된 허점들도 봉합해야 한다"고 부연했다.